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둘째주 말씀> Aug 11, 2019 @ 05:05
우리가 살다보면 오해로 인해 빚어지는 비극이나 불행한 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목회를 하면서 오해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거나 성도들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경험이 있습니다. 다행히도 우연한 기회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중에 자연스럽게 오해를 푼 일들도 있지만, 끝내 오해가 풀리지 않은 채로 멍든 가슴을 안고 평생을 가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넌센스 퀴즈 중에 이런 것이 있죠? “5-3=2인데, 이게 무슨 뜻일까요?” 답은 “오해가 있을 때 세 번만 더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입니다. 그럼 “2+2=4인데, 이건 또 무슨 뜻일까요? 답은 “이해하고 또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입니다. 오해가 있을 때 상대방의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보면 이해가 될 때가 많이 있고, 아마 내가 모르는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고 일단 이해하려는 쪽으로 마음의 물꼬를 트면 진상(眞相)이 밝혀져 마침내 오해가 풀리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22장에 이런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 정복을 마치고 비로소 안식을 얻었을 때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터집니다. 오해로 인해 자칫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날 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 두 지파 반(半) 즉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半) 지파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요단강 동쪽 모압 지역(지금의 요르단)에서 기업을 달라고 모세에게 요구했고 모세는 조건부로 그 요구를 수락했었습니다. 모세가 내세운 조건은, 처자식과 모든 가축 떼를 이곳에 남겨놓고 나머지 열 지파와 함께 요단강을 건너가서 가나안 정복에 함께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7년간에 걸친 길고도 힘든 가나안 전쟁을 성공적으로 잘 수행했습니다. 그러자 이제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많은 재산과 가축과 금, 은, 동, 철과 의복을 주면서 여호와 신앙을 잘 지킬 것을 당부하고 축복기도를 한 후에 처음에 약속한 대로 그들을 가족들이 있는 가나안 동편 모압 지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열 지파의 환송을 받고 요단 강가에 이르렀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요단 계곡은 험하고 강은 깊은데 우리가 이제 이 강을 건너 요단 동편 땅으로 가면 이 이스라엘 본토를 자주 내왕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 보면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이스라엘 본토에 사는 열 지파가 우리를 잊어버리거나 괄시해서 ‘너희들은 이 가나안 정복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으며, 따라서 너희들은 여호와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자들로서 이방인들 하등 다를 바가 없다’고 할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우리가 7년 동안 목숨 걸고 싸워 승리한 그 영광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이요, 우리 후손들도 자연히 주눅이 들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무엇보다도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여호와 신앙이 식어져 마침내 정말 이방인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들이 되고 말텐데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이런저런 염려를 하면서 무슨 좋은 방도가 없을까 궁리를 하던 중에 가나안 본토 접경 요단강 언덕에 커다란 단(壇)을 쌓아 증거로 삼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게만 하면 요단강 이편에서도 수시로 그 단을 건너다보면서 조상들의 영광스러웠던 과거의 업적을 기릴 뿐만 아니라 여호와 신앙도 꾸준히 잘 지켜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정말 신앙적인 동기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결단을 내린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속사정을 잘 알 턱이 없는 열 지파는 이것이야말로 중앙성소 외에 그들 나름의 제단을 쌓는 행위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라고 생각하여 그 당시 중앙성소가 있던 실로에 집결했습니다. 한판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똘똘 뭉친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출정을 하기 전에 일단 진상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사장인 비느하스와 열 지파의 대표들로 진상조사단을 꾸렸습니다. 진상조사단은 그들에게 도착하자마자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꾸짖었습니다.
(여호수아 22:16,19)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날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떠나서 자기를 위하여 단을 쌓아 여호와를 거역하고자 하느냐…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 외에 다른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悖逆)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패역하지 말라.”
그러면서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재앙을 당한 두 가지 역사적인 사건들을 상기시켜줍니다. 한 가지는 광야생활 중 모압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 브올의 제단 앞에서 베풀어진 축제에서 모압 여인들과 간음한 일로 인해 하루에 24,000명이나 떼죽음을 당한 일이요, 또 한 가지는 여리고성 함락 후에 아간이 하나님이 금하신 전리품을 훔친 일로 아이성 전투에서 패하고 아간 가족들이 몰살당한 사건입니다. 진상조사단은 이 두 사건을 상기시켜주면서, 만일 너희들이 별도로 제단을 쌓고 거기서 제사를 드린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금하시는 일로서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나머지 열 지파 전체가 재앙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단을 쌓은 두 지파 반은 그들이 단을 쌓은 데 대한 순수하고 신앙적인 동기를 설명하면서 해명을 합니다. 진상조사단이 그들의 말을 듣고 보니 자기들이 괜히 오해했다는 생각에 머쓱해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열 지파에게 돌아가 진상조사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우리가 자세히 알아보니 그들이 여호와께 죄를 지은 것이 아니더라. 여러분들이 성급하게 싸움을 하지 않고 사전에 진상을 파악하게 함으로써 불필요한 희생을 피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이 분명하도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10지파는 모두들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했고, 그 이후로는 어느 누구도 “싸우러 가자”는 말을 입 밖에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단을 쌓았던 자들은 그 단 이름을 ‘엣’이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증거’라는 뜻입니다. 이 ‘엣’단이 우리 사이에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신다는 증거라는 의미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들이 쌓은 단은 제단(altar)이 아니라 기념비(monument)였던 것입니다.
오해하기 전에 일단 진상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저 너무 성급하게 감정적으로만 대응하다 보면 자칫 일을 그르치고 때로는 되레 부끄러움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엣’단의 사건을 통해 배운 귀한 교훈을 우리의 삶 속에서 잘 적용하여 소모적인 갈등을 줄이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잠언 18:13)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