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한복의 날을 맞아 뉴저지주 한복 행사 성대하게 펼쳐져
미국의 가을 하늘, 특히 기자가 거주하는 뉴저지는 다음날의 하늘이 궁금해질 정도로 그 푸르름과 흰구름의 배치가 매일이 다르다.
봄볕엔 딸을 내보내고 가을 볕엔 며느리를 내보낸다는 속담이 무색 할 정도로 이곳의 가을 햇살은 가슴저리도록 아름답기만 하다.
그런 가을 하늘, 눈부신 햇살 아래 흥겨운 가락과 북소리가 어우러진 가운데 세상 고운 색은 모두 모아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옷을 지어 입은 사람들이 사뿐 사뿐 걸어나와 자태를 뽐낸다.
청사초롱을 든 어린아이들, 과거에 급제하여 복두에 어사화를 꽂은 자제, 홍원삼을 입은 왕비, 화려한 궁중 의상의 비와 빈, 황금색 갑옷의 장군, 양반가 도련님과 아기씨, 사또와 포졸 등 조선시대 사람들이 단체로 21세기로 타임슬립을 했나 할 정도로 사방이 한복 그리고 한복 그리고 한복 이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사람이라고 하기엔 전통의상을 입은 이들의 다수가 키 크고 푸른 눈에 생김이 우리네와는 다른이들. 그래서 더욱 눈부시고 신비하고 아름다웠던 이곳은 뉴저지 테너플라이의 하일러 파크.
해외 지자체 최초, 미국 지자체 최초로 한복의 날 행사가 열린 곳이다.
이곳에 오기전 아침, 한복 차림으로 문화체육 관광부 국정조사장에 등장한 여성 국회의원의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기사인즉, 1996년, 한복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한복의 우수성과 산업적・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제정된 고국의 한복의 날이 매년 10월 21일이지만 국민 2명중 1명은 그런 날이 있는지 조차도 잘 모른다는 조사결과를 한복 차림의 여성 국회의원이 발표하는 내용이었다. 우생순의 주인공 임오경 의원, 역시 아줌마 파워란… 그날을 공휴일로 제정하면 모두가 기억할 것이라는 댓글이 웃프기까지 했다.
그러나 오후에 휴일러 파크를 가득 메운 활짝 핀 한복 꽃들을 보는 순간 한복의 날 관련 고국의 기사들에 씁쓸했던 마음이 위로를 받는 듯 했고 오히려 바다 건너 이곳에서 한복의 미를 비롯한 우리 전통의 것에 대해 희망을 찾은 듯한 기분 마저 들었다.
기자가 그곳에 도착했을 땐 행사가 막 시작되어 테너플라이 시장과 버겐카운티 쉐리프, 주하원 의장 등 지역 정치인들이 여러 종류의 한복 예복을 각각 차려입고 무대 위에서 축사를 하고 있었다.
무대 가까운 귀빈석에서도 이번 11월 선거에 출마하는 당선 유력 후보들과 지역 인사들이 화려한 한복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판소리며 북춤 등 전통 공연과 한복 패션쇼를 위해 다양한 스타일의 한복을 입은 출연자들로 공원 구석 구석은 울긋불긋 활기가 넘쳐 흘렀다.
한복 페스티발을 보러 온 우리 동포들 뿐만 아니라 현지 주민들도 나무 그늘 밑에 피크닉 보따리를 펼쳐 놓고 앉아 핸드폰 카메라에 열심히 담으며 구경하는 모습이 흐뭇기 까지 했다.
이 날 한복의 날 행사엔 필 머피 주지사 대신 그의 와이프 태미 머피가 아름다운 자수가 새겨진 노란 당의( 조선시대 지체높은 가문의 여인들이 주로 궁중에 들어갈 때 입던 소례복)를 입고 무대에 섰는데 “한국 이외 지역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한복의 날 행사가 자랑스럽다”며 “ 한복의 날을 계기로 뉴저지 주민들이 미국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한국 문화와 한복의 아름다움을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 달 선거를 앞둔 필 머피 주지사는 선거 운동 때문에 행사에는 불참했지만, 올해 10월21일을 한복의 날로 지정하는 공식 선포문을 보내 축하했다.
머피 주지사는 선포문에서 “한복은 2천년 이상 한국에서 이어진 전통문화의 일부”라며 “한인 사회의 영향력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감안해 한복의 날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또한 현직 버겐카운티 쉐리프이자 이번 11월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앤소니 큐리튼은 ‘사또’ 옷차림으로 무대에 서서 “보안관인 자신에게 딱 알맞은 옷차림이라며 더욱 안전한 한인 공동체를 만드는데 끊임없이 헌신 할 것”이라며 한표를 호소했다.
오늘 이곳은 민주당 정치인들의 파티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 6월 예비 선거에서 승리, 한인 최초의 뉴저지 주하원 의원 당선 유력자 엘렌 박 (뉴저지 제 37선거구)과 그녀의 러닝메이트 샤마 해이더도 높이 올린 가채에 빈과 중전 예복 차림으로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었다.
한국의 궁중 전통 의상을 입은 각 후보들… 선거를 앞두고 한인 동포들에게 이보다 더 진한 선거운동은 또 없지 싶다.
정치인들의 축사가 끝나 뒤 행사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는 한복 패션쇼.
