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세계에서 사회주의권 지도자 중 가장 인기 있는 지도자가 구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중국의 덩샤오핑일 것이다.
특히 고르바초프는 서방 언론이 그를 ‘고르비’라는 애칭으로 부를 정도로 사랑받았었다. 미소 냉전을 종식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정적 차이가 있다. 고르비는 소련을 망하게 했지만 덩은 중국을 부흥케 했다.
덩은 중국이 경제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외교적 분쟁에 휘말리면 안된다고 보고 일단 미국과 국교부터 수립했다. 미국의 패권을 인정한 것이다. 그는 78년 집권하자마자 79년 미국으로 날아가 미중 국교를 정상화했다.
고르비는 중국의 모델을 그대로 흉내 냈다. 그는 85년 집권과 함께 페레스트로이카(개혁)·글라스노스트(개방)의 기치를 내걸었다. 표어도 중국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도 덩샤오핑처럼 소련이 효과적으로 경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냉전관계를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냉전으로 인한 군비를 경제개발에 돌리면 소련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을 터이다.
이에 따라 그는 1989년 미국과 냉전 종식을 선언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는 실패했다.
중국은 성공했는데, 왜 소련은 실패했을까? 중국은 예부터 과거제도를 실시하는 등 효과적 관료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공산당은 일사불란한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다. 또 당시만 해도 공산당 간부들은 비교적 청렴했다.
그러나 소련은 효과적 관료체제가 미비했고, 무엇보다 관료들이 부패했다.
또 중국이 정치적 자유는 금지한 채 경제만 개발한데 비해 소련은 경제 개혁과 정치 개방을 동시에 추구했다. 자유주의적 정치 개방을 추구한 결과, 사회 혼란만 가중됐고, 경제개발도 되지 않았다. 결국 개혁은 실패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연방은 해체됐다.
고르비는 국제적으로 냉전을 종식시킨 성과를 거두었지만 국내적으로 구소련을 붕괴하게 했다.
서방에서는 냉전을 종식시킨 그를 높이 평가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초강대국 소련을 멸망시킨 매국노’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서방이 사랑하는 ‘연인’이었지만 국내에서는 ‘역적’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이에 비해 덩샤오핑은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덩샤오핑은 78년 집권 직후 가난이 사회주의는 아니라며 개혁개방에 시동을 걸었다. 이후 40여년.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등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그는 체제가 문제가 아니라 인민이 먹고사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먼저 잘살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모든 인류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 논리다. 이에 따라 소련 등 전 사회주의권이 중국을 따라 했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북한마저 중국의 개혁개방을 흉내 낼 정도다.
이는 현 중국 지도부와 뚜렷하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현 중국 지도부는 세계에 어떠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황화론’(황색인종이 유럽문명에 위협이 된다는 이론)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화민족의 부흥을 외치며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있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세계의 보편적 가치에 전혀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공포의 대상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갈수록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다. 세계적 여론조사 업체인 퓨리서치의 조사 결과, 중국에 대한 선호도는 역사상 최악이다. 중국이 경제 규모에서 미국을 추월한다 해도 이 같은 상황에서 세계의 패권을 쥘 수 있을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객, 고르바초프 사망 소식이 전해진 아침. 새삼 덩샤오핑의 리더십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