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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노트북] 세상에 이런 일이 ‘미국 교실’에서요?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교육위원 선거 출마자들의 후원의 밤에 다녀왔다.

9월 29일 저녁, 팰리세이즈파크 교육위원 선거 출마자 3인의 후원 행사에서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움직여지는 원동력인 풀뿌리 민주주의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고 ‘그늘’도 볼 수 있었다.

올해는 11월 2일 중간선거가 열리는데 이때 각 타운의 시 의원 및 교육위원도 선출된다. 교육위원이야 말로 이곳 미국에선 풀뿌리 민주주의의 출발이 되는 중요한 자리다. 유난히 교육에 관심이 많고 교육열이 높은 동포들 에게는 가장 친숙한 선출직이기도 하다. 팰리세이드 파크의 경우 교육위원 정원이 9명 인데 3년 임기로 매해 3명씩 선출 한다고 했다.

한국이라면 무엇이 됐든 선출직은 각 정당 소속 한 명씩 출마하지만 미국에선 두 세명이 짝을 이루어 출마한다는 것이 내겐 무척 새로웠다. 이번 팰리세이즈 파크의 교육 위원 선거에는 현직 교사 출신인 민은영씨, 동포 자녀들을 위한 한국학교 경영에 혼신을 다했던 신창균씨, 몸과 마음이 남다른 자녀의 교육 현실의 벽을 깨고자 고군분투했던 학부모 정수진 씨, 이 삼인방이 조합을 이루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세 후보들의 출마 계기와 타운 내의 시민 단체 대표들이 후보들을 지지하는 이유를 들어보니 한국에서 사교육 현장이지만 아이들의 교육에 십수년 동안 몸을 담아 온 나로서는 촉각이 곤두섰다.

게다가 이날 마침 내 테이블에는 후보들이 통감하는 교육 현장의 장대비를 그대로 맞고 있는 팰팍의 학부모 두 명이 자리하고 있어서 개선되어야 할 교육 환경에 대한 디테일들을 실감나게 들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세 가지는 바로 보름 전까지 지내 온 한국과 극명한 대비가 되는 것들이어서 충격이 더 컸다.

아니, 21세기 미국에서, 특히 한인 거주 비율이 미국내에서 가장 높다는 대표 한인타운에서, 일어나는 것 자체가 더 힘들 것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었기에 충격이 더 컸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애들이 수업시간에 서서 수업을 받아요.”

옆에 앉아 있던 11학년 아들을 두었다는 학부모가 입을 열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난 순간 어릴 적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딴짓을 하다가 선생님에게 들키면 벌로 몇 분간 서서 수업 받는 것을 생각했더랬다.

“그게 아니라요, 의자가 없어서, 앉을 자리가 없어서 우리 애들이 서서 수업을 받곤 한다고요.”

사정은 이랬다.

“위장 전입을 해 온 타민족 서류 미비자들의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그 아이들에 대해서 학교와 타운의 교육 당국이 실거주지 확인을 전혀 하질 않아요.”

타운이 커지고 인구가 늘고 있는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닌 모양이다. 팰팍의 경우 민주당 행정부의 교육에 관한 무지와 무관심이 학부형들의 원성의 대상이었다.

“아침 마다 히스패닉들은 봉고차로 아이들을 무더기로 학교로 실어날라요. 팰팍 각급 학교들의 진풍경이죠. 왜 그 확인을 하지 않는지 대체 모르겠어요. 의자와 책상이라도 좀 넉넉히 놓아주던가.”

학부형들의 분개가 십분 이해가 됐다.

“우리는 열심히 세금 내고 있는데 왜 우리 아이들이 앉아서 수업을 못받는거죠? 세금 안 내는 것 같은 히스페닉 애들은 앉는데…”

학부모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난 잠시 멍했다, 설마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50년전 한국으로 간건 아니겠지? 어렸을 적 초등학교 콩나물 교실이 떠올랐다. 그때가 80년대 초반, 한 교실엔 60명 이상 바글바글 했지만 책걸상이 없어서 선 채로 수업에 참여하는 경우는 없었더랬다. 혼날 짓을 해서 수업 중 뒤에 나가 손 들고 서 있긴 했어도 말이다.

그 옆에 11학년 딸을 둔 엄마의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내 머릿속 타임머신은 방향을 잃기 시작했다. 아니, 아이들이 타임슬립을 한 건가.

“학교에서 애들이 화장실 사용을 거의 할 수가 없어요. 토일렛이 5개 있다면 하나만 물이 내려갈까? 나머지는 물이 넘치거나 아예 안내려 가거나 아니면 부서졌거나.”

