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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예수 팬덤현상의 허실(虛實)

지난 칼럼의 제목은 ‘팬덤현상의 허실’이었습니다. 이 칼럼에서 정작 언급하고 싶었던 내용을 지면의 제한으로 미처 다루지 못했었습니다. 제가 언급하고 싶었던 내용은 ‘예수 팬덤현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팬덤현상이 다 그러하듯 예수님의 팬덤현상에도 실(實)만 있는 게 아니라 허(虛)도 있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을 열렬히 추종하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그룹은 예수님이 친히 발탁하신 열두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생업과 가족들까지 뒤로 한 채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마태복음 8:20)라고 말씀하셨는데, 비록 스승만큼은 아닐지라도 제자들의 삶도 얼마나 고생스러웠을지 가히 짐작이 됩니다. 제자들은 3년 동안 동가숙서가식하면서 정말 헌신적으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요즘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의 팬들 중에는 거의 미치다시피 극성을 부리는 광팬들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희생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던 제자들이 어떻게 되었나요? 예수님이 유대 관헌들에게 잡혀 심문을 받으시는 상황이 되자 나 몰라라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열두제자 가운데서도 가장 열혈추종자였던 베드로는 자기 신변에 위험에 닥치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으며, 심지어 저주하며 맹세하면서까지 부인했습니다. 그나마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스승이 염려되어 예수님이 심문당하시는 대제사장 사저의 안뜰까지 따라가긴 했지만 막상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끼게 되자 끝까지 신의를 지키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리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고 예고하실 때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장담했으며, 다른 제자들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조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팬덤현상의 허실을 보여주는 생생한 장면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팬덤현상은 열두제자들에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무려 5천 명을 먹이신 오병이어 기적 사건에서 우리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 당시 예수 팬덤의 규모와 범위가 어마어마했다는 사실입니다. 요즘처럼 인구가 많은 시대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5천 명이나 되는 자들이 허기를 참으면서까지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팬덤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수많은 인파가 연변에 도열하여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길에다 겉옷까지 펴면서 그분을 열광적으로 환영했습니다. 마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영웅이 오픈카를 타고 카퍼레이드를 펼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불과 며칠 후에 바로 이 군중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악다구니를 치는 폭도들로 돌변해버리지 않았습니까.



(요한복음 2: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모든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라.”

이 말씀의 문맥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이스라엘 최대의 명절인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와 계신다는 소문이 돌자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분이 행하신 기적을 보았던 터라 그분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들의 환호에 동요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야속한 인심을 이미 파악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기라는 것도 조석으로 변한다는 것을 예수님은 훤히 꿰뚫고 계셨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수님의 기적에 그토록 환호했던 자들이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위기의 순간에 기적을 베풀지 못하고 맥없이 붙들려 마치 중범자처럼 십자가에 처형되시자 그만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기적을 베풀어 거기에서 내려오면 믿겠노라고 조롱했던 자들의 변덕스러운 마음을 예수님은 일찌감치 내다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인기란 일말의 거품 같아서 언제든 꺼질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과 연예인들에게서 팬덤현상의 허실을 자주 목도할 수 있는 것도 인기의 이러한 특성에 기인합니다. 한번 언어유희를 해본다면, “Fandom is a phantom.”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령(phantom)은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존재하지 않듯이 팬덤도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팬덤현상의 허(虛)는 예수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줄 정치적·군사적 메시야로 착각했습니다. 가룟 유다도 같은 이유로 스승을 배반하게 됩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입니다. 열두제자들의 경우에는, 예수님의 나라가 이 지상에 세워져 자기들이 한 자리 꿰찰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자신의 세속적인 목적을 이루어주실 분으로 착각한다면 자칫 신앙의 길에서 멀어질 수 있으므로 늘 자신의 신앙적인 동기를 면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팬덤현상은 부활 이후에 그 길이와 폭과 깊이가 견고해집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 팬덤현상도 이전에는 일반 세상 팬덤현상처럼 허실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성령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팬덤현상에서 ‘허’는 사라지고 오직 ‘실’만 남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역사 2천 년을 되돌아보면 전반적으로 예수님의 팬덤은 꾸준히 확장일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예수님의 팬덤은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의 확장으로 나타났고,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현상은 계속 진행형이며, 이러한 현상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재림의 그 날까지 중단 없이 이어질 것임을 의심 없이 믿을 때 부족하나마 우리의 헌신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날마다 조금씩 확장되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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