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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원로목사의 신앙칼럼] 가족의 두 얼굴

저는 최근에 상담학 교수이자 트라우마 가족치료연구소장이기도 한 최광현 박사의 『가족의 두 얼굴』라는 책을 참으로 인상 깊게 읽고 다른 분들에게도 소개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오늘날에는 개인상담보다는 가족체계론에 근거해 가족상담에 치중하는 경향이 점차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가족의 구성원인 가족 개개인은 가족이라는 연대(連帶)를 떠날 수 없는 운명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상담도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사실을 전제할 때 보다 효과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라는 부제(副題)가 암시해주듯이 나와 가족의 관계에서 ‘사랑하기’와 ‘상처주기’라는 서로 상반된 ‘두 얼굴’의 현상에 대하여 가족 간에 일어날 수 있는 매우 다양한 상황에 대하여 평이한 필체로 설득력 있게 기술하고 있어 상담학의 이론을 모르는 자들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학에 비유하자면 ‘평신도들을 위한 신학 강좌’와 같은 성격을 띤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간간이 전문적인 상담이론과 술어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내용을 이해하는데 별로 지장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럽게 전문적인 지식을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하니 가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부가 선정한 인문분야 우수교양도서이기도 하고 20여회나 판을 거듭한 책이니 일단 믿고 일독을 권합니다. 이 책의 내용 전체를 다 요약할 수가 없어 서문의 내용을 발췌해서 인용해보려고 합니다.

“가족은 어머니 품속처럼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아늑한 둥지,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곳이라고 하지만 과연 오늘날 이런 가족이 얼마나 될까. 가족이라고 하면 편안함보다 굴레처럼 생각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족은 나의 힘이 되기도 하고 짐이 되기고 하며, 친밀함 뒤에 미묘한 갈등이 숨어 있기도 하고, 한없이 사랑하다가도 한없이 미워지기도 한다. 가족은 이처럼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가족상담을 오래 하다 보니 나는 따뜻함보다는 가족으로부터 비롯된 슬픔과 아픔, 피해의식과 트라우마를 지닌 이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난다. 서로 아끼고 보듬고 사랑을 키워야 할 가정이 잘못하면 오히려 불행의 싹을 자라게 하는 인큐베이터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았다.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은 단지 의지만으로 되는 문제는 아니다. 의지만 있는 가족은 오히려 가족 구성원을 더욱 부담스럽고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도 배워야 한다.

결혼생활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일정한 특징이 있다. 대형마트에 가면 1+1 행사 물건이 많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준다는 마케팅인데 힘든 부부와 가족에게도 1+1이 적용된다. 부부관계가 힘들수록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시킨다. 서로 성격이 너무 다르고, 애초 잘못 만났고, 너무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다는 등 상대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다. 불행한 결혼의 1은 바로 상대방의 실망스럽고 상처 주는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힘든 부부와 가족관계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여기에 하나가 더해진다. 그것은 각자 배우자가 어린 시절 경험한 부모의 결혼생활과 그때 받았던 상처이다. 이 둘이 합쳐져 1+1을 이뤄 현재 불만과 짜증, 분노로 일그러진 가족이 된 것이다.

상대방에게서만 문제를 찾으려고 하면 그토록 원하던 행복한 가족과는 점점 더 멀어진다. 나의 지난날 상처와 아픔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데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온통 에너지를 쏟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내가 갖고 있는 나머지 1을 살피고 변화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문제가 있는 부부와 가족을 치료할 때 기본 전제가 있다. 가족 문제의 1+1을 가족 모두가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부부가 서로 각자 어린 시절의 상처와 그것의 영향을 마음으로 공감하고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찾아온다.“

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리의 현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소위 ‘내면아이(inner child)’가 상담심리학에서는 매우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내면아이’만이 우리의 현재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것의 비중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social being)입니다. 그래서 함께 어우러져 살 게 마련입니다. 무인도에서 혼자 산다면 개인의 존재론적 고민과 갈등은 있을지 모르나 대인관계의 고민과 갈등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필연적으로 함께 복잡하게 엮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특히 이민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도 삶의 무게가 버거운데 인간관계의 갈등이라는 짐까지 더해진다면 삶의 무게가 한결 더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생계문제로 인한 짐보다 인간관계의 갈등이라는 짐이 더 무거울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원만하면 굳이 안 져도 될 짐을 지게 됨으로써 소중한 삶의 자원이 낭비되고 삶의 에너지가 고갈된다면 참으로 미련하고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든 인간관계의 갈등을 피하고 삶의 무게를 줄이려는 자기 나름의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서 12:15-18)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if it is possible, as far as it depends on you)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