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이었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이 18일 향년 84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파월 전 장관은 성공한 직업 군인이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내며 선구자적인 길을 걸었다. 한때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이라크 전쟁의 문을 연 유엔 연설로 인해 그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CNN과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에 따르면, 파월 전 장관은 1937년 4월5일 뉴욕 할렘에서 자메이카 이민자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파월 전 장관은 사우스 브롱크스에서 성장한 후 뉴욕시립대에 입학한 뒤 ROTC(학생군사교육단) 장교로 임관했다.
파월 전 장관은 1958년 대학을 졸업한 후 미 육군에 입대했고, 1960년대 남베트남에서 두 차례 복무했다. 그는 당시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2명의 군인을 구출한 것을 포함해 2차례 부상을 입었다. 그는 귀국 후 육군에 남았고, 미 국방대학교를 다니면서 리더십을 향상시켰다.
그는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처음엔 미군을 투입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에 대한 미군의 공격이 개시됐을 때 그는 당시 행정부에서 가장 신뢰받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이라크 군을 언급하면서 “먼저 우리는 차단할 것이고, 그런 다음 우리는 죽일 것”이라고 발언은 유명하게 회자되고 있다.
그는 걸프전 당시 미국 주도의 연합군의 승리 이후 그의 인기는 치솟으며 국가적 영웅이 됐고, 미 의회 금메달과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파월 전 장관은 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으로부터 두 번째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파월 전 장관의 명성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개입으로 오점을 남겼다.
그는 2003년 2월 유엔에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미국 정보기관의 증거를 제시했다. 그는 당시 연설에서 “사담 후세인이 생물학 무기와 더 많은 생물학 무기를 신속하게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후 이라크에서 파월 전 장관이 경고했던 대량살상무기는 발견하지 못했고, 파월 전 장관 연설 2년 후 정부 보고서는 미국의 침공 전 정보기관들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평가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유엔 연설에 대해 자신의 이력에 남을 “오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2010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정보가 잘못됐기 때문에 지금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월 전 장관은 공직자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공화당 행정부에서 보냈지만, 그의 말년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을 지지하고 공화당 지도자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등 정치적 변화를 택했다.
그는 2008년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때 명예 공동의장으로 임명됐고, 2012년 대선 때도 다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파월 전 장관은 2016년 대선 때도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닌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지지했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파월 전 장관을 향해 “국가적 수치이자 국제적 왕따”라고 맹비난했다. 파월 전 장관은 지난해 대선 때에도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발표했다.
그는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헌법을 따라야 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헌법으로부터 멀어졌다. 분명하게 올해 어떤 식으로든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할 수 없다”고 말했고,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연설을 했다.
파월 전 장관은 올해 1·6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한 미 의회 난입 사태 이후 자신을 더 이상 공화당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저는 공화당과 민주당에 투표한 시민일 뿐”이라며 “저는 지금 정당과 상관 없이 조국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뉴스1) 김현 특파원 gayunlov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