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30년 동안 거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고전 가구 하나가 무지하게 갖고 싶어 하는 젊은 미국인 부부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그런데 서너 번 나와 함께 이사를 다니면서도 고 가구로서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던 반닫이를 정리하던 날 뜻밖에도 1980년대 워싱턴 동포사회의 단체 활동을 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인 공로패가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3년 전인 1987년 5월 31일 날짜가 찍힌 공로패는 재미대한부인회 중앙본부 배용분 회장이 채인숙 패어팩스 지부장에게 증정한 것으로 되어있다. 지금은 두 분 다 이미 작고하셨지만 고 배용분 회장은 현 워싱턴영남향우회 배경주 회장의 모친이었고, 고 채인숙 지부장은 영화배우 황해 씨의 여동생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동아식품과 함께 했다.
1982년 창립된 ‘재미대한부인회’는 2004년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매입을 위해 티셔츠를 팔아 모은 6700달러를 기부했는 가 하면 2019년에는 매년 과일, 땅콩 등을 팔아 만든 수익금 1만 달러를 ‘코리안커뮤니티센터’ 건립 기금으로 기탁하기도 한 자랑스런 우리 어머니들이 만든 단체이다.
배경주 회장 또한 어머니 배용분 회장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1986년 산 ‘행사 포스터’를 보내왔다. 1986년 12월 14일 케네디 홀에서 개최된 공연은 재미대한부인회 중앙본부에서 주최한 것으로, 그 당시 한국에서 내노라 하는 인기 연예인들이 대거 초청되어 있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가수 전영록을 비롯하여 이용, 원로가수 백설희 씨가 초청되었고, 코미디언 구봉서 씨를 비롯하여 백일섭, 박근형, 김수미, 사미자, 강부자, 노주현, 이정길, 이순재 등 유명 탈랜트 및 배우들이 총동원된 그야말로 화려하게 펼쳐진 공연이었다.
이렇듯 세월의 흔적은 어떤 식으로든 나타난다.
“봉사는 인간과 사회를 변화 시키고 봉사자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다!”고 했다. 오늘날 동포사회의 발전 배경에는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리 이민 1세대들의 헌신과 봉사가 있었다.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리라 -서산대사의 한시이자 백범 김구 선생의 좌우명이다. 시간의 향기를 품고 있는 고 가구 하나를 시집보내면서 워싱턴 동포사회도 자연스레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Published on: May 9,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