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가는 집 길가 앞을 거위 떼가 진을 치고 서있었습니다.
주행하던 모든 차들이 거위 떼로 인해 멈추고 기다렸습니다.
아무도 거위 떼를 쫒거나 위협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자연스레 떠날 때까지 기다려주었습니다.
맨 앞에 내 차가 정차했기 때문에 처음엔 경적을 누를까 하이라이트 불빛으로 영향을 줘볼까 아님 앞으로 더 다가가서 위협을 해볼까 하는 모국에서 했던 운전습관이 나도 모르게 잠깐 스쳤습니다.
그런데 반대쪽에서 오던 차는 조용히 마냥 기다려주고 있었고 뒤차들도 단 한번도 나에게 빨리 가라는 표시를 하지 않고 기다려주었습니다.
전체적인 상황이 기다려주는 거여서 어떻게 되나보자하며 거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거위들은 너무나도 천진난만하게 자신들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움직이며 동선을 교체하고 뒤뚱거리며 떠났습니다. 그 뒤 모든 차들이 서행하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1분도 안 되는 집 코앞에서 거위들의 자유시간으로 인해 5분정도를 지체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기분이 참으로 묘했습니다.
차안에서 기다리는 동안 거위들을 바라보며 그 광경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찍은 사진을 내내 바라보면서 한참을 골몰했습니다.
‘만약 여기가 한국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거위 떼의 처참한 떼죽음을 보았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거위떼 주변의 차들은 시끄러운 경적을 수없이 울리고 위협적인 하이라이트에다가 차로 다가가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맨 앞에 서있는 차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겠지요.
한국에서 운전할 때 간혹 경험하는 것 중 하나가 주변의 차들이 매우 성급하게 운전하고 난폭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웬만하면 맨 오른쪽 차선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맨 오른쪽 차선은 코너 우회전과 직진 두 주행차선이어서 우회전 차들이 뒤에 있으면 빨리 가라고 난리를 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운전할 때 교통질서를 잘 지키기 보다는 방어운전을 훨씬 신경 쓰고 잘해야 합니다. 갑자기 어느 방향에서 차가 불쑥 튀어나오거나 끼어들지 모르니 말입니다.
씁쓸한 기억들이 있습니다. 직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른쪽에 있던 차가 앞으로 달리며 불쑥 끼어들어 사고 날 지경이었는데도 얼토당토하게 자신이 놀랐다며 나에게 차를 세우고 다가와 욕설을 퍼부으며 차를 마구 걷어차던 아주머니가 있었고 갑자기 껴든 차에게 주의하라고 경적을 한번 울렸더니 질주하여 내 차를 세우고 차에 침을 뱉고 욕하던 젊은 남자도 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밖에 여러 당황스런 경우의 수들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런 상황을 접하면 나도 모르게 분노와 화가 치밀어 나도 같이 싸우고 싶은 충동이 확 올라옵니다. 특히, 적반하장의 경우일 때는 말입니다.
점점 난폭해지고 살인이 난무하는 차도의 세상이 되어집니다.
어찌보면 차도의 세상은 우리들 내면의 겉모습입니다.
그걸 사회심리학에서는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방어하는 카 커뮤니케이션(Car Communication)이라고 합니다.
특히, 수동적 공격성향을 강하게 지닌 한국인들의 경우 더욱 두드러집니다.
수동적 공격성향이란 불만이나 부정적 태도를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우회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안전한 방법으로 상대에게 공격적 보복행위를 하거나 대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직장이나 학교 같은 집단사회 속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직접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윗사람에게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호명하는데 못 들은 척한다거나 칭찬듣기보다는 상대에게 화를 불러일으키는 언행을 시도하는 것 등이 예입니다. 여기서 다시 카 커뮤니케이션을 이야기하자면, 차는 일단 상대를 직접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자신의 보호물입니다.
차 실내에 들어가서 신체 대신 차도를 움직이지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차를 대신해서 상대에게 위협을 합니다.
경적을 울리거나 하이빔을 켜거나 질주를 해서 위협하는 등의 표현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집니다.
만약 직접적인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서 손가락질을 하거나 상대의 몸을 가격하거나 욕을 한다면 일이 크게 벌어지고 법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지겠지요.
하지만 차로 대신 이용하는 건 심리적으로나 법적으로도 직접적인 다툼보다 훨씬 적은 대가를 치루게 됩니다. 게다가 자동차 보험이란 또 다른 방어책이 있어 더욱 심리적으로 안심을 하며 나쁜 생각과 행동을 저지르게 됩니다.
미국에 와서 많은 분들이 과거 미국의 운전생활과 지금은 사뭇 큰 차이를 가진다고 말하며 그래서 근래들어 교통사고가 급증했다고 들었습니다.
큰 원인이 급한 운전습관과 내면의 쌓인 분노 그리고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산만함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점점 다문화국으로 확대되어져 성격 급한 문화의 사람들이 들어와 교통법규를 잘 안지키거나 자신의 나라에서 했던 운전습관으로 운전하다가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각국에서 복잡하고 빨라지는 생활환경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이 점차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면서 각박하고 위험한 삶을 살아가고 있어 몸과 마음이 피폐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거위 떼의 시간을 할애해주며 기다려주는 이들이 있다는 건 그래도 희망이 있음을 느낍니다.
그 시간을 차안에서 조급하게 화를 내며 답답해하는 건 참으로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이지 싶습니다.
여유 있게 뒤뚱거리며 걷는 거위들처럼
나도 거위 떼가 준 여유의 시간을 차안에서 즐겨보았습니다.
잠잠히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still, know that I am God.”
라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종종 이 성경 구절을 떠올리며 잠잠히 인내를 갖고 기다리자는 생각을 많이 해왔습니다.
늘 시간에 쫒기고 일에 몰두하고 완벽을 추구했던 나에게 잠잠히 기다리고 가만히 있는다는 건 최악의 형벌과도 같았습니다. 너무 힘든 과제입니다. 지금도 아직 그리 익숙하진 않지만 이전보다는 꽤 나아진 듯합니다.
조용히 멈춰진 시간은 나에게 에너지를 불러일으켜줌을 언제인가부터 느꼈습니다.
도로에 꽉 막힌 상황에서도
일이 꼬여버린 상황이더라도
생각이 나지 않아 답답하더라도
그 때
한번 잠잠히 멈춰서 자신을 느껴보는 에너지 충전시간을 가져보셔요.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을 걸어보셔요.
괜찮다.
이것도 좋다.
이런 들 어떠하리 저런 들 어떠하리.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말입니다.
-마음 디자이너 은 윤선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