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에 의하면 남을 돕는 활동을 하거나 보기만 하여도 신체의 면역력이 증가되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칠순이 된 오늘날까지 건강한 몸으로 동포사회를 위해 봉사를 하고 있는 송재성 재미한국학교 워싱턴지역협의회 이사장 (재미장애인체육회 수석부회장)을 만났다.
먼저 한국학교 이사장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는 “이제 한글도 세계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고 단언하면서 “세계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이곳 워싱턴에서 한국학교협의회가 막중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고,이사회는 뒤에서 후원하고 협조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이사장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현재 한국학교 이사회는 3년 임기의 이사 31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년 이사회비 200달러로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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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교는 아이들이 우리 말과 글을 접하면서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 정체성도 회복하고 부모 세대들을 이해하는 민족교육이다”고 설명 하면서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한국학교 임원들은 도덕성과 이타성[利他性]을 가지고 봉사해주시기 바란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고려대 출신으로 워싱턴고려대호골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그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잠시 시골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체신부 공무원으로 봉직하다가 외삼촌 (작고하신 태권도 대부 준 리 씨)의 권유로 이곳으로 이민오게 되었다. 모든 이민자의 삶이 그렇듯 송 회장또한 공무원 생활과는 전혀 상관없는 식당업(Café)에 수십 년째 종사해오고 있다. 비지니스를 일구면서 숱한 고난과 우여곡절 속에서도 부인 송송자 씨와 함께 두 딸을 훌륭하게 키웠다.둘다 출가하여 현재 손자,손녀가 5명이나 있다고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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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부(富)는 축적하지 못했지만 두 딸들이 잘 자라 미국사회 구성원으로써 큰 역할을 하고 있고,또 손자,손녀들을 잘 키워주고 있는 그것이 나의 성공한 아메리칸 드림입니다”고 소박하게 말하는 송 회장은 부모님 살아 생전에는 부부가 효자,효부로 소문이 자자했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현재 그가 수석부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재미대한장애인체육회’의 활동에 대해서도 물어 봤다.
“집안 여동생이 약간의 신체적 장애가 있어 오빠로서 늘 가슴 한 편에 한이 서려 있어서, 때가되면 장애우 봉사를 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장애인 체육회가 조직되어 막중한 일을 맡게 되었다”면서 “장애인체육회는 기존 체육회의 새로운 영역으로써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들을 위해,그들의 수준에 맞추면서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위한 도움을 주는 조직이다”고 설명했다.
작년 9월,워싱턴에서 처음으로 해외지부를 창립 하자마자 10월 전주에서 개최된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수영선수 4명을 포함한 임원,선수 25명과 함께 참가하고 돌아 온 송 회장은 “장애우와 그 가족들이 안으로 감추지 않고, 밖으로 끼와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스스로 장애우에 대한 편견을 깨트리는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소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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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인간과 사회를 변화 시키고 봉사자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가 이민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봉사한 단체만 하더라도 워싱턴 사격협회 회장,워싱턴 대한체육회장,재미대한체육회 부회장,재미사격연맹회장 등의 체육계뿐 아니라 워싱턴한인 JC 회장,워싱턴민주평통 부회장,이순신 미주교육본부 이사 등 수 없이 많다. 현재 맡고 있는 한국학교 이사장,재미장애인협회 부회장 까지 합친다면 그가 평생 워싱턴 동포사회를 위해 투자한 시간과 봉사한 돈은 계산 할 방법이 없을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언제 은퇴 할 것인지?” 에 대한 질문에는 “66세이던 해에 은퇴를 해봤지만 그런 삶은 내가 좋아하는 삶이 아니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가게에 출근하는 규칙적인 이 삶이 너무 좋아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고 싶다.”고 대답하면서, “가게 주인이자 바리스타로서 커피를 종류 별로 준비하고 종업원들이 다 출근하는 오전 10시면 퇴근하여 사회 봉사하는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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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리라 -서산대사의 한시이자 백범 김구 선생의 좌우명이다.
우리 주위엔 나이가 들수록 이웃보다 자신과 가족들 안위만 먼저 생각하고 지역사회 기여에는 관심밖인 사람들이 많은데,늘 소속된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후세를 위해 봉사하는 송재성 씨의 아름다운 행보에 찬사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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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코리안뉴스 강남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