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교수 초청 평화통일 공감포럼이 9월29일 오후6시부터 비엔나 소재 한미과학재단 3층에서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부제 ‘촛불혁명, 요동치는 한반도 정세와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열린 강연회는 진지함 속에서 진행되었다.
김은혜 평통 서기의 사회로 윤흥노 회장의 인사말, 김동기 총영사의 축하의 말, 류은헌 교육분과 위원장의 강사 소개로 진행되었고 이어 강연에 나선 백낙청교수는 “촛불혁명이 왜 혁명인지 그리고 대한민국은 앞으로 안전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한편 이번 북한 방문 기간 동안의 내용도 전하였고 비핵화와 남북 관계는 원론적으로 같이가애 한다 남북관계 개선이 배핵화의 동력원이다. 싱가폴 회담에서 구체적인 방안은 나왔다.
하지만 신뢰구축이 안되어서 진행이 안되었다. 현재 남북관계의 문제는 북의 핵시설과 핵무기폐기. 북의 체제 보장에 대한 불안 이라고 하였다. 또한 “앞으로 험난한 길이 있지만 국내, 국제 관계에서 잘 해나가야 한다”며 강연을 마치고 질문의 시간을 가졌다. 이어진 질문시간에서는 우태창 버지니아 연합회 회장이 통일과 평화는 정부 혼자 하는 것이 아닌데 재외동포들과 함께 해야한다. 이것에 대한 답을 달라고 질문하였고 백교수는 합의가 안되는 부분은 드러나야 답을 할 수가 있다며 통일과 평화는 같이 가야 한다고 하였다.
남태현 교수는 질문에서 남북이 불편해 하는 것 들에 대해 통일이 되면 다 해결이되는가 라고 질문하였고 백교수는 전쟁이후 분단이 고착과 되었고 한반도 특유의 분단 상황이 되어 영구적 분단으로 위협 문제가 해소된다는 것은 그냥 탁상 공론이며 현실적 문제 빼고 그냥 해보는 말일뿐이다. 남북이 동시에 UN에 가입하면서 1991년에영토조항은 무력화 되었다. 남과 북의 관계는 평화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특수한 관계이다.
안성준 씨는 질문에서 새로운 국가의 형태는 무었인가?
백교수는 답에서 분단 이후 생각한 형태의 통일 국가의 형태는 현재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이루어 지는 국가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답하였다.
백낙청 교수는 1955년 경기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미국 유학을 떠나, 브라운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시 귀국하여 군복무를 마친 후, 다시 유학을 떠나 1972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부터 서울대학교 영문과에 부임하였고, 1966년부터 계간지 《창작과비평》의 편집인을 맡아 진보적 평론활동으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74년 유신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해직되었으나, 1980년 복직되었고, 2003년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이후에도 통일운동의 일선에서 일하며 2005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2007년 대통령 선거에는 범여권후보 단일화운동에 나서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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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코리안뉴스 존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