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기시다 취임 뒤에도 ‘한국 무시’ 계속… 美 주도 ‘안보협력’만 정부도 “외교로 풀자” 외엔 해법 無… 당분간 현상 유지 가능성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에도 한일관계는 여전히 ‘안갯속’ 국면을 이어갈 전망이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및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 한일 간 과거사를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 이미 ‘상수’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 오염수 해양방류 추진, 일본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시도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사안들이 양국관계의 앞날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내각 출범 이후 한때 외교가에선 2017년 이후 악화일로만 걸어온 한일관계에 훈풍이 불어오길 기대하는 시각이 있었다. 기시다 총리의 경우 일본 집권 자민당(자유민주당)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온건파’로 분류되는 인사인 데다 과거 외무상으로 재임한 경험도 있어 ‘외교 문외한’으로 꼽혔던 전임자 스가 요시히데와는 ‘다를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 취임 이후 지난 2개월여 간의 한일관계 흐름을 살펴보면 스가 전 총리나 그 전임자 아베 신조 전 총리 재임 때부터 지속돼온 일본 정부의 ‘한국 무시’ 전략엔 별다른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자국 전범기업들에 대한 우리 법원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자’는 우리 정부 제안을 사실상 거부해왔다.
일본 정부는 특히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선 우리 측이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확인”한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면서 양국관계 악화의 책임을 모두 우리 정부에 돌리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28일 보도된 일본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국가 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논의를 해도 무의미하다”며 우리 정부를 직접 겨냥했다. 기시다 총리는 한일위안부합의 때 아베 당시 총리를 대신해 협상에 임했던 당사자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위안부 합의과정에 피해자들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양국 간 합의사항에 따라 일본 정부 출연금 10억엔(약 100억원)으로 설립했던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화해·치유재단)을 해산, 일본 측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은 작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위안부합의가 한일 양국 정부 간 공식적 합의였단 사실을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지만, 위안부합의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상황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우리 외교부의 정의용 장관은 지난달 29일 내신 기자회견에서 “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이지 돈이 아니다” “(한일 간) 과거사 문제는 피해자 중심 원칙에 따라 현실적 해결방안을 꾸준히 모색해가자는 게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일본 측의 “전향적·합리적 대응”을 주문했지만, 이 같은 논리로는 ‘일본은 이미 합의를 이행했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일본 정부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많다.
게다가 지난달 30일엔 우리 법원으로부터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을 위해 일본 전범기업(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을 매각토록 하는 명령이 또 나와 양국 간 과거사 갈등을 한층 더 심화시켰다. 일본 정부는 해당 명령과 관련해 외교경로를 통해 우리 정부에 즉각 항의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 내 강제동원 피해자 등에 대한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계기로 한국 측에 제공된 총 5억달러 상당의 유무상 경제협력을 통해 ‘이미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 일본 정부는 2019년엔 우리 법원의 관련 판결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수출규제 강화조치를 발동, 현재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배상 판결과 관련해서도 “한일 간 협의로 해법 마련을 모색하고자 한다”는 이상의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그동안 ‘물밑’에서 양국 기업 등 민간이 피해자 지원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 등 여러 해법을 제시했지만 일본 측에서 응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르면 내년부터 바다에 방류될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내 오염수 문제도 한일 양국 정부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사안이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 측은 우리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는 걸 ‘국내 정치용’으로 보고 있다”며 “현재로선 우리 정부가 제안한 양국 간 협의체 구성 등에 응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부지 내 물탱크에 보관 중인 오염수의 방사성 물질 농도를 세계보건기구(WHO)의 음용수 기준치 이하로 충분히 희석해 방류하면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더해 최근 국내에선 일본 정부가 과거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이었던 니가타현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나가사키현 하시마, 일명 ‘군함도’와 마찬가지로 사도 광산과 관련해서도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의도적으로 은폐·축소하는 등의 역사 왜곡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우리 정부는 이미 일본 측에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철회를 공식 요구한 상황. 그러나 일본 측이 이 같은 우리 정부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 장관은 앞서 기자회견에서 “일본과의 관계에선 올바른 역사 인식이 건설적·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 발전의 기초가 됨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며 “또 가치를 공유하는 가까운 이웃으로서 여러 분야에서 협력 확대를 위한 외교 당국 간 협의를 계속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일관계 소식통은 “현재 한일 간엔 미국 주도의 한미일 안보협력 외엔 사실상 접점이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다. 일본의 ‘미국 중시 외교’ 때문에 한미일 안보협력엔 그나마 응하고 있다”며 “당분간 한일관계도 크게 달라질 일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에선 오는 3월에 대통령선거가, 그리고 일본에선 7월에 참의원선거가 치러진다.
장용석 기자 ys4174@news1.kr (기사제공 = 하이유에스코리아 제휴사,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