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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중국선교단상 [청와대 용산이전과 안보구멍]

이민우 선교사

중국선교단상에 갑자기 무슨 연유로 청와대 용산이전과 안보구멍 이란 소제목은 언뜻 정치색 내용이 나타나 의아해 하실 지 몰라 배경을 설명하면서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선교대상국에 대한 이해를 높일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함 입니다.

중국이라는 사회공산 체제의 미국 등 정부 사이트에 대한 사이버 해킹, 교란 침투 등을 감행하는 IT 군단이 조직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뉴스가 아닙니다.

한중 국교수립 이후의 중국선교 초기에 중국 내에 사역 중이던 선교사들과 후원자들 사이에 통신 수단 중에 암호가 유행하던 적이 있었다.
기도라는 단어를 지양하고 선교사, 교회 같은 단어가 이 메일 사이에서 발칵 될 수 있어서 사장님(왜냐하면 중국에는 종교비자를 발급한 적이 없던 지라 실제적으로 회사 직원이나 투자자 신분으로 입국해서 사역을 하여 왔기에) 사업체 등으로 바꿔 사용해왔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중국은 아주 이전부터 재중교포(조선족)들을 동원해 이 메일 등을 감시해왔던 것이다.
어찌 보면 중국 내부 사정을 모르고 헛고생한 셈이다. 선교사들간에 사용되던 은어를 다 알고 있는 셈이었다.

그들은 종교가 정치권에 강한 도전세력이 되지 않는 한 암암리에 묵인해 왔던 것이다. 파륜공( 法轮功)등 반정부 사이비 종교 단체 등의 반정부 활동이 아니면 구태여 단속을 하지 않으며 가정교회 단속도 그리 심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풀 뿌리 같이 번져가는 기독교 세력에 주목하기 시작해 더구나 해외 반 중국세력과의 결탁을 염려해온 것이다.

마치 1989년 6월4일 천안문 폭동사태 같은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탄압을 하여 왔고 시진 핑 시대에는 중화 대 부흥을 획책하여 내부 결속 이라는 명분으로 가정교회들을 탄압하고 있는 것이다.

등소평 이래로 사실 종교에 있어 상당히 관용적인 자세였다가 갑자기 탄압으로 변한 것이다. 방임 했다가는 사후 수습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공산화와 문화 대혁명이란 혹독한 정치사회 환경하에서 중국 기독교가 사라졌다는 서방국가들의 관망은 여지없이 빗나갔던 것을 기억한다.

이미 신앙의 능력에 힘입은 기독교인들이 현재의 시진핑의 탄압으로 일시적으로는 수 그러 드는 듯 해 보여도 절대 그 신앙의 급살을 거슬릴 수 는 없을 단계에 이른 것이다.
시대흐름을 역류시키거나 막을 수 는 없는 노릇이다. 로마 학정 아래서도 그랬고 복음의 능력은 한 정권의 탄압으로 제제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진리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북한도 지금은 지하교회 성도들의 고난과 탄압이 심해도 언젠가는 북한주민도 신앙의 자유 시대가 올 것이다.

정권은 신앙을 지배할 수 없다. 겉으로는 통제할 수 있는 것 같이 보여도 마음 속까지도 통속 하지는 없는 노릇 아닌가?

중국의 종교국은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성장 밑에 보통 7-8명의 부 성장이 행정 업무를 분담해왔고 특히 종교문제는 교육, 여성등과 같은 문제를 담당하는 한 명의 부 성장의 몫이다.

그들은 헌법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단지 18세 미만 연령 층에 전도는 금지되어 있고 외국인에 의한 전도(삼자애국운동 기독교 관련 법규, 자치(自治),지양(自养), 자전, (自传), 즉 영화 등 외국 문화의 자국 영향에 상당한 제한을 두고 엄격한 검열과 통제를 해왔다. 종교도 그 범주에 묶어둔 것이다.
중국이 대 중국 외국인투자 항목 심의 대상 기준법규를 보면 정신적 영향을 주는 종교 영화, 문화 교육사업 등은 결국 허용해오지 않거나 어렵다.

외국 문화가 중국인들 심령에 악 영향을 염려해서이다. 종교도 그 중의 하나이다.
중국의 세계공장화에 힘입어 경제 정치 군사 등 급부상에 맞춰 중국은 IT, SNS 에 엄청난 인원을 훈련 대비해왔다. 인해전술이 이제는 인터넷 가상세계로 발전한 사이버 군단 양상.

세계적으로 IT 에 강한 나라가 인도이다. 인도는 1950년대 말부터 소련의 컴퓨터 시스템을 배워와 자체 계급사회가 그것 때문에 위태해질 정도이고 그래서 미국 등 선진국의 IT 분야에 인도출신 이 많은 것도 이에 기인하다.

70년대말부터 중국의 경제 개방정책으로 급성장을 거듭해온 중국은 막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많은 외국기업의 생산력을 처음엔 위탁가공 수준에서 점차 자기 개발을 할 정도로 발전.

