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유에스코리아뉴스
김재동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Featured 교회소식

[김재동 원로목사의 신앙칼럼] 인생의 날을 헤아리는 지혜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 시편 90편은 첫 머리에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인간의 유한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 90:1-4)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모세는 이 시편 12절에서 이렇게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혜를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計數)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인생의 날수를 헤아릴 수 있는 것이 곧 삶의 지혜입니다.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아무도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유한한 인생에서 어떻게 시간을 잘 선용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흔히들 “시간은 돈이다”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시간은 돈보다 훨씬 더 소중합니다. 시간이 있으면 돈은 벌 수 있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시간을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다면 돈 많은 부자는 얼마든지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은 금이다”(Time is gold)라는 금언을 만들었다는 벤자민 프랭클린은 평소에 주위 사람들에게 늘 시간의 소중함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가 미국의 과학자로서 정치가로서 그리고 사상가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토록 시간을 아껴 선용할 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시간의 질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오래 살기를 바라기보다 잘 살기를 바라라”(Wish not so much to live long as to live well)고 교훈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단순히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인생에 성공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잘 관리하는 청지기의 사명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엡 5:15-17)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원래 “세월을 구속(救贖)하라”(redeem the time)는 뜻입니다. 즉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굴레로부터 시간을 빼앗아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시간을 빼앗기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릴 필요가 있습니다. ‘청지기’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재물의 청지기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재물의 청기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시간의 청지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에 대해서는 1/10을 요구하셨지만, 시간에 대해서는 1/7을 요구하셨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주간의 한 날을 택하여 성별하시고 그 날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후회 없이 보람 있게 살려면 하루하루 매순간의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레오나르드 다 빈치는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다주듯이 잘 보낸 일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요즘에는 잘 사는 것 즉 well-being을 강조하지만 한편으로는 잘 죽는 것 즉 well-dying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비단 인생의 종말에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하루하루의 성실한 삶이 쌓여 보람 있는 한 해를 이루므로 현재가 중요합니다. 오늘이 중요합니다. 과거가 시효 만기된 수표요 미래가 약속어음이라면 현재는 당장 사용가능한 현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제도 내일도 나의 시간이 아닙니다. 내게 available한 시간은 오직 현재뿐입니다. 라틴어 중에 ‘carpe diem’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 날을 붙잡아라”(Seize the day)라는 뜻인데,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입니다. 워싱턴 지역에는 바로 이 이름을 가진 기독교 합창단도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라고 합니다. 그런데 크로노스라는 말은 원래 시간을 주관하는 신의 이름입니다. 올림포스 신전에는 크로노스신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 젊은이의 발에는 날개가 달려있고 오른 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들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는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늘어뜨려져 있지만 머리 뒷부분에는 머리털이 없는 민머리 형상입니다. 이 조각상을 볼 때 관광객들은 너무나 우스꽝스러워서 처음에는 웃음을 터트리지만 그러나 그 아래에 어느 시인이 이 형상을 풀이한 글을 읽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숙연해져서 옷깃을 여미게 된다고 합니다.
“시간은 쉬지 않고 달려야 하니 발에 날개가 있고, 시간은 창끝보다 더 날카로워 인정사정 봐주기 않기 때문에 오른 손에 칼을 잡았고, 시간은 누구나 잡을 수 있기에 앞에는 머리칼이 있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도 잡을 수 없기에 뒤에는 머리칼이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곧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오래 전부터 대학교와 대학원, 경영대학원의 MBA 과정에서 ‘시간 관리학’(Time Management)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해오고 있습니다.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곧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시간관리가 점차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자가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1년의 가치를 알고 싶거든 학점을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 물어보라. 한 달의 중요성을 알고 싶거든 달을 채우지 못하고 나온 미숙아를 낳은 어머니들을 찾아가 보라. 한 주간의 가치를 알고 싶으면 주간신문 편집자들을 만나보라. 한 시간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거든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1분의 가치를 알고 싶거든 간발의 차로 기차를 놓친 사람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1초의 가치를 알고 싶거든 자동차 사고 순간을 위기일발로 모면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평생을 최고의 시계를 만드는 데 헌신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들의 성인식 날 손수 만든 시계를 선물하였습니다. 그 시계는 특이하게도 시침은 동, 분침은 은, 초침은 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은 시계를 받아들고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시침이 가장 크니까 금으로 장식하고 가장 가는 초침을 동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요?” “아니다. 초침이야말로 금으로 만들어야 한단다. 초를 잃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시간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1초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하루를 잃고 일생을 잃어버립니다. 인생의 승패는 매순간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소털같이 많은 날이라고 내일로 미뤄서도 안 됩니다. 그날 감당해야 할 몫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말라야 산에 사는 어떤 새는 늘 남의 둥지에 더부살이를 하면서 설움을 당합니다. “그래, 내일은 기필코 집을 지어야지.” 늘 내일 타령만 하다가 결국 집을 짓지 못하고 추위에 얼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이 중요합니다. 오늘은 어제 이 세상을 하직한 자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내일’입니다. 내일은 내 시간이 아닙니다. 오늘만이 내게 가용한 시간입니다.

이제 성탄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초림의 예수님을 기리는 날이지만 동시에 다시 오실 심판주 예수님을 대망하는 대림절의 절정이기도 합니다. 제 자신부터 시간의 선한 청지기로서 새로 맞이할 한 해를 지혜롭게 계획하고 실천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의 삶에 아름다운 결실을 거둘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