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유에스코리아뉴스
김재동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Featured 교회소식

[위기를 기회로 만듭시다] 김재동 원로목사의 신앙칼럼

저는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연히 미국 감리교단에서 만든 성경공부 교재를 한 권 구하게 되었는데, 그 교재를 훑어보던 중 큼지막하게 한문이 인쇄되어 있는 페이지를 보고 의아하게 여겨져 얼른 읽어보았습니다. 전부 영어로 인쇄되어 있는 교재인데 유독 위기(危機)라는 한자(漢字)만 큼지막하게 인쇄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자 밑에 영어로 그 의미가 적혀있었습니다. 위태로울 위(危) 자 아래에는 danger, 그리고 틀기(機) 자 아래에는 opportunity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위기(crisis)는 위험과 함께 기회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설명까지 친절하게 달아놓은 것을 보고 좀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오래 전 중국 사람들이 한자를 만들 때 참으로 깊이 생각을 했구나 하는 생각도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케네디 대통령도 언젠가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연설을 하는 중에 이와 비슷한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위기’를 두 글자로 표기합니다. 한 글자는 위험을 뜻하고, 또 한 글자는 기회를 의미합니다. 위기가 닥칠 때 우리는 그 위험을 알고 있어야 하지만, 또한 그 위기 속에 있는 기회도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A crisis can be an opportunity.). 위기를 당했을 때에라도 좌절하지 않고 더욱 분발하면 오히려 그 위기가 기회로 바뀔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과 결이 비슷하면서 미국인이 즐겨 쓰는 말 중에 ‘a blessing in disguise’(변장된 축복)라는 말도 있습니다. 당장은 불행처럼 보일지 모르나 나중에는 축복이 될 수 있는 ‘전화위복’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한때 미주한국일보에 ‘미국생활영어’라는 칼럼을 오랫동안 집필했던 조화유 씨는 유학생으로 미국에 왔을 때 영어에 상당히 자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토플 성적도 세계 최고수준이었고, 미국 교수들도 영어를 잘한다고 늘 칭찬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대학 구내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 매니저가 그의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해고해버렸습니다. 그는 처음엔 이해가 잘 안 됐지만 곧장 그 이유를 깨달게 되었습니다. 그는 학문적이고 문법적인 ‘고급영어’(written English)에는 강했지만, 미국인들이 평소에 사용하는 ‘생활영어’(spoken English)에는 약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미국인들의 대화를 귀담아듣고 처음 듣는 말은 모조리 노트에 적어서 달달 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혼자만 갖고 있기가 아까워서 교포신문에 연재하게 되었고, 마침내 모두 10권, 1,000페이지에 달하는 『이것이 미국영어회화다』라는 책과 함께 CD까지 제작해서 보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명세를 타면서 중국, 대만, 일본에서도 번역 출판하게 되었으니 30여 년 전 대학식당에서 해고된 것이 그에게는 정말 ‘전화위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학을 하던 유학생으로서 해고당한다는 것은 분명 하나의 위기였지만 그는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마침내 성공을 일궈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예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를테면,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위기를 당한 사건이 오히려 복음이 온 사방에 퍼져나가는 기회가 되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인 스데반 집사의 순교에 이어지는 사건입니다. 그가 성령의 힘으로 논리정연하게 복음을 전하자 해외 여러 회당에서 온 유대인들이 변론으로 그를 당할 수 없게 되자 그가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고 율법과 성전을 모욕했다는 거짓 모함으로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충동질해서 공회 앞에 세우고 거짓 증인들까지 세웁니다. 결국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이제 그들은 스데반을 죽인 여세를 몰아 내친 김에 예루살렘 교회에 심한 박해를 가하게 되었고, 사울(바울)도 살기등등해서 집집이 돌아다니며 성도들을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습니다. 이런 와중에 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성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고, 흩어진 그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라고 명하셨는데, 이제 마침내 그 명령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에 밀어닥친 위기가 오히려 기회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되는 경우를 직간접적으로 자주 접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통해서도 이러한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 예로, 6.25동란은 우리 민족에게는 엄청난 위기였습니다. 3년여에 걸친 전쟁으로 인해 도저히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국토는 초토화되었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가 되어 있습니까? 볼썽사나운 모습들이 없진 않으나 그래도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감회를 갖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막강한 나라가 되지 않았습니까.

어떤 분이 말하길 아직까지도 한국은 북한과 대치상태에 있지만 만일 북한이 없었더라면 한국이 이만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면서, 매우 설득력 있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어느 목장에서 양을 치고 있는데, 늑대들이 와서 양을 해치니까 작심하고 늑대들을 총으로 다 죽였더니 언젠가부터 양들이 이름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픽픽 쓰러져 죽더라는 것입니다. 늑대가 있을 때는 바짝 긴장해서 건강했는데, 늑대가 사라지니까 긴장이 풀려 몸에 병이 들었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역사가요 문명비평가인 토인비는 그의 불멸의 명저인 『역사의 연구』에서 역사를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이라는 공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외부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했던 민족이나 문명은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문명은 소멸했다고 주장하면서 단적인 예로 마야문명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화려하게 꽃피웠던 마야문명이 갑자기 사라진 원인과 관련해 여러 학설이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에게 외부의 적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토록 대단한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갑작스러운 시련이 밀어닥치자 끝내 그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무사안일(無事安逸)이 항상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비온 후에 땅이 굳어지듯이 위기의 고난을 통해 우리의 삶의 바탕이 더욱 견고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평소에 좋아했던 말 중에 “인간의 곤경은 하나님의 기회이다(A human predicament is a God’s opportunity.)”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이다.”라는 말도 같은 내용의 금언(金言)입니다.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인생의 역풍을 순풍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벼랑 끝에서 은혜의 손을 힘차게 뻗어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은혜와 무궁한 지혜를 기억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