마침 다니고 있는 펠팍 성당에서 들은 얘기로는 천주교 계통 이곳 초등학교에서는 결코 학부형들의 신분 문제를 따지지 말고 차별하지 말라고 했기에 히스페닉 아이들이 마음 놓고 등교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런 양면성이 있구나 싶었지만 다음 얘기도 충격이었다.

“팬데믹이 절정에 달했을 때 온라인 화상 수업을 했잖아요, 그 때 집에 랩탑이나 데스크 탑 없는 애들에게 아이패드를 학교에서 빌려준다 해서 보니까 세상에, 한 반에 열 몇 명 되는 애들이 아이패드 하나 갖고 서로 자기 차례 오길 기다리며 돌려 쓰는거에요.”

난 지금 분명히 2021년의 미국 동부, 뉴저지의 가장 큰 한인 타운인 팰리세이즈 파크에 앉아 있는데 내 귀가 접수 하고 있는 말의 내용은 아이패드 하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1970년대의 한국 시골 어느 초등학교와 그 교실 풍경이었다.

미국에 오기 전 얼마 전 까지 나는 한국에서 zoom으로 초중등 아이들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팬데믹은 지구 전체의 수업 풍경을 바꾸어 놓아 온라인, 줌을 통하지 않고는 가르치는 일도 배우는 일도 거의 불가능이라 헤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도 IT 취약 계층 아동들이 학업에 뒤처지는 것을 막고자 교육 당국에서 테블릿 피씨를 학교에 배급하여 집에 온라인 수업 가능한 컴퓨터가 없는 아이들에게 1인당 하나씩 대여해 주었다. 대여기간은 아이들이 졸업 할 때까지. 중간에 고장이 나면 새것으로 교환도 가능하다.

엄마의 아이패드를 사용해 내 수업을 ZOOM으로 참가했던 6학년 아이는 나와의 수업 중 음성 지원이 잘 안되기도 하고 화면이 자주 꺼지곤 했는데 어느 날엔가는 새 컴으로 수업 할 수 있게 됐다며 학교에서 받은 갤럭시 탭이라며 매우 뿌듯해했었다.

대체 어디까지가 우리가 그간 알아 온 미국이고 어디가 한국인가.

내가 참여한 후원의 밤이 열린 ‘그 타운’ 한인 타운 팰팍의 교육행정과 환경만은 20세기 중반이요, 탈모가 심각한 흰머리 독수리 였다. 한인 인구가 65프로 이상되어 미주 전체에서도 한인 밀집도가 가장 높은 팰리세이즈 파크가 버겐카운티 77개 학교 중 학업 성취도와 교육환경 순위 골찌를 차지했다는 것에 모욕감을 느껴야 했단다.

“팰팍 교육위원은 7천만 달러 규모의 연간 예산을 다루는 자리입니다. 이 예산만 제대로 쓰여진다면 카운티 꼴찌의 불명예를 탈피 할 수 있습니다. 교육위원에 당선 된다면 내 손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겠습니다.”

타운 교육행정에 구조적 병폐를 개선하고자 환갑이 넘은 나이에 교육 위원에 선거에 나서게 됐다는 청일점 신창균후보의 출마의 변이 충분히 공감됬다.

출마자들과 이날 연회장을 가득 메웠던 참석자들은 펠팍 타운의 민주당 일색인 정치 구조가 교육환경을 열악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라고 꼽고 있었다. 수십년 째 시장, 시의원, 그리고 교육위원 조차 민주당 일색이었단다. 그러다 보니 고인물은 썪는다고 여기저기서 문제가 노출되고 있단다. 지난 5월 주정부 감사실은 펠팍 시정부의 붙박이 같은 백인 행정관과 연관된 수십만 달러 규모의 부정 사건을 적발해 타운이 발칵 뒤집혀져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번에 출마한 한인 3인방은 유난히 독립적 무소속임을 강조 하고 있었다.

난 그곳에서 희망도 보았다. 개선 해야 할 교육 현실의 벽이 워낙 두껍고 단단하지만 시민들이 조직적으로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활기만큼은 지구촌 그 어느 곳 못지 않게 왕성한 타운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내 눈에 보이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이도 하다.

후원의 밤 행사 시작에 나온 미국 국가. 펄럭이는 성조기 앞에 눈을 부라리고 있는 흰머리 수리가 하루 빨리 탈모를 극복하고 힘차게 날아오르기를.

뉴욕 하이유에스코리아 안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