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유에스코리아뉴스
Featured 미주한인뉴스

[탐방기사] 세월호…아! 팽목항

Apr 26, 2019 <워싱턴코리안뉴스> 강남중기자

<당신은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구조방기 72시간”, 대한민국의 긴급재난 위기관리 시스템이 팩트…지나친 정치적 오해가 국민여론 분열 시키고, 유가족들을 더 힘들게 해

<국정원 세월호 투자로인해 처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앞에서 만난 사람이 들려준 실화같은 이야기

<4.16 추모공원 내에 세월호 선체도 전시하자>
대책위에서 요구하여 문제가 되고 있는 4.16 팽목기록관도 함께…

추모의 벽 타일에 적힌 사연들…

“먹지 마. 네 오빠는 밥도 못 먹는데 너는 지금 반찬 투정할 때야? 나가 나가라고!”

생일을 맞이하는 죽은 아들 수호를 위해 옷을 사서 아들의 방에 걸어주고 허공에 대화하는 우울증에 걸려있는 엄마(전도연 분), 오빠 옷만 사 와서 토라진 동생 예솔이 반찬 투정을 하자 나가라고 소리쳤고, 내복만 입고 집 밖으로 쫓겨난 예솔은 엄마와 함께 목 놓아 울었다.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딸 예솔또한 바다는 고사하고 집안 욕조 물에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물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수호네 가족뿐 아니라 남은 세월호 유족들은 일상 생활을 유지하기가 힘들 정도의 고통을 당하며 아직도 2014년 4월16일을 살고 있었다.

한국방문 길에 영화 ‘생일’을 관람했다.
영화는 한 번도 ‘세월호 참사’ 사건을 구체적으로 꺼내지 않고, 그날 이후 수호 가족들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지를 담담히 묘사하면서 나와 관람객 모두를 울렸다. 외국에 살면서 제3자의 입장에서 보아 온 세월호와 영화속의 세월호 이야기는 그렇게 달랐다. 솔직히 세월호 기사가 나올때마다 지겨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 내친 김에 팽목항과 세월호가 거치 되어 있는 목포 신항을 가보기로 했다.

목포에서 한 시간 거리인 진도읍에서 1박을 하면서 주민들을 만나 봤다.

세월호 사건이 있은 후로 주요 관광지로 떠 올라서 그런지 주민들의 삶은 넉넉해 보였고, 후한 인심은 팽목항에서 유족들과 관계자들에게 보여준 그들의 이웃사랑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들어 설 팽목항 일대의 진도항 건설과 ‘4.16 세월호기념공원조성’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으면서도 정작 세월호 사태의 이데올로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보수든 진보든 백성을 배불리 먹이면 된다는 가장 평범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선창 제단이 있는 팽목항

아침 일찍 팽목항을 찾았다.

참사사건이 일어난 지 5번째 봄을 맞이한 팽목항 앞 바다에는 그날의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러개의 작은 섬들이 죽은 듯이 누워 있었고, 4월의 바닷물은 아직도 차거웠다. 304명의 희생자들과 9명의 미 수습자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진, 어지러이 펄럭이는 노랑 리본들은 작은 새가 되어 바다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고, 자식들이 살아서 돌아 오기를,아니 싸늘한 주검으로라도 돌아만 오기를 눈물로 기다리던 장소에 차려진 제단에는 과자나 간식거리 등과 음료수와 소주병이 어지러히 놓여 있었다. 추모의 벽 타일 한장한장에 새겨진 사연들은 눈물이 앞을 가려 더는 읽지 못하고 돌아 섰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세월호가 거치되어 있는 목포신항에도 들렀다.

철조망에는 수십만개의 노란 리본과 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교복 입은 학생들 사진을 보면서 가슴 아팠고, 웬지 그들을 보호하지 못한 못난 어른이라는 죄책감에 미안한 마음이 앞서 기사사진 촬영조차 조심스러웠다. 펄럭이는 노란 리본 너머로 흉물스런 세월호가 마치 악마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목포신항에 거치되어 있는 세월호

이곳에도 가족단위나 전세버스를 동원하여 찾는 사람들이 많아 몇 분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서울에 살면서 고향인 전남 구례 산소에 들렀다가 죽은 세월호 아이들이 생각나 왔다는 박 모씨로부터 뜻 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국정원에서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는데, 하필이면 세월호에 투자를 했기 때문 일이 처음부터 이렇게 꼬여오고 있다”면서 “국정원에서 은퇴한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고 했다.

현재 한국에는 얼핏 들으면 진실 같은 이런 유언비어들이 다양한 스토리로 난무하고 있다. 정부에서 명확한 진실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세월호 회사 수장격인 유벙언은 2012년 일본의 중고 선박을 매입하여 5997톤에서 6825 톤으로 개수하고, 600여 명 정원의 배를 300여 명을 더 태우기위해 배 뒤쪽에 객실을 추가 개조했다. 과적된 화물과 급격한 방향선회,그리고 복원력을 상실한 배가 침몰하자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선원 15명은 ‘승객 마지막 한 사람이 구조 될때까지 배와 함께 한다’는 철칙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한다.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해경은 구조 골든타임을 놓치고, 국가재난 컨트롤 타워는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감시해야 할 언론은 오히려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냈고, 국가재난 방송사인 KBS 도 함께 침몰했다.”

이것이 팩트이고 이 몇 가지 진실을 파헤쳐 국민들에게 속시원히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치,사회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다. 그것이 세월호 유족들이 바라는 바이고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뀐 지금까지도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있지 않다. 왜냐? 모두가 이 사건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 광장의 별빛이었다.미안하다. 고맙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세월호 방명록.

“자식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처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쳐 먹는다” 자유한국당 차명진 전 의원.

이 두마디의 말이 세월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현 정치인들의 모습을 함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세월호 유족들을 더 힘들게 하고,국민들의 여론을 더욱 분열 시키면서 말이다.

광화문 천막을 철거하고 지어진 기억공간

현재 서울에는 세월호의 고통을 ‘안전한 사회’로 승화시킨 공간으로 광화문 천막 자리에 ‘기억, 안전 전시공간’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진도 팽목항에는 팽목항에 ‘4.16 기록관’을 세워달라는 세월호 유가족, 시민단체와 전남도와 진도군과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시민단체에서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후의 생생한 역사를 보존할 기억의 공간이 팽목항에 꼭 필요하다”며 ‘4·16팽목기록관’ 건립을 촉구했다.하지만 전남도와 진도군은 팽목항 일대에 360억원을 투입해 선박 정박에 필요한 시설과 도로를 건설하면서 기록관 건립엔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진도군 측은 팽목항에서 직선거리로 500여m 떨어진 임회면 남동리 일대에 건립될 국민해양안전관 안에 4·16 공원 조성, 희생자 기림비, 표지석 설치, ‘4·16 추모 기록관’(100㎡) 등을 함께 설치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동감이다.
추모 기록관이 수몰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진도 내에 있으면 되지 반드시 좁은 팽목항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념공원이 조성되면 목포신항에 있는 세월호 선체도 끌어다 함께 전시하자. 분주한 목포신항에 언제까지 둘수도 없고,그렇다고 잘라서 고철로 버릴 수도 없지 않은가. 모든 기념물을 한 군데로 모아서 추모공원이 조성된다면, 방문객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뿐만 아니라 ‘세월호 추모’와 ‘국민안전의 산 교육현장의 성지’가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을 것이다.

팽목항 (눈에 보이는 작은 섬 너머가 사고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