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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화 뉴욕 한인회 수석 부회장 인터뷰 <2>

5선 교육위원으로, 뉴욕 한인회 수석 부회장으로서 한인공동체를 위해 소리 없이 부지런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는 ‘대 뉴욕지구 한인의 어머니’ 김경화 스토리 2편.

교육위원 선거 출마 이전에 그녀가 걸어온 길을 잠시 돌아본다.

그녀는 서울에서 고등학교(혜화여고)를 마치고 1977년 도미, 뉴욕에 정착한 초기 이민 파에 속한다. .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를 미국에 와서 먼저 자리 잡고 있었던 큰언니가 불러준 것이다. 곧바로 뉴욕 시립대학 버룩칼리지에 입학했고 회계학 전공 졸업후 캠퍼스에서 만난 한살 위 김형구씨와 결혼 했다. 제일은행 뉴욕지점에서 7년간 근무하면서 2녀 1남을 낳았다. 자녀의 이름은 민주, 평화 자매와 통일 군.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미국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영어 이름 대신 한국 이름을 고수한다는 것은 요즘 말로 ‘우주적으로 드문 일’이다. 그의 남편과 그가 조국 대한민국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 지, 그리고 조국의 번영과 민족 통일을 바라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신의 한국 이름에 대해 처음에는 의아해 하다가 모국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부모의 깊은 뜻을 알고는 자부심을 갖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니 엄마는 자녀의 거울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자라면서 한번도 “엄마, 나는 왜 미국 이름이 없어요” 하고 물어본 적이 없단다.

원래 그녀의 이름은 하경화. 그러나 미국에 살면서 결혼한 남편 따라 성이 바뀌어 김경화로 불리다 보니 그렇게 굳어졌다. 이제 우리에게는 뉴욕의 어머니로 연결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1998년 교육위원에 당선 되다

시어머니 봉양과 막 비지니스를 시작한 남편에 대한 내조로 분주한 가운데에서도 언급한 대로 아이들 학교의 학부모회 활동을 꾸준히 했다. 그녀는 ‘부모의 참여’를 자녀 양육의 중요한 축으로 설정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교와 한인 학부모들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됐다.

아이들 교육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학부모들을 적극 도와주는 그녀의 모습을 관심있게 지켜본 당시의 놀우드 교육위원회 학군장 닥터 로즈가 그에게 교육위원 출마를 적극 권유해 왔다. 마침 결원이 생겨 치러야 했던 보궐 선거였다.

“처음엔 너무나 당황스러웠죠. ‘내가? 교육위원이라니…?’ 정말이지 교육의원에 관해선 아무것도 몰랐지요 그래서 두렵기도 했고요.”

게다가 그 당시 김 부회장은 시민권 인터뷰를 목전에 두고 있던 터라 유권자 등록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여서 출마제의가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미국은 모든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선 일단 피선거권자, 즉 유권자 등록이 먼저 되어있어야 어떤 선거에든 출마 자격이 주어진다.

“그래서 시민권 인터뷰가 끝나고는 바로 닥터 로즈가 당신이야 말로 타고난 교육위원이라면서 합법적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선 내에서 초고속으로 저의 유권자 등록이 완료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그렇게 우다다다 하는 사이에 98년도 보궐 선거에 출마하게 됐는데 특히 한인 학부모들의 도움이 정말 컸어요.”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그간 김부회장의 도움을 받았던 한인 학부모들이 적극 나섰던 것이다.

당시 놀우드에 등록된 한인 유권자가 80명이 채 되지 않았단다. 열성 한인 학부모 몇몇이 해켄섹에 있는 선관위에 가서 한인 유권자 등록 명부를 얻어와 가가호호 전화를 돌리며 투표장에 나올 것을 독려하며 김경화에 대한 한 표를 부탁하며 자발적인 선거운동을 펼쳤다.

유권자들 중엔 자신의 집 전화 번호를 어떻게 알았냐며 신고를 하겠다고 화를 내는 동포 주민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호의적이었단다. 또한 고 한인 학부모들과 미국 학부모들 사이를 가깝게 만들기 위한 김부회장의 노력을 깊이 이해한 미국인 학부모들도 니서 동네 주민들에게 김경화를 찍어 줄 것을 당부했단다.

