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19 평양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2018.9.19/뉴스1 © News1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 대통령, ‘피스메이커’ 업적 닦으려 필사적…도덕적 당위 차원도”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과 북한, 중국 등 한국전쟁 당사국의 호응이 없는데도 종전선언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5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수개월간 외교적 노력에도 한·미간 이견 속 성과를 얻지 못했고, 북한 역시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징후가 보이지 않으며, 중국 역시 북미 화해 기조를 원치 않는다는 점을 들어 종전선언을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를 설명했다.
다만, 종전선언을 제안한 이들에게 있어 종전선언은 외교 전략을 넘어 도덕적 당위이기도 하다고 부연했다.
FT는 이날 ‘미국의 의구심에도 한국이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했지만, 미국과 중국, 북한의 의구심으로 오랜 기간 추구해온 ‘피스메이커’로서의 정치적 업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는 4자 당사국 간 충돌하는 이해관계 조정의 복잡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우선 문 대통령에게 있어 종전선언은 “법적 구속력있는 평화 협정이라기보다는, 상징적 선언”이라고 설명하고, 관련 전문가들의 설명을 인용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FT에 “문 대통령에게 있어 종전선언은 단순히 외교 전략을 넘어, 국가 정체성의 문제”라며 “문 대통령은 한국이 더 이상 전쟁 상태에 있지 않으며, 통일이 곧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종전선언은 교착상태를 끝내고, 양자 신뢰를 증진하며, 한반도 비핵화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한 점도 소개했다.
FT는 “그러나 미 정계에선 이 같은 선언이 수십년간 한반도에 주둔해온 주한미군 2만8500 병력의 정통성을 약화시킨다는 데 대한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인 수 김(Soo Kim) 싱크탱크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 연구원은 FT에 “미국에선 종전선언이, 북·중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더 광범위한 지역(동북아, 특히 일본) 내 미군 주둔에 문제를 제기할 구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간 이견과 관련해선,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정확한 순서나 타이밍, 각 단계별 조치가 취해질 조건 등 관련 한미간 다소 이견이 있다”고 말한 점을 짚었다.
또 “한·미간 종전선언 문안이 사실상 합의된 상태”라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발언과 “종전선언이 큰 틀에서 합의됐다”는 문 대통령의 지난달 호주 방문 당시 언급이 있었던 점을 소개한 뒤, “한국의 고위 당국자들이 내놓은 긍정적 언급에 대해 ‘한국 정부가 고전 중인데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는 회의론도 제기된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수 김 연구원은 “한국은 종전선언을 통해 북한이 북핵 위협을 줄일 구체적 조치를 취할 프로세스를 시작하길 바라는 반면, 미국은 먼저 그 조치가 취해지는 걸 보고 싶어 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한국인은 타이밍과 순서 관련 문제를 사소한 차이로 보려 하지만, 이는 근본적 문제이며, 이런 문제들이 함께 다뤄지고 있다는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북한과 중국이 소극적인 점도 짚었다. FT는 “전문가들은 한미간 이견이 해소된다 하더라도, 북한이 대화 준비가 됐다는 징후도 없다고 지적한다”면서, 북한이 ‘미국이 먼저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을 예로 들었다. 고명현 연구위원의 발언도 소개했는데, 그는 FT에 문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점을 들어 “북한 입장에선 대선 이후 새 대통령이 반대 입장이라면 종전선언 서명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FT는 “또한 문 대통령의 계획은 미중 관계 악화로 인해서도 방해받고 있다”면서 “한국은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기회로 여겼는데,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으로 무산됐다”고 했다. 이어 “중국은 미국이 종전선언을 반대하는 이유(주한미군·주일미군 철수 명분)와 같은 이유로 종전선언을 환영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면서도, “중국은 북미간 화해를 견인할 프로세스는 어떤 것이든 경계한다”고 일축한 스웨덴 싱크탱크 안보개발정책연구소(ISDP)의 이상수 스톡홀름 코리아센터장의 발언도 소개했다.
아울러 FT는 “일본은 한국전쟁 당사국이 아니지만 김정은 체제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어 종전선언을 반대한다”고 한 이 센터장의 설명도 덧붙였다.
다만 FT는 “종전선언 제안자들에게 있어 종전선언은 외교 전략을 넘어 도덕적 당위”라고 부연했다. 이와 관련, 제시카 리 퀸시연구소 동아시아선임연구원은 “한국전쟁의 미결 상태는 비정상이자, 참전한 이들에게 상흔으로 남아있다”고 했고, 문정인 이사장은 “이미 수십 년이나 끌어온 일”이라며 “미국이나 한국이나 ‘영원한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고 FT는 전했다.
최서윤 기자 sabi@news1.kr (기사제공 = 하이유에스코리아 제휴사,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