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신나는 비트에 한·슬픔 품은 가사 70년대 전성기 이후 쇠락…재부흥기 맞아
“트로트는 산소 같아요. 어디에나 있죠”
‘할머니들의 음악’으로 불리며 케이팝 팬들에게 외면받던 트로트가 ‘힙’한 컴백에 성공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8일 이 같은 트로트의 인기 요인을 분석하는 한편 트로트가 세계화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세계적으로 대중화될지는 미지수라는 평을 내놨다.
2022년 서울 도심을 메우는 건 케이팝과 팝뿐만이 아니다. 청과물시장 상인들의 휴대형 스테레오. 낙원동 상가의 한 노래방, 을지로의 중고 음반 가게.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들려오는 음악. 바로 트로트다.
◇춤추고 노래하기 쉬운 박자에 ‘한(恨)’ 품은 가사…70년대 전성기
‘뽕짝’이라는 트로트의 별명은 음악을 뒷받침하는 리듬에서 유래된 것이다. 트로트는 보통 반복적인 원투 박자로 이뤄져 있는데, ‘뽕짝’의 ‘뽕’은 베이시한 쿵쿵거림, ‘짝’은 드럼의 스네어처럼 ‘착’ 소리를 뜻한다.
단순한 리듬에 노래하고 춤추기 쉽게 직선적인 멜로디와 ‘꺾기(목소리를 구부리거나 끊는 것)’가 더해진다. 또 감성적인 가사와 행복하면서도 슬픈 멜로디는 ‘한(恨)’의 정서를 담고 있다. 스파이어 프로덕션의 김규서 PD는 “트로트는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희극'”이라며 “그들은 고통을 없애기 위해 트로트에 맞춰 춤을 춘다”고 강조했다.
트로트가 폭스트롯(1910년대 초기에 미국에서 시작한 사교 춤곡. 2분의 2 박자 또는 4분의 4 박자의 비교적 빠른 템포의 곡)에서 유래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2박자의 댄스 스타일은 1920년대 미국 재즈시대의 영향을 받은 문화현상”이라며 “일본 식민지 시절 지배계급이 대규모 댄스홀을 열자 한국인들은 그것을 노동자들의 전통 음악과 결합했고, 트로트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1970년대 트로트가 전성기이던 시절 남진과 나훈아 등이 한국 최초의 ‘팝 아이돌’ 역할을 했고, 이후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 이해연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이 줄줄이 히트했다.
◇’미스트롯’으로 부활…단순 ‘뉴트로’ 아닌 아티스트에게도 ‘매력적’ 선택지
1990년대 초반부터는 경제 발전과 더불어 댄스, R&B, 힙합 장르가 유행하자 한과 슬픔을 담은 트로트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트로트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2010년 후반 TV조선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미스트롯 1’이 대흥행을 거두며 다시 부흥기를 맞았다.
이듬해 ‘미스터트롯’ 역시 큰 성공을 거두며 우승자인 임영웅은 아이돌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었다. 그의 유튜브 채널은 130만 명이 넘게 구독하고 있고, 인사동 같은 관광지의 기념품 가판대에는 방탄소년단(BTS)만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트로트의 부활을 단순히 ‘뉴트로(New+Retro)’ 트렌드의 일부로 보고 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트로트 자체가 가수와 뮤지션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라고 입을 모았다.
이택광 교수는 “케이팝의 주류인 아이돌 산업은 매우 제한적이고, 외모와 춤, 마케팅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며 “반면 트로트 시장은 좋은 가수나 음악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예술성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쉬운 여자 아니에요’라는 트로트 솔로곡을 발표한 걸그룹 애프터스쿨 출신 리지도 이 교수의 설명에 공감했다. 그는 “아이돌 음악은 수명이 짧다”며 “트로트가 음악 시장에서 더 오래 가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 넘어 세계화 움직임…英 음악 잡지 DJ 250에 주목
트로트는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을까. 세계는 이미 한국의 ‘뽕짝’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영국의 유명 음악 잡지 ‘와이어’와 ‘디제이(DJ) 맥’은 한 프로듀서에 대한 극찬을 실었다.
DJ 겸 프로듀서 250(본명 이호형·40)이다. 와이어지는 “장르뿐 아니라 문화적 감정에 대한 그의 탐색은 한국과 아시아 전역에 반향이 있을 것”이라고 평했고, DJ 맥 역시 3월호 지면에서 ‘어이없는 유쾌함(Delightfully absurd)’이라는 소제목으로 그의 앨범을 자세하게 리뷰했다.
250은 오랜 시간 서울 클럽에서 DJ로 활약하다가 래퍼 이센스와 보아, 엔시티(NCT) 127, 있지(ITZY) 등 케이팝 음악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등 ‘트렌디’한 행보를 이어왔다. 그런 그가 지난 3월 ‘뽕(PPONG)’이라는 이름의 첫 정규 앨범을 냈다. 트로트 장르의 고유한 슬픔을 구현하면서도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이브리드 뽕짝’을 만들어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춤추기 좋은 음악은 슬픈 음악”이라며 트로트를 택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또 2020년 한국관광공사가 공개한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는 유튜브 조회수 6억을 돌파한 지 오래다. 이 영상에는 퓨전국악 밴드 이날치의 ‘수궁가’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이 노래는 얼터너티브 록과 한국의 판소리, 그리고 ‘뽕짝’ 비트가 적절히 조화됐다는 평을 받는다.
다만 가디언은 250 같은 아티스트가 주목을 받는 상황이더라도, 트로트가 국제적으로 대중적인 장르로 받아들여지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점을 암시했다.
250의 ‘뽕’은 어떤 언어의 트로트 가수든 공연할 수 있게끔 작곡됐지만, 영국과 일본 일렉트로닉 밴드의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만큼 한국의 전통적인 트로트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가디언은 평가했다.
김예슬 기자 yeseul@news1.kr (기사제공 = 하이유에스코리아 제휴사,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