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신앙과 관련해 과거, 현재, 미래라는 3가지 시제로 나누어 상고해보려고 합니다.
1. 과거시제의 관점에서
과거시제의 관점에서 부활을 생각할 때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아무래도 부활의 역사성에 대한 인정과 믿음일 것입니다. 부활이 역사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부활신앙을 논하는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일상적인 경험이 아니라 선험적(先驗的) 사건이므로 불신자들이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그런대로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크리스천을 자처하는 자들 중에도 부활에 대해서만은 솔직히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자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들 가운데서도 부활은 실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가공적인 신화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활이 2천여 년 전에 예루살렘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임을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토마스 아놀드(Thomas Arnold)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역사를 연구하고 그 사실을 조사하고 이에 대하여 기록한 문헌과 유물을 고증하여 그 사실 여부를 조사해 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표징, 즉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완벽한 증거를 나는 보지 못했다.”
빠스깔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예수의 제자들이 서로 의논해서 예수의 부활을 거짓으로 조작해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중에 단 한 명이라도 본심으로 돌아갔더라면 예수의 부활 주장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예수의 부활을 증거했던 것이다.”
미국의 린치버그 리버티 신학교의 교수이며 부활 변증학자로 유명한 게리 하버마스(Gary R. Habermas)는 부활과 관련된 1,400여 권의 주요 학술서적을 면밀히 연구한 후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의 광범위한 주장들을 종합한 결과 부활의 역사성을 확신하게 되었고,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부활하신 예수와 미래의 희망』이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무려 40일 동안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다양한 대화를 나누시고 다양한 행동을 하셨습니다. 한 사건에 대하여 이토록 풍부한 사료(史料)를 지닌 사건도 그리 흔치 않을 것입니다. 지난 2천여 년 동안 사탄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온갖 가설들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기독교가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음은 부활의 역사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2. 현재시제의 관점에서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저주를 받아야 할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죄인의 모습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해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사망이 더 이상 행세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55-57)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죄는 율법을 빌미로 우리를 죽이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사망을 면하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은 부활의 전제입니다. 이제 영생을 가진 자로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의 승리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하신 주님이 바로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죄악의 세력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도 죄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해야 합니다. 또한 절망적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본받아 고난과 역경을 당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힘차게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3. 미래시제의 관점에서
(고린도전서 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만일 내세(來世)가 없다면 인생은 정말 허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 마지막 날 주님 재림시에 다시 부활시켜 주시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믿기에 우리는 산 소망(a living hope)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요한계시록 22:12)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날에 풍성한 상급(reward)을 받을 수 있도록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주님을 성실하게 섬기고, 부활의 증인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조선 땅을 밟은 날이 부활절 아침이었다는 것은 우연치고는 참으로 의미 있는 우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활장으로 일컬어지는 고린도전서 15장은 이러한 권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고린도전서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