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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원로목사 신앙칼럼] 그리스도의 향기

May 17, 2019 <서울장로교회 김재동 원로목사>

모든 사물에는 각기 독특한 냄새가 있습니다. 장미꽃처럼 향기로운 냄새는 피곤하고 우 울한 기분을 전화시켜 주지만, 썩은 생선처럼 고약한 냄새는 오히려 불쾌감을 줍니다. 그리고 연탄가스와 같은 유독성 가스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히틀러가 육백만 명이나 되는 유태인을 죽일 때 사용한 독가스는 절망과 죽음을 주는 냄새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항상 각종 냄새를 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황송하게도 우리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2:15-16)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전쟁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전쟁에 승리한 군대는 개선행진을 했습니다. 이때 먼저 나팔과 북을 든 병사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승리를 알리면 백성들은 이에 호응하여 성문까지 뛰쳐나와 목청껏 환호성을 지르며 만세를 부릅니다. 이것을 신호로 성문이 활짝 열리고 맨 먼저 개선장군이 입성하면 그 뒤를 이어 대장들과 장교들 그리고 일반 병사들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연도에 도열해서 자기들을 열렬이 맞이해 주는 백성들을 보면서 그들의 어깨는 더욱 으쓱해지고 두 눈은 승리의 기쁨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군사들 뒤에는 커다란 향로가 여러 필의 말이 끄는 마차에 실려 들어오는데 거기에는 향불이 활활 타오르고 향로에서 나는 흰 연기와 향내가 성안에 가득 차게 됩니다. 그 뒤에는 포로들이 쇠사슬에 묶여 고개를 푹 숙인 채 끌려옵니다.

그날 향로에서 나는 향기는 개선용사들에게는 승리감을 한껏 고조시켜 주는 냄새가 되지만 포도들에게는 멸망과 절망과 공포의 냄새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향기도 이와 꼭 같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냄새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멸망으로 이끄는 냄새가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이지만, 복음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멸망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냄새가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복음은 생명과 죽음, 구원과 멸망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은 이러한 개선행렬을 직접 목격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실감나는 멋진 비유를 베풀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제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해본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향기가 어떠했는지 딱히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분의 냄새를 맡은 자들은 삶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실의에 빠져 희망 없이 살던 자들이 희망을 갖게 되었고, 이기적인 삶을 살던 자들이 이타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분의 향기에 취한 자들은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인생관과 가치관과 사생관과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더러운 귀신들은 예수님의 냄새에 접하자마자 벌벌 떨면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이제 우리의 운명은 끝났구나, 하면서 공포에 질렸습니다. 마치 살충제 냄새를 맡은 곤충과 벌레들이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처럼 예수님의 향기를 맡은 악령들은 살려달라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싫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품어지면 악취나는 것들이 물러가고 모든 더러운 것들이 정화되는 새로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더러운 죄악의 악취를 이기는 능력이 바로 예수님의 향기입니다. 사망을 이기는 생명의 향기, 미움을 이기는 사랑의 향기, 절망을 이기는 희망의 향기가 예수님의 온 인격 속에 넘쳐흘러 그분이 계시는 곳이면 어디든 생명과 용서와 화해와 소망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받은 또 다른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참 빛이신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이 세상에서 빛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것과 꼭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어떤 냄새를 풍기고 있는지 스스로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에게서 향긋한 냄새가 나는지 아니면 역겨운 냄새가 나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셔서 귀신들이 쫓겨나고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눌린 자가 해방되고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던 자들이 소망을 갖게 되고 심지어 나사로와 같이 죽은 지 사흘이나 되었던 자도 소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꼭 같은 향기를 발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작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변화시켜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냄새는 전파력이 강합니다. 그래서 멀리 멀리까지 그 냄새가 풍겨갑니다. 또한 냄새는 강한 전염성이 있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 집에 가면 아이들이 코를 움켜쥐고 담배 냄새가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고기 굽는 식당에 갔다 오면 여지없이 옷에 밴 고기 냄새가 집까지 묻어옵니다. 뿐만 아니라 냄새는 강한 동화성(同化性)과 중독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자들도 자꾸 그 냄새를 맡다보면 어느새 익숙해지고 맙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냄새의 이러한 특성들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떤 냄새를 풍겨야 할지 저절로 답이 나옵니다. 동시에 우리는 어떤 냄새는 피하고 어떤 냄새는 가까이 해야 하는지, 거기에 대한 답도 저절로 나옵니다. 악인들과 함께 어울리면 악인의 냄새가 배고, 선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 선한 냄새가 배는 법입니다. 잠언의 저자도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어리석은 자와 사귀면 욕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깃털이 같은 새들은 함께 모인다.”(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끼리끼리 모이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의 서양식 표현입니다. 서로 상반된 성격의 두 남녀가 결혼한 후 오랜 세월을 함께 생활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식성도 생활방식도 사고방식도 심지어 얼굴 모습까지도 서로 닮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늘 예수님과 함께 교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그 분을 닮을 수 있습니다. 나다나엘 호돈의 『큰 바위 얼굴』에 나오는 주인공 어니스트처럼 우리가 누구를 바라보며 사모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모습이 형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리스도를 닮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항상 예수님의 말씀을 접하고, 예수님과 영적인 교제를 가지며, 신실한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고, 매순간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방식(life style)을 따라감으로써 은연중 예수님의 향기가 내 몸에 깊숙이 배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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