그렇게 학군장과 한인 학부모들, 그리고 백인 주민들의 호응으로 놀우드의 한인 여자 교육위원이 탄생했다.

 

“백인 남자 일색의 교육위원 세계에 발을 들여 놓으며 결심했어요. 모든 걸 배우는 자세로 임하자는 것, 그 세계에는 아시안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백인 동네에 한국인 교육위원이라 하면 한인을 위해 더 일을 할 것이라는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 한인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단다. 민족과 인종을 떠나 ‘우리 모든 아이들’을 위해 일했을 때 한인 아이들에게도 균등한 혜택이 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2001년이었어요. 그 당시 학군내 유치원들이 옛날 한국 콩나물 교실 수업 하듯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을 해왔어요. 그 시기가 놀우드에 취학연령 아이들이 많이 유입 되던 시기였고 그러다보니 교실이 부족했어요. 엄마들이 유치원 종일반 수업 건의를 여러 차례했고 마침내 교육위원회 투표에 까지 회부된거에요. 그런데 그때 제가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었어요.”

놀우드의 경우 총 7명의 교육위원이 있었는데 (작은 타운은 5명, 중간규모 타운은 7명, 대규모 타운엔 9명의 교육위원을 뽑는다) 유치원 종일반에 대해 찬성 3, 반대 3이었던 것. 사안의 결정은 김부회장의 표에 달려 있던 것이었다. 생계를 위한 일과 육아의 병행에 따른 부모들의 고충과 교육의 질을 고려했을 때 종일반 수업 찬성에 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의 결정으로 놀우드에 종일반 유치원 수업이 이루어졌고 한인 미국인을 떠나 특히 워킹맘 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게 되었다” 면서 “이 엄마들이 향후 연이은 재선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녀의 참여 교육관은 백인 주민 학부형들의 지속적인 찬사와 호응을 받으면서 그녀는 무려 5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역 교육의 현장에서 일선에서 산 증인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특히 그녀가 교육전문가가 아닌 학부모 출신의 교육위원이라는 점에 주민들과 학부모들은 자랑스러워 했단다.

김경화와 함께 하는 교육- JEWEL

미국의 교육위원을 보면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지역과 학교를 위해 일하겠다는 봉사 정신이 투철한 학부모들이 많다. 무보수로 봉사하는 명예직이기 때문에 또 하나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으로 그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녀는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함께 하는 교육’ 이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 한국과는 판이한 미국 교육에 대해 학 부모들에게 알리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미국교육에 잘 적응 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했다. <함께 하는 교육>의 영어 이름은 ‘JEWEL’ 이다. 그녀가 이러한 단체를 만들어 교육위원으로서의 경험을 통해 얻은 유익한 정보들을 더 많은 부모와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을 때 그녀의 학군장이었던 닥터 로즈가 지어준 이름.
문자 그대로 보면 보석이다. 진짜 속 뜻은 ‘We are Joining East & West as Educational Liaison.”
(동양과 서양이 교육의 다리로 함께 가자.)
뉴욕지역 최초의 여성 교육위원으로 다선이 되면서 한국 교육계와 언론의 관심도 상당히 받아야 했다. 자연 한국 교육계와 연계가 돼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 했는데 그중 해마다 한국 중고등 학교 영어교과의 매스터 티쳐 15명의 연수 프로그램은 큰 성가와 의미를 지니는 프로그램이었다.
매스터 티쳐란 교사 경력 8년 이상이며 600시간 연수를 받은 교사 중 영어구사력, 영어수업 능력평가 등을 통과한 서울시가 선발한 우수 교사들이다.
이들은 언어교육자로서의 언어능력과 문화에 대한 자신감 함양, 동서문화 교환을 위한 토의에 참가하고 해마다 뉴욕에서 열리는 외국인 교사 컨퍼런스에 한국 대표로도 참여하며 뉴욕시 학교를 방문, 한국문화를 주제로한 공개수업을 실시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고.

