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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원로목사의 신앙칼럼] 이스라엘의 광복절

8월 셋째 주일 Aug 18, 2019 @ 08:4

이스라엘의 광복절

우리 나라의 8.15광복은 일제의 암울한 통치에서 벗어난 감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쟁취할 수 없는 해방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1910년에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한일합병조약에 조인함으로써 36년간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로 인권을 유린당하며 온갖 수탈을 당했습니다.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창씨개명을 하고 우리 나라 말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악랄한 정책을 폈습니다. 정말 우리 민족에겐 희망이라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드디어 미국이 진주만 기습사건을 기화로 연합군에 가세하게 됩니다. 1937년에 시작된 일본의 중국 대륙 침략전은 태평양 전역에 걸쳐 미국 주도의 연합국과 일본의 전면전으로 확대되었고, 마침내 이 태평양전쟁은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되었으며, 그 덕분에 우리 나라도 그 지긋지긋하던 일제 36년 강점기의 사슬에서 벗어나 감격적인 해방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본은 서양의 식민지를 해방하여 동양 민족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수립한다는 미명 하에 이 전쟁을 ‘대동아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2차 대전 후 연합국이 이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지금은 ‘태평양전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전쟁을 치르면서 인적자원이 고갈되자 일본은 수십만 명에 달하는 우리 나라 젊은이들을 일본의 군수공장이나 탄광에 강제징집하는가 하면, 수많은 젊은이들을 징병으로 끌어가 총알받이로 삼았고, 마침내 4천 3백 명의 대학생들을 학도병으로 강제 입대시키는가 하면 심지어 그들의 결사대인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에 편입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중요한 이슈로 거론되는 위안부(전쟁 성노예)는 그 당시 군위안부로 강제징집되었던 꽃다운 젊은 여인들이었음을 온 세계가 다 알고 있습니다. 일제의 만행은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어 우리 나라 국민들이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한국 역사에서 3.1절과 8.15 광복절은 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한국 교회는 이 두 날을 특별히 기념하여 대부분의 교회들이 주일에 기념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일제하에서 조국의 자주 독립을 염원하며 가장 열렬하게 앞장섰던 자들이 바로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1919년 기미년 3·1 독립운동도 기독교인들이 주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교인들이 독립운동의 선두에 서다 보니 기독교인들에 대한 일제의 탄압도 매우 심했습니다. 참으로 우리 민족은 암울하고 절망적인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43년 11월 27일,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수상,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에서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침내 1945년 8월 6일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고, 순식간에 20만 명이 몰사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전역이 황폐하게 될 것을 염려한 천황은 울며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8월 15일에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광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절망적인 삶을 살던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제 드디어 희망의 빛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광복절이 있다면, 유대인들에게는 유월절이 있습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3천년 동안이나 지켜온 절기로서 이렇게 오래 된 절기는 세계에서 유월절밖에 없다고 합니다. 유월절은 국가적인 축제일로 공식 제정되었고 이스라엘 건국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유대인 중에 20세 이상 된 남자는 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각 곳에서 모여들었습니다. 일년 내내 유월절에 가기 위하여 돈을 모으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의 생활습관이 되었습니다. 유대인 남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모두 유월절에 참석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유월절에 부모님을 따라 예루살렘에 가신 일이 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절기 중 제일 먼저 오는 절기로서 유월절을 시작으로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유월절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가장 오래 된 절기일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절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을 통해 이미 출애굽을 약속하신 바 있습니다.
(창세기 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나님께서는 아직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이 태동하기도 전에,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개명도 하기 전에 이미 출애굽 사건을 예언하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요셉을 먼저 애굽 땅에 보내시고, 그를 통해 야곱의 가족들이 집단이주를 하게 하시고,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게 하시고, 마침내 약속하신 40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그들을 괴롭히는 애굽인들을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징치하심으로써 마침내 바로가 항복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을 맞이하게 됩니다. 전혀 이루어질 것 같지 않고 그저 뜬구름 잡듯이 막연하게만 보였던 하나님의 예언이 이렇게 문자적으로 정확하게 성취된 것을 볼 때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어쩌다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기획하시고 연출하신 한 편의 멋진 드라마였습니다. 신학자들 가운데는 출애굽 사건을 정치적으로 또는 사회학적으로 해석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민족적인 자각이 생겨 모세의 주도 하에 일으킨 민족봉기라고 주장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전혀 설득력이 없는 억지주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광복절도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강력한 일제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연합군을 움직이셔서 일본을 심판하시고 우리 나라에 감격적인 해방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워싱턴 D.C.에 가면 한국전쟁 참전비가 있습니다. 6.25동란 때 참전했던 미군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참전비입니다. 그런데 이 기념비에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다)라는 유명한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자유를 위해서는 값진 희생을 치러야만 합니다. 광복은 비록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지만 사실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희생이 치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은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었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그 만한 대가와 희생이 치러졌습니다. 유월절 밤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모든 집의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도록 했고, 그 피를 볼 때 죽음의 사자가 넘어감으로써 즉 유월(逾越)함으로써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해방과 자유를 위해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애굽은 사탄이요 죄요 사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탄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를 얻기 위해 아무런 죄도 없는 어린 양을 희생시키셨습니다. 이 희생양을 가리켜 유월절 양이라고 합니다. 고린도 전서 5:7은 예수님이 바로 유월절 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양은 장차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그림자로 미리 보여주는 예표(豫表)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소개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예수님은 유월절에 잡히셨고, 또 잡히시기 전에 유월절 만찬을 드시는 자리에서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요,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 때문에 거저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