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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원로목사의 신앙칼럼] 감사의 일상화

우리는 뭔가 특별한 일에 대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일상의 소소한 감사거리에 대해서는 그저 당연하게 여기며 무덤덤한 마음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에서 특별한 일은 어쩌다 일어납니다. 우리는 네잎 클로버를 좋아합니다. 네잎 클로버를 찾으면 저절로 행운이 굴러들어올 것이란 생각을 하며 횡재했다는 생각에 곱게 말려서 비닐로 레미네이팅해서 책갈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저도 교회에서 우연히 네잎 클로버 책갈피를 주웠는데,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제 책상 속에 몇 년 째 고이 간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저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리라는 것을 기대해서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괜히 소중하게 생각되어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잎 클로버에 비해 세잎 클로버는 너무나 흔해서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네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지만 세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클로버의 꽃말들이 주는 교훈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행운이란 어쩌다 오는 것입니다. 그 행운을 바라는 것은 일종의 요행심(僥倖心)입니다. 그러나 어쩌다 오는 행운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복권에 당첨되는 것은 분명히 행운입니다. 네잎 클로버입니다. 그러나 복권에 당첨된 이후 오히려 삶이 더 비참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복권에 당첨되기 이전에는 고생하는 아내를 조강지처로 여겨 소중하게 생각했는데 복권에 당첨된 후에는 아내를 버리고 가정을 파탄내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아 만족하는 비결을 터득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세잎 클로버를 족하게 여기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나날의 일상이 곧 기적입니다. 굶지 않고 하루 세 끼 먹고 사는 게 감사의 조건 아닙니까? 나라가 전쟁에 휩쓸리지 않고 평안한 가운데 지내는 것도 당연하게 여길 일이 아닙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분쟁과 갈등으로 인해 가족을 잃거나 뿔뿔이 흩어지고 또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는 것을 볼 때 평안한 중에 큰 탈 없이 지내는 무탈한 삶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건강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중병이 들었을 때 최첨단 의술로 수술을 받을 수 있고, 새로 개발한 신약을 복용할 수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덕분입니다. 또한 때로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몸 안에 있는 자연치유력으로 병을 낫게 해주시고, 백혈구로 하여금 치열하게 싸워 병균을 물리치도록 도우시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건강을 잃고 나면 평소에 누리던 건강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두 다리로 걷으며 맘껏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 속의 은혜와 모든 혜택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늘 의식하며 살 때 감사의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내과의사이면서 수필가인 분의 글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분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 인체에는 갓난아기는 약 20조 개, 그리고 성인은 약 60조 개의 세포가 있는데, 현미경으로 보아야 볼 수 있는 이 조그만 세포에 세포막이 있어 세포에 필요한 것은 보존하고 불필요한 것은 밖으로 내보내는 아주 정밀한 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포 하나하나에 여러 개의 방들이 있는데, 방마다 고유한 기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정보를 처리하는 방, 발전소, 물류센터, 쓰레기 처리장, 방역을 하는 방 등등 다양한 기능의 방들이 있어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유지해준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어떤 과학서적에서 읽은 것인데, 세포 하나의 기능을 책으로 쓰면 수천 페이지가 될 정도로 엄청나게 정밀하고 세분된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인체 자체가 기적의 산물이요, 우리가 이 순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넘치는 감사를 해야 할 조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의 혈관의 길이는 약 12만 킬로미터로 지구 세 바퀴 길이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핏줄 가운데 한 군데만 막혀도 생명의 위험이 따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우리 몸이 얼마나 신묘막측(神妙莫測)하게 창조되었으며, 따라서 우리가 호흡하며 살아가는 매순간이 얼마나 기적적인 순간인가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에 대하여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고 있나요?

(시편 139:13-14)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였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던 삼중고의 헬렌 켈러 여사가 쓴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라는 글이 자주 인용되곤 합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사흘 동안 매일매일 할 일들을 계획해서 사람들도 만나고, 미술관과 박물관에도 가보고, 연극과 영화도 관람하고, 아침의 동트는 모습도 보고, 하루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 들어가 그들의 사는 모습을 체험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헬렌 켈러 여사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했던 모든 것들은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성한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에 대하여 무감각합니다.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니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무제한으로 즐기는 물과 햇빛과 공기에 대해서도 우리는 늘 감사해야 합니다. 물은 우리 몸의 70%를 차지합니다. 물이 있어야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만일 공기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햇빛이 없다면 식물이 자랄 수 없고, 식물이 자라지 못하면 곡식도 거두지 못하고 가축도 먹일 수 없으니 결국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감사가 아니라 일상감사를 생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상 감사를 영어로 옮겨본다면 ‘daily thanksgiving’ 정도로 옮길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가 일용한 양식 즉 ‘daily bread’를 구하듯이, 우리의 일상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일상적인 감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99%가 평범한 일상의 연속입니다. 특별한 일은 가물에 콩 나듯이 어쩌다 일어납니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중병에 걸리거나 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은 아니며 또 흔히 있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교통사고 중에도 무사했다면 당연히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중병에서 고침을 받았을 때도 당연히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사하게 하루를 보낸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또한 큰 병 없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에 대해서도 별로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자면 평소에 누리는 이러한 은혜들이 더 큰 감사의 제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토사고 당하지 않는 것, 중병에 걸리지 않는 것, 이것이 더 큰 은혜가 아닌가요? 어쩌다 먹는 별미 특식이 아니라 늘 먹는 그 밥에 그 나물이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소소한 것들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아는 자가 진정으로 행복한 자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小確幸)이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적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점차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최소한의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살자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 즉 ‘심플 라이프’(simple life)를 선호하는 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좀 변두리에서 비교적 큰 단독주택에 살다가 은퇴하면서 콘도로 이사를 하면서 세간을 정리한 경험이 있는데, 이때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우리가 불필요한 것들을 너무나 많이 지니고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페어팩스 지역에 이사를 오면서 모든 게 편리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년 이사기념일(moving anniversary)을 지키며 가족들에게 기꺼이 한 턱 쏘는 작은 행사를 치르고 있습니다.

없는 것으로 불평하지 말고 있는 가진 것으로 인해 감사할 때 우리는 진정 자족할 수 있고, 자족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행복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모든 일에 감사하며 늘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