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주일에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칼럼을 썼을 때 다음 기회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하여 따로 칼럼을 쓰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삼위일체교리에서 삼위(三位) 하나님의 사역의 관계성을 잘 설명해주는 핵심 용어가 페리코레시스(헬라어:περιχορησις, 영어: Perichoresis)입니다. 성부 하나님 안에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이 인격체로서 내주해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 용어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는 구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다”는 신학적 명제를 근거로 생겨난 용어입니다. 그런 만큼 삼위일체 하나님이 구원 사역에 있어서도 서로 공조하시고 동역하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행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절대주권사상(Sovereignty of God)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소유자이시며 통치자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 누구의 의지에도 예속되시지 않고 자신의 무궁한 지혜와 사랑과 선하심으로 자유롭게 역사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사상은 예정론(선택교리)의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구원하시기로 선택한 자들을 미리 정하셨는데, 이것은 인간의 의지나 공로와는 전혀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주권적인 뜻에 따라 작정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1:4, 5, 9, 11)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 성경 구절에 명명백백하게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시고 선택’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지만 성경 말씀이니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성경의 진리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고 못 믿겠다고 한다거나 또는 성경의 내용 중 이해가 되는 내용만 믿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마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고토(甘呑苦吐)의 행태와 다름없으며, 이렇게 성경을 자기 입맛에 맞춰 편식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그때그때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요동칠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성경은 기독교 신앙과는 무관한 책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말씀에 의하면,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한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배척합니다. 그들은 심지어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격하시키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야)로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도 기독교 선교사들이 파송돼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은 인간의 성정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이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이나 판단으로는 불가능하며,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실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감동감화를 힘입어 우리와 동일하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인간의 구원을 위해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공조를 이루며 동역하신다는 것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마태복음 3:16-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후일 세례 요한은 이 장면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2-34) “(세례)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성령님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도록 역사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원과 천국에서의 기업을 확실하게 보증해주시는 상징으로 인(印)치심(sealing, 도장을 찍음)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하시며,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시종일관 성화의 삶에로 이끌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던져야 할 두 가지 질문은 “당신은 성령으로 거듭났습니까?”라는 질문과 “당신은 성령충만한 자입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창세 전에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신 성부 하나님, 십자가를 통해 그 계획을 성취하신 성자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도록 감동감화하시고 인치심을 통해 우리의 구원과 기업을 보증해주시는 성령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에 더욱 정진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김재동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