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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주어지는가. “와이 미(Why me)?”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하고 원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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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원로목사의 신앙칼럼]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

적어도 겉으로만 보면 이 세상사는 온통 모순과 부조리와 불합리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Honesty is the best policy.)”라는 말이 있지만, 정작 사회에서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때로는 바보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회상을 가장 여실하게 보여주는 예가 바로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입니다. 아마도 이것보다 더 불공정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올곧게 사는 ‘의인’은 고난을 당하고, 부정과 권모술수를 일삼는 ‘악인’은 오히려 형통한 사례가 우리 삶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인생의 지혜를 논하는 전도서에도 이런 모순을 시니컬하게 언급한 구절이 있습니다.

(전도서 8:14) “세상에 행하는 헛된(meaningless) 일이 있나니 곧 악인의 행위대로 받는 의인도 있고 의인의 행위대로 받는 악인도 있는 것이라.”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이 문제는 심한 갈등을 일으키는 난제 중의 난제입니다. 딴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터무니없는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정도의 어려움을 당할 나쁜 짓은 한 일이 없는데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주어지는가. “와이 미(Why me)?”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하고 원통합니다.

욥은 하나님도 인정하신 의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메가톤급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하루 아침에 열 자녀를 잃어버리고, 그 많던 재산도 순식간에 거덜이 납니다. 게다가 욥 자신은 온 몸에 악창이 나서 견딜 수 없는 비참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죽하면 그의 아내가 이런 지경에도 하나님을 찬양하겠느냐,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라고 악다구니를 쳤겠습니까. 욥은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꿋꿋하게 지킵니다. 그러나 위로한답시고 찾아온 세 친구들이 염장을 지르는 바람에 억울한 마음이 들면서 점차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런 불평을 토해내기도 합니다.

(욥기 21:17-18) “악인의 등불이 꺼짐이나 재앙이 그들에게 임함이나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케 하심이나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 같이, 폭풍에 불려가는 겨 같이 되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느냐.”

그러나 욥은 연단의 과정을 통해 정금 같은 믿음을 갖게 되고,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자기의적(自己義的, self-righteous)인 교만한 믿음에서 벗어나게 되며, 이제까지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는 믿음의 업그레이드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갑절의 복을 누리는 Happy Ending의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시편 기자도 악인들의 형통함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이렇게 한숨짓습니다.

(시편 73:12-14)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하도다. 내가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자기는 죄짓지 않고 바르게 살려고 무척이나 노력하는데도 날마다 어려움을 당하는데 반해, 악행을 밥 먹듯 저지르는 자들은 날마다 재산까지 불려가며 맘 편히 살고 있으니 도대체 이게 뭔가 하는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끌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끌어안고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는 중에 해답을 얻게 됩니다. 악인은 당장에는 흥하는 것 같으나 결국 망하게 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내게 복이라”는 영적인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꼭 같은 고민을 하면서 하나님께 푸념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하박국 1: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그 당시 강성했던 갈대아(바벨론)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업신여겨 마구 유린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왜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민(選民)이 곤란을 당하는 것을 번연히 알고 계시면서도 저 악한 이방 갈대아인들을 심판하시지 않는가, 과연 하나님은 죄악을 간과하시지 않는 공의로우신 분인가, 하는 회의감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이 의문에 대해 하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실는지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 것이라”는 답을 주셨습니다. 비록 현실적으로 당장 불합리해보일지 모르나 마침내 공의로 심판하게 될 나 여와와를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뜻으로 새길 수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 자신도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회의감이 들 때가 없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은 저런 악한 짓을 하는 자를 당장에 요절내지 않으실까. 벼락이라도 쳐서 천벌을 내리셔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의 판단과 달리 얼마간 심판을 유보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악인들이 대담하게 악한 짓을 계속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말씀이 있습니다.

(전도서 8:11)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지는 말씀에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죄인이 백 번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내가 정녕히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앞에서 경외하는 자가 잘 될 것이요.”

이러한 성경 말씀들에도 불구하고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은 현실적으로 명쾌하게 답하기가 어려운 난해한 주제라는 것을 저 스스로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요즘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서 이 주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공의라는 얼핏 모순돼 보이는 성품을 깊이 묵상하며 신앙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모든 행위는 선악간에 하나님의 장부에 누락되거나 잘못 계상(計上)되는 일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 보상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상급으로 차곡차곡 쌓여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대로 선행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Published on: May 2, 2020 -김재동 원로목사-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서울대 영문과 졸업, 해외한인장로회 총회장 역임, 전 워싱턴한인교회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