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효능이 좋은 백신인 화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을 직접 생산하는 나라다.
그런 나라 국민들이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며 소·말 구충제를 복용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사람은 소나 말이 아니다”고 경고했을까…
미국은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이 완성되기 전부터 입도선매해 백신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백신이 남아돈다. 그런데 일부 미국인들은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있다.
27일 현재 2차 접종까지 모두 마친 접종률은 51.36%에 불과하다. 미국이 백신 접종을 가장 빨리 시작했음에도 이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세계에서 2차까지 백신 접종을 완료한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스페인으로 68.29%다. 미국은 13위에 그치고 있다.
최근 일부 미국인들은 백신 대신 주로 소와 말의 구충제로 널리 쓰이는 ‘이버멕틴’을 복용하고 있다.
미국질병통제센터(CDC)에 따르면 통상 이버멕틴 처방전은 1주일에 약 3600건 정도 발부됐다. 그러나 올해 1월 초 10배가 넘는 3만9000건으로 늘었고, 이달 중순에는 8만8000건까지 급상승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전보다 24배 급증한 것이다.
이버멕틴을 복용한 뒤 문제가 생겨 병원에 입원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CDC는 이 약을 과다 복용할 경우 위장 장애, 신경 손상, 방향감각 상실,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CDC는 특히 트위터를 통해 “당신은 소나 말이 아니다. 정말로 복용을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이버멕틴 남용은 공화당 의원과 보수 언론의 합작품이다. 론 존슨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버멕틴이 코로나19를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고, 이를 폭스뉴스 등 미국의 극우언론이 확대재생산했다. 이후 이버멕틴을 복용하는 미국인이 급증했다.
미국인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 동서양 문화 차가 있기 때문이다. 동양인들은 마스크뿐만 아니라 얼굴이 타지 않도록 얼굴가리개를 즐겨 쓰는 등 이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마스크는 범죄자나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한사코 마스크를 쓰지 않아 지금도 마스크 의무화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동양인들은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때 눈을 본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입술을 본다. 따라서 입술을 가리는 마스크는 범죄자나 쓰는 물건이라고 치부한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1988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 세금인상과 관련 논쟁이 벌어지자 “결코 새로운 세금은 없다”며 “Read my lips(내 입술을 보라)”라고 말해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는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표현이 됐다.
그런데 그는 집권 후 약속을 깨고 세금을 인상해 또다시 ‘Read my lips’가 유행했었다.
미국인들이 한사코 마스크를 거부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것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양이 과학적이라는 ‘도그마’가 깨지는 순간이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선생님이 아편전쟁을 설명하면서 중국이 영국에 패함에 따라 ‘서세동점’의 시대가 열렸고, 동서양의 승패를 가른 것은 ‘과학’이었다고 강조했다. 선생님이 동양이 서양을 이기기 위해서는 과학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입에 게거품을 물 정도로 열강을 하셨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필자는 ‘서양은 과학적, 동양은 비과학적’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결코 서양이 과학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현대는 과학이 ‘신’이다. 그런 과학을 거부하면 쇠퇴가, 수용하면 번영이 따라온다.
서세동점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동세서점의 시대가 오는 징조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서양은 과학적, 동양은 비과학적’이라는 열등감을 극복하는 계기는 될 듯하다.
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기사제공 = 하이유에스코리아 제휴사,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