서울시에서 선정된 마스터 티쳐들과 함께한 김경화 부회장

“기존의 관광 위주의 교사 연수와 달리 차별화를 이룬 프로그램으로 인정 받아 서울시에서 꾸준히 교사연수를 의뢰해 왔었어요. 그러나 코로나19로 현재는 일시 중단 된 상태라 많이 아쉽죠, 빨리 이 상황들이 회복 되어 미국의 교육자들에게도 한류와 더불어 한국의 교육열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교류 사업이 미국의 미국인 교사들은 한국에 보내 연수시키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한국의 교육부가 적극 나서 김 부회장의 역량을 십분 활용하는 사업으로 상당히 호평을 받고 있다.
그녀는 2014년 선거에 출마하지 얺아 그녀의 기록은 5선에 그치게 됐다.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였고 함께하는 교육의 일 특히 한국과의 연계 사업의 규모가 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사이 훌쩍 큰 민주와 평화가 대학을 졸업했다.

그녀는 2005년 클로스터에서 언니가 하던 SAT 학원(PEAK교육센터)을 물려 받아 운영하고 있다.
언니 부부는 한국으로 귀국했고 명문대 출신 조카 폴 리가 유능하게 매우 잘 이끌고 있는데
10년간 광고를 전혀 안했단다. 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교육 위원에 몸담았던 사람이 사교육 학원을 한다는게 썩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하지만 그 시기가 부시 대통령의 no children left behind라는 모토 하에 교육에 획일화의 잣대를 들이대던 시기. 정작 사회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중시하는 직업군이 늘어나는데 학교는 암기, 시험 중심으로 거꾸로 가니 그 갭을 메우는걸 사교육에서 제공 할 수 밖에 없었단다.
공교육이 역행하는 동안 사교육의 통로에서라도 아이들이 그나마 정주행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부모들 교육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마음에 수업료의 문턱도 타 학원들에 비해 낮게 책정하고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방식의 창의력과 논리를 자극 하는 방향의 수업 프로그램으로 예일을 졸업한 폴 선생이 그 역할을 지금까지 충실히 해주고 있다.

미주 한국어재단 활동 한국어 반 개설위원장

그녀는 2010 년 부터 미주한국어 재단에 참여 했다. 한국어 교육의 필요성 한글의 우수함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 하는 그녀다. 그 사이 한류붐이 불었고 재단 일은 바빠졌다. 한국어 자격시험이 보편화 인기화 되었고, 각 학교마다 한국어 교사를 고용하기에 바빠졌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미주 한국어 재단에서 한국어반 개설 위원장으로 활약한 그녀의 공이 이 부분에선 매우 크다. 버겐카운티 최초의 한글 학교인 가나다라 수요 한글 학교를 시작으로 동포 자녀들의 한글 교육에도 앞장서 왔다.

미주한국어재단과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학이 2018년 10월 18일, 스토니브룩 한국학센터(센터장 김홍경)와 한국어 정규교사 양성을 위한 상호 협력 양해각서 체결식을 가졌을 당시 한국어 개설반위원장 김경화와 김영덕 미주한국어재단 이사장(맨앞 왼쪽)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그녀의 자녀들이 많은 동포 자녀들에게 충분한 모범이 될것이라 기자는 확신한다. 특히 큰 딸 민주양의 한국어 구사실력은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재작년 김부회장의 시어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손녀인 민주 양이 앞에 나와 직접 쓴 할머니를 추억하는 글을 낭독했는데 심금을 울리는 어휘의 선택과 문장의 간결함, 정확한 발음에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새롭다. 장례식 이후 조문객들은 서로에게 ‘아니, 저 아이가 정말 미국에서 태어났단 말이야?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해도 아무도 모를거야.’
민주 평화 통일 세 아이들은 한국어 구사라는 유산을 남겨준 부모에게 너무나 고마워 한다고…
예전엔 영어를 잘해야 인생의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고 했는데 눈뜨면 한류인 이젠, 동포 자녀들은 한국어도 잘해야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한국어가 미국 내에서도 세계어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지금, 이 아이들은 얼마나 든든할까 싶다.
자녀의 한국어 교육 부터 수신제가를 실천했으니 김부회장이 받은 국민 포장이 더욱 빛나는 듯 하다.

