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인 임용선은 이미 죽었고, 빠블로(Pablo) 선교사만이 살아서 여기에 있습니다!”
중남미 니카라과 선교지에서 처음 만나 통성명을 하는 자리에서 마치 출가한 스님 처럼 나온 그의 대답이다.
그렇다. 그는 그렇게 지난 13년을 판자(양철)촌에서 예수와 함께,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세상을(?) 등지고 복음을 전하며 살고 있었다.
2006년 장신대(장로회신학대학)을 졸업한 그는 가난과 굶주림의 대명사인 니카라과에 파송된다. 하지만 오자마자 정착금 8백만원과 노트북, 그리고 박사학위 취득 논문 준비물과 옷가지들이 들어 있는 가방을 통째로 도둑 맞았고, 빈털털이가 된 그는 간신히 남의 집 양철 지붕 아래에서 선교를 시작했다. 그야말로 비만 피하면되는 광야교회(廣野敎會)였던 것이다.
가난과 마약과 도둑이 우글거리는 산중 같은 동네에서 복음을 전하다 강도를 만나 등에 칼이 꼽히기도 했고, 뎅기 모기에 물려 뎅기열로 죽음 직전까지 가는 모진 고난을 당하면서도 간신히 교회 터를 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 자리에 기적 같이 번듯한 교회(비젼교회)와 선교관이 들어섰지만 그 당시는 조그마한 판자집이었다고 사진을 보여 줬다.
그 와중에 유일한 선교 동역자였던 사랑하는 아내가 암으로 소천 당하자 아이들(1남2녀)조차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
“살아도,죽어도 제 곁에는 아무도 없는 혼자라는 고독감이 나에게 제일 힘든 싸움이었다”고 고백하는 임 선교사는, “죽으면 죽으리라의 결사각오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곳에서 뼈를 묻을 작정으로 오늘 한 날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는 또한, “뎅기열로 삶의 마지막이 찾아 왔을 때 주님께서도 찾아 왔었고, 그 분 앞에서 후회함이나 부끄럼 없는 사역을 감당하겠노라고 약속했다”고 하면서 “온전히 주님의 은혜로, 비젼교회와 소망교회에 현지인 성도 수가 각각 2백명이 넘어 섰고, 수십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선교관을 건축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임 선교사가 현재 섬기고 있는 사역으로는 수도 마나과 외곽의 까밀로 오르떼가 지역에서 현지인 교회인 비젼교회와 선교관, 또 이곳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인 띠꼬모 지역에 소망교회(현재 건축중)이다. 그리고 신학교 사역이다. 이 두 교회에서 현지어로 말씀을 전하고 있는 그는 “한국에서 전세금을 빼와 완공한 비젼교회와 선교관은 이 지역사회에 헌물하여 마을회관 용으로 사용하게 할 계획이다. 그리고 건축중인 소망교회에서는 가 건물에서 현지인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직업기술학교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현재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사역은 신학교인데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여 주셔서 오르떼가 지역에서 가장 좋은 위치의 건물을 아주 저렴하게 매입을 했다고 한다.
“현재 니카라과 목회자의 70%이상이 정규신학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목회자 양성과 재교육을 위한 신학대학 사역이 급선무이다”고 하면서 교단(장로회)의 허락으로 리모델링을 서두르고 있고, 또 가르칠 교사 확보를 위해 기도 중이다고 했다.
그런데 12년째 홀로 사역을 하던 임 선교사에게 뜻 밖의 동역자가 나타났다. 목사 친구의 소개로 재혼을 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동역자는 올 1월에 그와 결혼한 조순자 교수이다. 부산대학교 미생물학과 교수로서 초혼인 그녀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어 임 선교사님과 결혼하게 되었고, 선교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7월에 방학을 맞아 잠시 니카라과를 방문했던 그녀는 올 가을학기가 끝나는데로 돌아 와 신학대학을 맡아서 사역을 할 예정이다고 한다.
600여 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니카라과의 종교는 카톨릭이 우세지만 토속신앙적 요소가 강하고,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으로 현재 40% 정도가 개신교인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오순절 교회들로 교회에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다.
니카라과 선교에 관하여 궁금한 사항이 있거나 단기선교 파송에 관심이 있는 교회, 그리고 기도 받기를 원하는 분은 임용선 선교사, 전화번호 505)8681-2656 이나 abbalim@hanmail.net 로 연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