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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원로목사 신앙칼럼]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성경에서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부분을 가리켜 성서신학에서는 ‘지혜문서’라고 칭합니다. 예언서나 시편 중에도 지혜문서에 속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지혜문서는 단연 잠언서입니다. 잠언서는 영어로는 ‘속담집’(Proverbs)이라고 하는데, 속담(俗談)의 일반적인 의미는 ‘민간에 떠도는 짤막하면서도 의미가 깊은 문장’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속담은 대체로 짧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한 마디에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속담이 속담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으며 입에 자주 회자되어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속담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히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촌철살인은 ‘한 치의 쇠붙이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뜻이므로, 짤막한 경구(警句)로 사람의 마음을 크게 뒤흔드는 속담은 어떤 면에서는 촌철살인과 동의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잠언에는 인생의 지혜를 교훈하는 내용들이 알알이 빼곡하게 박혀있는데,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내용 중의 하나가 언어생활에 관한 교훈입니다. 오늘 주제와 관련해 한 구절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잠언 25:15)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깎느니라.”
‘부드러운 혀가 뼈를 꺾는다!“ 얼핏 과장된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혀와 치아 중 어느 것이 끝까지 남느냐는 것을 생각할 때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에 한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혀와 치아 중에 어느 것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느냐?“ 이 질문에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제자를 향해 스승이 입을 크게 벌리고서는 입 안을 한번 들여다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물음에 대해 스스로 답을 하기를, 내 입 안에 치아는 이미 다 빠져버렸지만 혀는 아직도 그대로 온전하게 남아있으니 당연히 혀가 치아보다 더 강하지 않으냐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솝우화 중에 ‘참나무와 갈대’라는 우화가 생각납니다.
강가에 참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그 주변에는 갈대가 많이 자라고 있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참나무는 갈대를 비웃었습니다.
“너희들은 왜 항상 바람에 고개를 숙이니? 날 좀 봐! 나는 바람에도 끄떡없이 버티잖아.”
갈대들은 말했습니다.
“그건 우리가 겸손하기 때문이야. 넌 지금까지는 바람에 잘 견뎌왔지. 하지만 먼저 쓰러지는 건 네가 될 걸.”

참나무는 갈대들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며칠 후 큰 폭풍이 몰려왔습니다. 갈대들은 바람에 몸을 굽혀 살아남았지만, 참나무는 바람에 버티며 꼿꼿이 서 있으려다 바람이 너무 강해 결국 부러지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우화에서 “굽히는 것이 부러지는 것보다 낫다”(It is better to bend than to break.)는 교훈이 나온 것입니다.

금년 3월에 한국의 한 지하철역에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늦은 밤 술에 취한 한 중년남성이 고함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다가 급기야 경찰 두 명과 몸싸움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창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던 중 옆 벤치에 앉아있던 한 청년이 일어나 “이제 그만 하세요.” 하면서 경찰과 취객을 떼어놓더니 갑자기 취객을 끌어안고 다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 취객은 차음에는 흠칫 놀라 뒷걸음을 쳤지만 곧장 고개를 떨어뜨린 채 청년의 품에 안겨 한동안 흐느꼈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찰 두 명이 무력으로 제압하기도 버거워보이던 이 취객이 너무나 온순해진 것은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것을 보여준 한 구체적인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을 두고 칼럼을 쓴 어느 분의 글을 신문에서 읽으면서 공감이 되었습니다. 이 칼럼니스트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는 말을 소개했습니다. 역시 “부드러운 것이 강함을 이긴다”는 뜻입니다. 저는 유도를 교기(交技)로 삼는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도 한 주에 한 시간씩 체육관에 모여 유도를 했는데, 유도(柔道)는 부드러움을 이용해 역으로 강한 상대를 제압하는 운동입니다. 골프에서 흔히 ‘힘 빼는데 3년 걸린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힘을 뺀 부드러운 동작에서 나오는 빠른 볼 스피드와 정확한 임팩트(impact)가 비거리와 방향성을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잠언 말씀에서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라는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내하는 마음으로 부드럽게 말할 때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처세법에 관한 교훈입니다. 강하게 말하면 될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령 화가 나더라도 인내하면서 끝까지 부드러운 언사로 일관하다보면 거만하기 그지없는 관원의 강경한 태도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갑(甲)의 위치에 있다 할지라도 아랫사람들에게 부드러운 태도로 대한다면 의외로 존경과 협조를 받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강압적인 태도와 거친 언사는 외적인 복종을 가져올 수는 있어도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존경과 협조는 얻어낼 수 없습니다. 그리스어로 ‘권위’(authority)를 ‘엑수시아‘(έξουσία)라고 하는데, 이 말은 έξ(엑스, out of, ..로부터)와 ουσία(우시다, essence, 본질)라는 두 말이 합성된 단어입니다. 즉 참된 권위란 ’본질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알맹이도 없이 큰 소리만 쳐대는 허장성세(虛張聲勢)는 진정한 권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시카고 대학의 리처드 세일러(Richard H. Thaler) 박사는 넛지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주창한 ‘넛지’(nudge) 이론은 소통과 관련해 주목받는 이론입니다. 넛지란 ‘팔꿈치로 슬쩍 민다’는 뜻으로서, 강압적인 방법이 아니라 긍정과 유머의 메시지를 담은 설득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근한 예로,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 그려진 파리 그림을 통해 ‘슬그머니’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 이것이 바로 ‘넛지 효과’(nudge effect)입니다. 부드러운 혀는 이를테면 ‘넛지’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쪼록 우리의 일생생활 중에서 잠언의 교훈을 늘 마음에 새기고 지혜롭게 언어습관을 통해 넛지 효과를 거두는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