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마다 주기적으로 세상에 나온다는 ‘브루드 X’ 매미와 함께 생활한 지도 거의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
16년을 어두운 땅속에서 애벌레로 살다가 17년째 되는 해에 세상에 나온다는 이 매미와의 인연도 1987년, 2004년, 그리고 올해로 세 번째이다.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니 매미에도 종류가 많다. 일반적으로 한국산 매미는 2년, 3년 또는 5년 주기로 세상에 나온다. 어릴 적 시골에서 유달리 높은 나무 위에 있어 잡기 힘들었던, 그리고 이 ‘브루드 X’ 보다 크고 잘 생겼던 참매미는 5년이 주기이다고 한다.
매미 수명에서 특이한 점은 2년짜리 매미를 빼고는 대체로 3,5,7,13,17 소수로 나간다는 것이다. 이는 짝수 년보다 홀수 년에 나오는 것이 서로 만날 확률이 엄청 줄어든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4년마다 나오게 되면 2년 주기의 천적과는 2년마다, 3년이면 12년마다 만나게 되지만, 5년 주기의 매미와 7년주기의 매미는 35년만에야 얼굴을 맞 댈 수 있다.
이 학설이 증명되는 것은 17년 주기의 매미떼 개체 수가 가장 많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미 동부 15개 주에서 노래 부르고 있는 이 ‘브루드 X’ 매미의 개체 수를 약 2조 마리로 보고 있다.
거대한 군집을 이뤄 천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이 ‘브루드 X’ 매미도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곤충을 미래 식량으로 생각하고 있는 인간이 바로 그들의 천적이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방은 적고 단백질이 풍부하며 여러 비타민이 고루 들어 있지만 독성이 없는 매미를 그냥 두지 않고 있다. 17년 만에 만난 이 매미를 기념하면서 기름에 바싹 튀겨 먹거나 샐러드에 버무려 먹고 있고, 식품공장에서는 에어프라이로 튀겨 초콜릿 쿠키로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식당에서는 매미 타코, 매미 스시, 매미 아이스크림 등의 메뉴를 내어 놓고 불티나게 팔고 있다. 심지어 일부 가정에서는 매미를 튀겨 가루를 낸 뒤 밀가루와 섞어 요리를 한다고 자랑하고 있다.
요즘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 SNS 상에는 17년 만에 만난 이 매미 이야기가 대세이다. 주로 매미와 일상생활을 같이 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사진과 함께 올리고 있다. 학자들은 아이들의 자연학습이나 숙제를 위해 꼭 이 ‘매미 천국’을 사진으로 남겨두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오묘한 대자연의 섭리를 다시 접하려면 17년을 또 기다려야 하니까.
“앞으로 17년 후에 다시 이 매미를 만나게 될까?”
나와 같은 연배의 많은 사람들의 화두는 자신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며 인생무상, 세월무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짝 짓기 한 번을 위해 자그마치 16년을 와신상담 기다렸다가 겨우 4~6주 동안 살면서 즐겁게 노래 부르다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는 이 매미를 보면서, 학창시절 국어 시험 단골 메뉴였던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이 생각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8선녀가 환생한 여인들을 모두 아내로 삼으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주인공도 늙어서 문득 그런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것도 결국은 허망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다시 승려 성진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불교적인 내용이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700명의 아내와 궁녀 300명을 거느리며 역대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도 이렇게 인생무상을 ‘전도서’에 유언처럼 남겨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인생무상”, “세월무상”.
세상의 부귀영화 같은 것들이 다 꿈처럼 허망할지라도 어찌하겠는가.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오늘 하루도 살아있다는데에 감사하자. 매미 같은 미물도 한 달을 살아도 죽는 날까지 세상 밖의 삶을 즐겁게 노래 부르다 가지 않은가?
저 죽을 날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미는 오늘 아침에도 짝짓기를 위해 열심히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