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죽음을 경험한 박종호 장로 찬양 부흥성회가 21일 워싱턴선한목자교회에서 열려 토요일 밤을 뜨겁게 달구었다.
“예수가 진짜입니까?”, “예수가 꼭 필요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찬양 부흥회를 시작한 박 장로는 찬양, 간증, 말씀을 조화롭게 믹서 하면서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진행했다.
특유의 유머 감각과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그의 간증은 부흥성회를 웃음과 은혜의 눈물바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말씀과 간증 중간중간에 함께 부른 찬양은 그가 왜 한국의 파바로티, 기독교계의 BTS라 불리는지를 여실히 증명해 준 집회였다.
조수미, 신영옥과 함께 서울대 음대 전설이었던 그는 3학년 재학 중인 1984년 이태리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출발 1개월 전에 주님을 만나 유학을 포기하고 고려신학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찬양 사역자의 길을 걷게 된다.
1987년 6회 전국복음성가 경연대회서 ‘내가 영으로’로 대상을 차지하여 가스펠계 스타로 발돋음 했던 그는 뉴욕 메네스 음대 대학원 과정을 마친 후 2000년 오페라 가수로 데뷔했다. 그러나 돈 안되는 카스펠 가수를 때려치우고 오페라 가수가 되겠다던 그는 데뷔하는 그날 밤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첫 번째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다.
미국에 거주하면서(휴스턴, 뉴저지) 50개 주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찬양 간증을 하면서 성가 음반 200만 장 이상 판매하여 350만 달러를 선교 후원한 그 이지만 2016년 간암으로 두 번째 죽음을 맞닥뜨리게 된다.
다행히 대한민국의 의료 기술과 딸 지윤 씨의 간 기증으로 다시 살아난 그는 이날도 많은 시간을 간암 극복과 제2의 사역에 대한 간증에 할애했다.
“내가 비만해도 건강하게 활동했는데 어느 날 건강검진에서 간경화에 암조직 9개가 발견되어 간을 잘라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딸의 간 중 3분의 2가 제게 이식됐습니다. 아버지라는 자가 사랑하는 딸의 간을 뜯어 먹고 다시 살아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 “수술 후 딸이 진통제 마저도 소용없을만큼 커다란 고통을 이겨내던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울곤합니다.”라고 간증한 박 장로는, 마지막으로 착한 딸은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 내가 안 짜르면 아빠가 죽자나”고 클하게 대답했다고 전했다.
박 장로는 또한 18시간 동안의 수술 후 무균실에 있는 동안 뿌연 김 사이로 전 세계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 보았다고 하면서 ‘누군가 날 위하여’ 찬송을 눈물과 함께 불렀다.
“오늘 지병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 치유의 영이신 하나님은 만나야 할 자에게 만나주실 겁니다”고 마지막 축복 기도를 마친 박 장로는 “코로나로 힘든 이때에도 해외 선교사님들은 척박한 곳에서 목숨 걸고 선교하고 있다. 선교만이 나라를 살리고 교회를 살린다”고 하면서 “영광의 그날까지 주만 바라보자”고 했다.
박 장로는 현재 ‘예수 전도단’ 일원으로 사역 중이며 이날 판매된 음반 또한 전액 선교 사역에 사용된다.
하애유에스코리아 강남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