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에 “미국산 앵무새” 운운하며 사실상 ‘동조 말라’ 요구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황에서 북한이 ‘막판 흔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번 주말로 예상되는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를 앞두고 우리 정부를 상대로 사실상 미국의 대북 압박기조에 동조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30일 담화에서 최근 실시한 자신들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우리 측이 미국과 마찬가지로 ‘2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며 “남조선 집권자”, 즉 문재인 대통령을 “미국산 앵무새”라고 불렀다.
북한은 지난 25일 ‘신형 전술유도탄’이라고 명명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금지돼 있는 사안이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이튿날 ‘서해수호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국민 여러분의 우려가 큰 걸 잘 안다”며 “대화 분위기에 어려움을 주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로 북한을 에둘러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자신들의 이번 미사일 발사가 우리 측의 탄도미사일 개발과 마찬가지로 “자주권에 속하는 국방력 강화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 북한은 이번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미국이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를 소집하고 영국 등 유럽 국가들도 안보리 회의를 열어 관련 문제를 다룰 것을 요구하자, “주권국가에 대한 무시이며 명백한 2중 기준”(조철수 외무성 국제기구국장)이라며 반발했었다.
김 부부장이 이날 담화에서 문 대통령을 겨냥해 “미국의 강도적 주장을 덜함도 더함도 없이 신통하게 빼닮은 꼴”이라고 비난한 것도 이 같은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김 부부장 등의 담화는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 완료 시점과 맞물려 대미 공세를 강화하는 차원”이라며 “자신들의 미사일 발사 등 무력시위를 자위권 차원에서 정당화하고, 필요시 남한에 대한 무력공세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은 이번에 발사한 ‘신형 전술유도탄’의 비행거리가 600㎞, 탄두중량이 2.5톤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수치대로라면 이 미사일로 남한 전역을 타격하는 게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특히 “‘신형 전술유도탄’의 탄두중량을 줄일 경우엔 주일미군기지 등 일본 내 일부 지역까지도 사정권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방력 강화조치”란 명분 아래 사실상 한미일 3국 모두에 위협을 가했다는 것이다.
다만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북한엔 현재 미국의 관심을 끌 만한 소재가 미사일 발사밖에 없다는 것”이라면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암묵적 ‘레드라인'(한계선)에 묶여 있기 때문에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로 미국의 반응을 떠보려 했다. 그런데 미국 측이 안보리 소집에 나서니까 강력 반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가운데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을 예상이라도 한 듯, “중요한 건 북한의 도발이 한미일 3국의 결의를 흔들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통일부 당국자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부부장의 담화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어떤 순간에도 서로를 향한 언행에서 최소한의 예법은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미 정부는 이번 주말쯤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한미일 3국 안보실장 회의를 통해 그동안 진행해온 대북정책 재검토 결과를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의견을 청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용석 기자 ys4174@news1.kr (기사제공 = 하이유에스코리아 제휴사,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