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에 종일 춤추고, 2달러에 두명이 술에 취할 수 있는 나라, 대한민국”
한국으로 역이민을 하거나 장기 체류하는 한인들이 부쩍 늘고 있다. 주로 자식들 다 출가 시키고 은퇴 후의 삶을 고국에서 보내기 원하는 어르신들이다. 그들에게는 미국에 살면서 영어는 늘 스트레스였을 것이고, 두고 온 고향과 형제들이 그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의료보험 혜택이 잘 돼있는 한국에서 치료를 받으며 남은 생을 보내고 싶기에 정들었던 이민생활을 쉽게 접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나 한국이나 돈 있으면 다 되는 세상이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이야 한국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고 미국에서 나오는 연금으로 살아야 하는 어르신들은 한국에서의 삶 또한 녹록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제4항에서 “국가는 노인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노인 복지제도는 아직도 중진국 수준이다. 그러나 노인 지하철 무료 승차 시스템은 잘 되어 있어 온천으로 유명한 온양과 아산까지, 심지어는 춘천까지 마음데로 다녀올 수 있다. 하루 만원이면 온천도 즐길 수 있고, 춘천가서 구경도 하고 춘천막국수 한 그릇도 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세계 최고라는 지하철을 이용하여 교외로 나들이 가는 노인들이 있나하면, 많은 노인들은 아침부터 실버타운인 종로 3가로 몰려든다. 그래서 호주머니 사정이 그리 넉넉치 못한 어르신들이 모여서 하루를 보내는 공간인 종로 3가 일대를 탐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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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만원으로 하루를 즐길 수 있는 곳...종로3가>>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역에서 하차했다. 역 출구는 노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한글로 큼직막하게 “나가는 곳”이라고 종이로 써 붙여져 있었다. 다른 지하철역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종로 3가 상권은 세운상가, 귀금속 상가, 파고다 공원을 중심으로 하여 관광객과 노인들이 모여들면서 여전히 분주하게 살아 있는 모습이다.
노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파고다 공원(탑골 공원)에 갔다. 3.1 운동을 외쳤던 역사적인 곳이다. 삼삼오오 모여서 즐겁게, 때론 심각하게 말씀들을 나누고 계셨다. 은근슬쩍 옆에서 들어보니 시국 문제와 자식들 문제, 그리고 자신들의 군대에서의 무용담들을 나누고 있었다. 현 한국의 정서를 말해주듯 좌우 진영으로 나뉘어 고성과 삿대질도 오가기도 했다.
공중 화장실은 매우 청결한 편이었고, 핸드폰이 없는 분들을 배려하여 공중전화 부스도 있었다. 관활 관청인 종로구청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르신들이 어떻게 하루를 즐기고 있는지 탑골공원 주위를 발품을 팔면서 반나절을 돌아다녀 보았다. 이 일대에는 노인들을 위한 지도가 군데군데 걸려 있었는데, 문화시설과 싼 집 식당 안내 등 지갑 사정이 넉넉지 못한 노인들이 알뜰하게 하루를 보내기 위한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종로 2가에서 낙원상가에 이르는 ‘송해길’이 있다. 일요일에만 차량통행이 금지되고 있지만 하루 종일 사람과 자동차가 뒤섞이고 있었다. 이 ‘송해길’은 장수의 상징이자 젊은이 못지 않은 왕성한 연예 활동을 하고 있는 송해 선생님(92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명명된 길이다.
전국적으로 거의 모든 식당들이 손님이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이곳 식당들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바로 싸고 맛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찾는 곳이라 노인 관련 업소는 무엇이든 저렴하지만 특히 음식값은 웬만하면 4~5천 원 수준의 그야말로 착한 가격이다. 짜장면이 3천 원, 국밥이 4천 원 수준이었다. ‘한끼식사 2,500원’이라는 일반음식점 간판도 걸려있다. 이 가격도 부담이 가는 노인들을 위해 종교 단체에서 ‘무료 급식소’도 운영하고 있다. 이 동네에서는 무엇이든 싸지 않으면 손님의 발길은 끓어진다고 보면 된다. 이발소에서는 이발 3천 원, 염색 4천원을 받고 있는데, 무료 커피도 제공하고 있었다. 염색 가격이 이곳 워싱턴 지역보다 10배 가까이 싸 재미 삼아 이곳에서 이발하고 염색까지 하고 갈까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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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을 위해 스마트폰 사진을 20초 안에 즉석에서 인화해주는 곳도 있다. 1장에 1천 원이다. 노래방도 엄청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소주 1병에 3천원, 마른안주는 천 원이었다. 노인 손님을 위한 영업은 이 가격에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하고, 그 이후에는 일반 손님을 받는다고 한다.