뉴욕한인회 최초의 여성 수석 부회장이 되다

미주 한국어 재단에서의 이런 그녀의 모습을 유달리 관심 있게 지켜 보던 재단 김영덕 이사장이 2019년 36대 뉴욕한인회 이사장에 위촉 되면서 그녀를 수석부회장으로 적극 추천했다.

단군이래 최대공사 였다는 사우디 주베일 항만공사의 주역으로 널리 알려진 현대맨으로 아메리카 현대법인 사장 출신인 김 이사장은 한인회장이 된 찰스 윤 변호사를 변호사와 고객관계로 오래전부터 잘 알아왔었다.
김이사장은 찰스윤을 차세대 동포 리더로 눈여겨보고 그를 차기 회장으로 강력히 밀면서 1.5세 찰스윤의 문화적 부분의 소통을 카바 하도록 김부회장을 수석부회장으로 추천했던 것이다.
뉴욕 한인회에서 여성이 수석부회장을 맡은 것은 김경화 부회장이 처음이다.

1.5세, 2세를 대거 영입한 뉴욕한인회 제36대 집행부가 완성됐다. 왼쪽부터 에리 김 홍보 부회장, 김경화 교육 부회장, 찰스 윤 뉴욕한인회장, 데이비드 오 사무국장

그녀가 안 살림을 이끌고 있는 36대 대 뉴욕지구 한인회는 미주 한인회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동안 뉴욕의 동포사회는 영어권과 모국어권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2세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고 한인회는 한국을 잊지 못한 이민 1세들만의 공간이다 시피 했다.

그러나 오랜 해외 생활로 이민 2세나 다름없는 명문대 출신의 일류 변호사가 한인회 회장을 맏는 다는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의심반 기대반으로 시작한 찰스윤의 한인회는 김경화라는 살림꾼을 만나 기대 이상의 성과들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뉴욕 퀸즈 사랑나눔 캠페인 행사에서 찰스윤 회장이 식품권을 배부하고 있다.

특히 작년 겨울, 코비드 팬데믹 기간 동안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취약계층들에게 약 1000불가량의 H마트 상품권을 나누어주는 사랑나눔 캠패인을 펼쳐 뉴욕 일원의 동포들에게 호응을 받았었다.
또한 팬데믹 기간동안의 아시안 혐오 범죄로 한-흑간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 두 커뮤니티 사이의 화합과 우정을 다지는 행사에서도 1만불 가량의 초코파이(800박스)와 불고기(500인분)를 뉴욕한인회에서 기부했다. 이 외에도 한인회의 최근 실적들은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으며 무엇 보다도 실제로 ‘일하는 한인회’가 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찰스 윤 뉴욕한인회장이 알리시아 하인드맨 뉴욕주 하원의원 등 6월 16일 식품 나눔 행사 참석자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오른쪽 네 번째부터 뉴욕한인회 김경화 수석부회장, 알리시아 하인드맨 뉴욕주 하원의원, 찰스 윤 뉴욕한인회장.

찰스윤 회장이 펀드레이징을 위해 열심히 밖에서 뛰어다니고 김경화 부회장이 살림과 실무를 담당하면서
그녀의 봉사는 자연스레 37대로 이어지게 된다.

지난 5월 뉴욕 뉴저지 카네티컷 동포들은 압도적인 지지로 찰 스윤 체제의 연임을 통과 시켰고 찰스윤 회장은 이번에도 삼고초려로 김경화를 수석 부회장으로 위촉 했던 것이다.

그녀의 봉사는 언제 까지 이어 질 것인가. 은퇴의 나이로 서서히 접어드는 지금도 “배워서 남주자” 라는 열정이 안에서 조용히 솟아 오름을 느낀단다.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던 날들 동안 열정으로 열매 맺었던 것들을 이젠 그간 쌓인 경륜과 전문성으로 버무려서 필요로 하는 누구에게든 두 팔 벌려 내주고 싶단다.

그녀는 은은하고 오래 가는 보석 ’호박‘. 그런 보석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뉴욕 안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