세계에서 북한을 제외한 공산사회체제 아래 자본주의를 혼합한 수정 공산사회주의를 러시아보다 먼저 실시한 셈이다.
중국 특유의 실용주의가 날개를 단 셈이다. 그래서 자본 즉 돈 맛을 알게 된 중국인은 더 이상 만만디 (慢慢 地)(천천히의 중국어발음)는 이제는 아주 옛날 얘기이다. 어디를 가도 돈 버는데 혈안이 되어 사회질서가 위태할 지경이고 따라서 사회도덕 윤리는 땅에 떨어져 있는 상태다.

정권은 공산화에 성공 후에도 문화대혁명 등의 정치 혼란 등으로 인민들의 생활의 질은 바닥을 쳤다가 등소평의 개방 정책으로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허용되기 시작하며 부동산 투기까지 성행, 현재 정부가 강력한 통제하에 거품경제를 잡고 있을 정도로 위험한 상태이다.

중국은 토지는 국가소유이고 기업 개인 등 거의 100년을 임대사용 형태로 사회공유 재산으로 되어 있다.
재테크에 밝은 한인 투자자들도 한 몫들을 하여 재미를 톡톡히 본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한다.
그러나 개인 명의로 토지를 임대 계약한 경우 위험 요소는 상존한다. 기업 투자의 경우는 필히 법인 명의로 계약해야 말썽이 안 생긴다.

중국측은 처음에 외국자본 투자유치 때는 묻지마 식으로 유치하던 것이 이제는 공해산업 등 여부로 고르는 배 튀기는 행태로 발전?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시기 세계화가 국시(国是)? 인 양 모든 중앙정부와 지자 체 정부 및 기관과 반 국영 기관 들에 모두 국제협력 실을 설치하게 되었다.

왼쪽에서 두번째 이민우 선교사

중국 역시 고립됐던 국제적 지위를 탈바꿈하려는 노력으로 한국 등 전세계에 외자 유치 단을 파견해왔다.
그러다가 한국에 IMF가 터지고 한국도 부랴부랴 해외 기업 투자유치에 박차를 가해 필자는 1998년 당시 국무총리출신인 임창렬씨가 이인제 전임 도지사의 대통령 출마 낙선 후 한국당의 지원 하에 2대 지방자치 장 도지사 선거에서 당선되어 급선무로 외자유치 실을 조직, 몇 명의 외자유치 경력이 있는 저를 포함해서 코트라 간부 중 1억이 넘는 연봉의 파격적인 인사로 한때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었다.
임창렬 도지사 처의 행정관섭에 대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적절한 공개시험 없이 계약직 공무원을 정무직 형태로 채용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경기도 외자유치센타가 처음엔 삼성동 무역센터에 위치하다가 코트라가 자체 건물을 완공하면서 양재동 사옥으로 이전해 정부 각 부처에서 통합지원본부를 운영했었다. 투자유치관련부서인 재경원, 국세청, 상법 변호사 등 다양하게 포진하고 있었다.

경기도는 우호자매도시로 중국의 요령성과 가장 부유한 광동성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교류공무원도 오고 갔는데 중국측에서 온 고 ㄱ ㅅ 라는 요령성 공무원은 김일성 대학에서 조선어를 전공한 사람으로 요령성 정부 외사판공 실에 근무하다가 경기도청에 파견 와 아파트도 제공받고 많은 혜택을 누렸었다,

문제는 행자부에서 보낸 대외비밀이라는 도장이 찍혀있는 공문서를 회람하는데 그 공문서가 중국측 공무원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서기관이든 사무관이든 누 구하나 신경을 쓰지 않는데 놀랐다. 그때 외자유치실 서기관이 최근까지 부도지사를 지냈던 대학 3,4년후배인 김ㅎㄱ 이었다. 대학 때 행정고시 합격하여 초고속 승진을 한 셈이다.

우스웠던 건 계약 만료 전 계약연장 의사를 필자가 원치 않자 사임 각서에 사인을 요구 받아 내용을 읽어보니 관공서에 근무하며 얻은 정보를 언제까지 제한하여 비밀로 유지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교류공무원에도 그런걸 요구 할 수 있었겠는가?

문제는 또 하나 있었다. 경기도 측에서 파견한 교류공무원의 중국어 시험을 필자가 필기 와 구술을 거쳐 선발 파견했는데 귀국 후 보고내용을 보면 교류공무원 사무실은 혼자 격리상태로 아무 정보도 얻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외사판공실내에는 북한 방송 TV, 한국 주요방송 TV 수신 대형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어 중국측은 양쪽을 다 들여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고 ㄱ ㅅ 는 부산 중국영사관으로 서울 수원에 이어 부산 같은 주요도시에서 근무해 한국의 근무 상황을 보고해 갔다는 말이다.
수원 경기도청 근무 시 중국인 환대로 국가 안보는 이미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최근 새 정부의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 관련 소식 중에 청와대내에 도청장치가 많고 간첩소지가 많아 그 상태에서 그대로 청와대 인력을 인수하면 안보비밀이 위험하여 용산이전을 한다는 발표를 들으며 그런 안보 구멍이 과연 새로운 것인가 의구심이 든다.
중국은 한국과 북한을 손바닥 들어 보듯이 보고 있는데 우리는 국정원 정도나 그것도 최근에 그 기능을 축소시켰거나 폐쇄 시킨 것으로 안다.
참 위험한 보안수준이다.
새 정부 내각이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