길거리에는 오고가는 노인들로 분주했는데 구걸하는 할머니도 있고 한켠에서는 소주잔을 기울이는 노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소주 1병에 새우깡, 1달러에 술에 취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노상에서 파는 인스턴트커피(다방커피)는 500원 이었고,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진짜 ‘다방’도 아직 있다. 탑골공원 담벼락 밑으로는 어림잡아 50여 명의 노인들이 모여 장기판을 벌이고 있었다. “장기대회가 있는가요?”라고 물었더니 그냥 매일 이렇게 모여 장기를 두신다고 했다.
종로3가 일대에 원근 각지에서 많은 노인들이 몰려오니 사고가 발생하거나 범죄행위가 있지 않나 궁금하여 마침 순찰을 끝내고 돌아오는 김삼수 경위(종로3가 파출소)에게 물었더니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질서를 잘 지켜주셔서 별 사고는 없지만 간혹 노숙자들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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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도 사랑은 한다!"...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콜라텍'>>
“입장료 천 원만 있으면 춤추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
시간이 아직도 1970년대에 멈추어 있는 듯한 분위기의 탑골공원 주위에는 유난히 여관이 많았다. 하루 숙박 3만 원, 대실 1만 원이라고 여관 입구에 광고판을 세워 놓고 있었다. 골목길 이곳저곳에서 시계를 쳐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노인들은 상대가 나타나자 나란히 여관으로 향하는 것도 확인했다. 아직 벌건 대낯인데…대실 비용이 저렴하다 보니 노인들뿐만 아니라 젊은 커플들도 들어가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하루 1천명 이상의 노인들이 입장한다는 콜라텍을 찾아갔다. 콜라텍은 탑골공원에서 건널목 건너편 국일관 드림팰리스 건물 9층에 위치해 있었다. 9층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상기된 얼굴로 줄을 지어 서 있었다. 할머니들의 화장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좀 먼 곳에서 보면 50대 초반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9층 엘리베이트 앞에는 두 명의 건장한 남자가 무조건 1천 원씩 받고 입장을 시키고 있었다. “쿵짝쿵짝♪ 쿵짜자쿵짝♬” 대충 7~8백평 쯤 되는 실내에는 은은한 조명아래 춤추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있었다. 오후 6시면 영업이 끝나니 3시쯤이면 가장 피크타임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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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가로질러 식당이 있었다. 춤을 추면서 짝을 찾았는지 값싼 안주에 분위기 좋게 술을 마시는 커플들이 많았다. 막걸리를 대접하면서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양평에서 왔다는 할머니(71)는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남편이 돌아가시자 우울증이 와 고생을 많이 했다. 일주일에 2번 이상은 이곳을 찾는다. 지하철 타고 온다”고 하시면서, “여기에 오면 시간도 잘 가고 운동도 되어 좋다”고 했다. 중절모에 백구두를 신은 어르신(76)은 “솔직히 우리가 나이가 많다 뿐이지 젊은이들 노는 것하고 똑같다고 보면 된다. 부킹하고 마음만 맞으면 2차까지 간다. 나이가 들어도 연애는 한단다”고 귀띰해 주셨다. 나는 왜 종로 3가 일대에 싸구려 여관이 많은 지 그때서야 알아차렸다.
콜라텍은 무도장의 형태로 허가를 받으며, 노인들이 저렴하게 신체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법적으로 카바레와 다른 점은 카바레에선 모든 춤이 가능하지만 콜라텍에서는 지루박만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콜라텍은 전국 1천여 개에 이르고 있고, 서울에만 초대형 콜라텍이 수십 개가 넘는다고 한다. 크고 작은 전체 콜라텍에 하루 평균 400명 정도가 이용하고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40만 명 이상의 노인들이 콜라텍에서 하루를 즐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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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usKorea.com 강남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