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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원로목사 신앙칼럼] ‘어머니’라는 이름.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해마다 어머니 날(Mother’s Day)이 되면 생각나는 감동적인 시가 있습니다.

심순덕 님이 쓴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입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철든 후 뒤늦게 깨달았을 때는 안타깝게도 이미 때가 늦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자칫 어머니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무심코 지나치기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 시가 우리에게 깨우쳐주듯이 어머니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아드려야 하는 고귀한 희생입니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지고지순한 모성애로 인해 더없이 강인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성경 사무엘하 21장에는 강한 어머니의 모성애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통치하던 때에 3년 연속 기근이 들어 나라 형편이 몹시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께 기근을 그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이유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여호수아 9장을 보면, 비록 속임수에 당하긴 했지만 여호수아는 기브온 족속들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화친조약을 맺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이를 무시하고 기브온 족속에 대한 인종청소를 단행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진노하사 3년 연속 기근이 임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그 이유를 알게 된 다윗은 기브온 백성의 대표들을 불러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니 사울 왕의 자손 중 일곱 명의 아들들을 자기들이 목매어 달도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사울의 자손 일곱 명을 내어주니 기브온 백성이 그들을 산 위에서 목매어 죽였습니다. 이때 한꺼번에 두 아들의 목숨을 잃은 리스바라는 여인은 아들들이 처형당한 그 산에 올라가 봄부터 가을까지 두 아들의 시신을 지켰습니다. 낮에는 새들이 시신을 해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밤에는 짐승들이 해하지 못하도록 밤낮 뜬 눈으로 두 아들의 시신을 지켰습니다.

이 여인의 이야기가 다윗 왕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이 여인의 지극한 모성애에 감동을 받은 다윗은 그녀를 위로할 방도를 강구하던 중 사울 왕과 요나단 부자의 유골과 함께 나무에 달려 죽은 사울의 일곱 자손의 유골을 거두어 사울 왕의 아버지가 묻혀 있는 선영에 함께 매장함으로써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주었습니다. 비록 무고하게 두 아들의 목숨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어머니의 애틋한 모성애로 인해 두 아들은 죽어서나마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여인의 모성애를 통해 어머니가 얼마나 강인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흔히들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 견주어 언급되곤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자녀들과 늘 함께 계실 수 없어서 대신 어머니를 보내셨다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아가페 사랑에 가장 근사한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일 것입니다. 영국에서 세계 102개 국가 4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어머니’(mother)라는 단어가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로 시작되는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께서 지은 시에다 이흥렬 작곡가가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청년 이흥렬은 일본으로 유학을 갔지만 작곡에 꼭 필요한 피아노를 살 돈이 없어 음악공부를 접으려고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어머니는 새벽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원근 각처의산들을 돌아다니며 부엌 연료로 긴요하게 사용되던 솔방울을 모아서 판 돈 400원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 쌀 한 가마가 13원이었으니 400원은 정말 큰 돈이었습니다. 효성스러운 아들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맨 처음 작곡한 곡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