행사장의 중앙으로 무대를 향해 길게 깔려 있는 붉은 비단 런웨이로 청사초롱을 든 어린아이들의 행렬을 시작으로 약 15분 가량 눈부신 색의 대잔치라 할 만한 조선 시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조선시대 기녀 복장부터 궁중의상, 포졸에 이르기 까지 내가 이역만리에 와서 이런 눈호강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런데 내 눈엔 미국인들이 입은 한복이 우리가 입었을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큰 체격과 큰 이목구비 때문일까. 한복의 화려함이 배가 되는 듯 했다.
특히 왕과 왕비로 런웨이에 선 노란 곤룡포를 입은 존호건 버겐카운티 클락과 주 하원의원에 도전하는 샤마 해이더가 바로 그러했다.
한복의 나래가 펼펴지는 것을 보니 문득 어렸을 때가 떠올랐다.
3년 가량 한복 의상실을 하셨던 엄마 덕에 나는 여느 아이들이 심플하게 한복 치마저고리 한 벌 가지고 있을 때 오늘 런웨이에 올라 온 궁중 의상 대부분 까지를 가지고 있었다.
풍요로우면 소중한 줄 모르던가… 엄마는 샘플 삼아 내 옷을 만들어 주셨고 심지어 학교에 까지 입고 가게 했다. 한번은 엄마가 겨울 한복을 샘플로 만들었다며 아침에 입혀주셨는데 그게 그날의 내 등교 복장이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조끼 격인 털배자까진 그런대로…그러나 귀와 볼을 가리는 볼끼와 머리엔 남바위까지 쓰고 오리털 잠바에 투박한 기차표 부츠를 한복 치마 속에 신고 학교에 가야했던 5학년 겨울방학 직전의 어느 날을 잊을 수 없다.
학교 가는 길에 만난 동네 친구들, 중학교 다니는 오빠 친구들은 설날도 아닌데 어디에 세배 하러 가냐며 웃었고 교실에선 쉬는 시간 마다 아이들은 내게 와서 남바위와 배자를 서로 착용하기도 했다. 하루종일 창피했다.
그런데 며칠 뒤 우리 반 애들 몇몇이 자기들 엄마와 우리 집에 와서 그날 내가 입은 옷을 주문했다.
엄마는 나를 앞세워 영업을 했구나… 그리고 1년 뒤 초등학교 졸업식 때 우등상을 받게 되자 엄마는 며칠동안 늦은 밤 딸을 위해 초록색 당의와 붉은 치마를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입고 단상에 올라갔다.
그땐 창피하지 않았다. 공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 한껏 들었더랬다.
그렇게 나의 한복 추억과 패션쇼는 오버랩 되었고 그러는 동안 진도 북춤으로 한복의 날 축하공연이 시작 되었다. 특히 한국의 무형문화재 최진숙 명창의 판소리 공연은 한복과 어우러진 한국의 소리를 현지인들에게 어필하기 아주 좋았다. 우리 DNA 속에서 살아 숨쉬는 우리가락 우리 춤사위란… 이곳 미국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도 한번 고전무용에 빠지면 학교는 안가도 학원에는 꼭 가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어진 두 번째 하이라이트는 전통혼례식.
이 혼례식의 주인공은 마크 진너 테너플라이 시장 부부로 결혼 25주년을 기념하여 이루어져 더욱 각별한 세레머니였다.
전통혼례로 치른 두 사람의 은혼식이 끝나고 참가자 전원 모두 손에 손 잡고 강강술래를 했다.
테너플라이는 지난 4월 미국 동부를 중심으로 한 청소년 단체 재미차세대협의회(AAYC·대표 브라이언 전)의 청원을 받아들여 매년 10월21일을 한복의 날(Korean Hanbok Day)로 공식 선포했다.
이는 뉴저지 최초이고 미국 지자체 중에서도 최초이다.
중국이 한복 마저도 자기들 것이라는 주장에 미국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 AAYC의 브라이언 전을 중심으로 한복이 우리 것임을 해외에서 공식화한 첫 결실이기에 더욱 의미가 각별하다.
또한 이들의 노력으로 지난 8월 말엔 테너플라이 인근의 클로스터(한인 인구 약 40%) 라는 소도시에서도 뉴저지에서 두 번째로 타운 차원으로 한복의 날을 기념하기로 선포했단다.
우리 전통의 것들이 외부에 의해 왜곡되어 지는 동안 먹고 사는 일이 바쁘거나 떠나온지 오래되어 고국에 대한 무관심으로 그러한 이슈들을 돌아보지 못할 때 미국에서 나고 자란 혹은 어릴 때 이민와서 2세나 다름 없는 청년들이 ‘우리의 것, 전통의 것’을 지키려 팔 겉어 붙이고 나섰다는 것이,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했으며 오늘과 같은 이런 작지만 무게있는 행사를 이들이 치러냈다는 것이 한 없이 대견하고 고맙기만 한건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날 우리 한국의 고유의 옷 한복과 우리 문화 그리고 한류는 가을 하늘 만큼 높아졌다.
어린 시절, 남바위에 겨울 한복 차림으로 학교에 가야했던 소녀는 중년 아줌마가 되어 한 살 더 먹은 내년 한복의 날엔 초록 당의에 빨간 치마로 이국 땅에서 한복 런웨이에 서보는 것을 상상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뉴욕 안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