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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왜 하필 ‘피’인가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의 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배로운 피라고 해서 ‘보혈’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보혈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귀한 피를 흘려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뤄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대속(代贖)’이라고 합니다. 대신 속해주셨다는 뜻입니다. 웬만큼 신앙생활을 한 자들은 자주 들어서 귀로는 익숙한 말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자들을 위해 대속의 의미를 부연해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국어사전에는 “대갚음으로 바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속이란 말 대신 구속(救贖), 속량((贖良)이라는 용어들도 사용하는데, 이 용어들은 원래 몸값을 받고 종이나 노예를 풀어 주어 양민(良民) 즉 자유인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호세아서를 읽어보면 그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redemption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Redeemer라고 하고, 미국 교회 이름에는 이 단어가 들어간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납치된 자나 범죄를 저지른 자를 놓아주는 대가로 지불하는 보석금(ransom)을 생각해보면 속죄의 의미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하필이면 피인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라는 말만 들어도 섬찟한 생각이 듭니다. 납량물에서 선혈이 낭자한 모습은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고 온몸에 소름이 쫙 돋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인간의 일반정서에 반하는 ‘피’를 내세울 절박한 이유라도 있다는 말인가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방법 외에 다른 옵션은 없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친히 당신의 사명을 말씀하시면서 ‘대속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점에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give his life as a ransom).”

흔히들 이것을 예수님의 사명선언문(Mission Statement)라고 말합니다. “왜 하필 피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사명선언문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자기 목숨’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 것 같은데, 왜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길을 택하기로 하셨을까요? 사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의 선택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선택이요 요구사항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명선언이야말로 피와 대속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피는 곧 생명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로마서 6:23). 모든 인간은 원죄(original sin)를 갖고 이 땅에 태어납니다. 원죄는 우리가 살면서 짓는 자범죄와는 다릅니다. 아담으로부터 물려받는 태생적인 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바로 이 원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망은 단순히 육체적인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생의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영원한 사망을 의미합니다.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영원한 지옥 형벌 즉 영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는 그분의 속량의 은혜로 값 없이 죄사함 받고 의롭다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는 말은 법정적 표현으로서, “너는 무죄다(You are not guilty.)”라는 무죄방면(無罪放免)의 선고를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셨기 때문에 그분의 공로를 의지하여 무죄방면의 선고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성경에서 피와 속죄의 관계를 가장 간명하게 표현해주는 구절은 히브리서 9:22입니다.

(히브리서 9:22)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without the shedding of blood there is no forgiveness)”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불변의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이 원칙을 변개(變改)할 수 없습니다. 피 흘림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한 필수요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 시대에도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짐승의 피로 속죄를 했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로 대속하는 것은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자신의 피로 우리 죄를 대속해주실 것을 그림자로 보여주는 모형(type)이요 예표(豫表, preshadow)일 뿐 실체는 아닙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어린 양을 잡아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발라 죽음을 면했던 사건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예표합니다. 이 피를 보고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다’고 해서 유월절(逾越節, Passover)이라는 절기가 생기게 되었는데, 자칫 발음상 6월에 일어난 일로 착각하는 자들이 있다 보니 천주교에서는 과월절(過越節)로 번역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인간을 대신해 속죄제물로 드려졌던 짐승의 피는 그 제물을 드리는 자의 죄를 온전하게 씻을 수는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10:1, 4)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림으로써 단번에 한 영원한 제사를 드려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히브리서 10:10-12). ‘단번에(once for all)’라는 말은 ‘단 한 번으로 영원한 효력을 지닌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큰 대제사장이 되셔서 무흠무결(無欠無缺)한 자신의 몸을 제물 삼아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영원한 속죄 제사를 지내심으로써 인류를 위한 속죄 제사에 큼지막하고 또렷한 마침표를 찍으셨으니 정말 ‘할렐루야!!!’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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