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국내 장기 미제사건 중 하나인 ‘대구개구리소년 실종·암매장 사건’, 이른바 ‘개구리소년사건’이 타살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는 가 하면, 지난 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나는 개구리소년 사건의 흉기를 알고 있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게재되어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지난 5월 개구리소년사건 취재기를 담은 김재산 국민일보 대구경북취재본부장의 책 ‘아이들은 왜 산에 갔을까’ 출간을 계기로 사망 원인에 대해 다른 해석이 나왔지만, “개구리소년 사건, 범인은 인근 고교 일진”이라는 한 네티즌의 새로운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개구리소년사건은 31년 전인 1991년 3월26일 발생한 대구 성서지역 초등학생 집단 실종 사건이다.
한 동네에서 같은 초등학교에 다닌 우철원(당시 13세)·조호연(12)·김영규(11)·박찬인(10)·김종식군(9) 등 5명은 이날 아침밥을 먹고 ‘도롱뇽 알을 찾겠다’며 집 뒤에 있는 와룡산에 올라갔다 실종됐다.
경찰은 국내 단일 실종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인원 35만명의 수색인력을 풀었지만 범인이나 실종 경위를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이 사건은 발생 11년이 지난 2002년 9월26일 실종 아동들이 와룡산 세방골에서 모두 유골로 발견되면서 또한번 충격을 던졌다.
당시 경북대 법의학팀이 유골 감정을 통해 ‘예리한 물건 등에 의한 타살’로 결론을 내렸지만 범인을 잡지는 못했다.
법의학팀의 결론에 앞서 당시 경찰은 실종 당일 내린 비로 기온이 내려간 점에 비춰 ‘저체온증에 따른 사망’이라고 성급하게 발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경찰의 사과와 법의학팀의 타살 결론으로 일단락됐던 저체온증 사망 논란이 최근 다시 나오고 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수사 책임자인 김영규 전 총경(당시 대구경찰청 강력과장)은 김재산 국민일보 대구경북취재본부장의 책 ‘아이들은 왜 산에 갔을까’에서 ‘개구리소년사건은 타살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책 내용과 뉴스쇼 보도를 종합하면 김 전 총경은 아이들의 두개골에서 발견된 ‘ㄷ자’, ‘V자’ 모양의 상처를 타살이 아닌 근거로 제시한다.
부검을 맡았던 경북대 법의학팀은 이 상처들이 흉기로 인해 생긴 것으로 보고 ‘명백한 타살’로 결론내렸다. 그러나 김 전 총경은 법의학팀이 타살의 근거로 제시한 두개골 손상이 사후에 생겼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사망 후 유골이 발견될 때까지 11년 동안 여름에 비가 내리면서 날카로운 돌이 사체 쪽으로 떨어지고, 돌이 두개골을 가격해 생긴 ‘사후 골절흔’이라는 것이다.
김 전 총경의 타살이 아니라 저체온증으로 죽었다는 주장에 유족 측 등은 반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와중에 지난 6월 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나는 개구리소년 사건의 흉기를 알고 있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게재됐고 오늘 하이유에스코리아 자유게시판에도 올라왔다.
해당 게시글 작성자 A씨는 “‘그것이 알고 싶다’ 801회가 방송된 날짜가 2011년 5월14일”이라며 “(해당 의견에 대해)햇수로 무려 11년동안 주장했다. 네이트 뉴스 댓글은 물론 유튜브 댓글로 수도 없이 떠들었지만 누구도 관심조차 갖지 않았고 아니 오히려 조롱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대한민국에 도대체 목수가 몇 명이냐”며 “그 수많은 목수들 중에 단 한 사람도 그 두개골 사진을 보고 눈치를 못 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동네에서 자라본 남자들은 알 거다. 도롱뇽이 아니라 사실은 올챙이를 많이 잡으러 갔다. 양서류들은 습하고 햇빛이 잘 안 들어오는 쪽에 많아서 산이 있다면 한 쪽 방위에만 산다. 남쪽에 산다면 북쪽엔 전혀 없고 북쪽에 산다면 남쪽엔 전혀 없다. 그 말인 즉 무조건 산을 넘어 돌아서 반대편까지 가야 한다는 소리다”고 설명했다.
A씨는 “이렇게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느냐면 100% 그쪽 동네 꼬맹이들과 붙을 수밖에 없다. 왜 우리동네 왔느냐 이러면서 싸운다. 여기에 더해 그쪽 동네 불량배라도 만나면 진짜 답이 없다. 불량배 이야기 하니까 뭐 특별한 줄 아는데 그땐 그런게 흔했다“며 “어떤 동네든 그 동네를 휘어잡는 중고등학생 불량배 무리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공개한 사진에는 당시 해당 사건과 관련한 제보를 받은 전단의 모습이 담겨 있다. 특히 해당 전단에는 숨진 아이들의 두개골 손상 흔적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이에 A씨는 해당 두개골 손상 흔적에 대해 “(당시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어? 버니어캘리퍼스잖아’라고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만약 저 자국이 딱 한 개만 있었다면 난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같은 크기의, 두개골을 직접 뚫지는 못한 데미지가 여러개 한곳에 집중됐다는 건 그 흉기로 아무리 있는 힘껏 세게 때려도 저거 이상으로는 데미지를 못 주는 도구란 소리다. 망치로 힘을 적절하게 균일하게 두개골을 뚫지는 않을 정도로”라며 “자국만 남길 정도로 힘을 조절해서 저렇게 여러개의 같은 자국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냥 마구잡이로 쳐도 저렇게 밖에 나올 수 없는 도구였다. 망치처럼 생겼지만 망치만큼 강하진 않은. 그게 버니어캘리퍼스”라고 주장했다.
A씨는 “그럼 대체 산에 버니어캘리퍼스를 누가 왜 들고 갔을까”라며 “그 지역 고등학생들이다. 물론 중학생도 섞여있었을지도 모른다”며 당시는 선거일이라 공휴일이었고 모든 고등학교엔 문제아들이 늘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그 애들이 당시에 ‘본드’를 하고 놀았다. 지금은 막걸리가 페트병에 담아서 나오지만 당시엔 막걸리병이 말랑말랑 우그러지는 재질의 병이었다. 그걸 이용해 산에서 본드를 분다. 마땅한 장소가 없으니까”라며 “버니어캘리퍼스는 공업이나 기술쪽 고등학교 학생들이 신입생 때 많이 들고 다닌다. 그렇게 산속에서 여럿이 본드를 불고 있다가 올라오는 아이들을 마주친다. 하지만 전원이 다 환각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중에 아이들을 어설프게나마 매장을 했다. 본드에 취한 상태에선 절대로 불가능한 행동”이라며 “즉 같이 있었던 무리들 중에 제정신으로 있었던 애들도 섞여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여러개의 두개골 상처가 난 아이가 도망을 치다 잡혔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가방속에 있던 그 철제 버니어캘리퍼스로 헤드락 건 상태에서 같은 곳만 때린 것”이라며 “애들이 본드 분 거 다 봤고 어른들한테 이르면 어른들은 주변 학교에 항의를 하거나 경찰에 신고를 할거고 이미 머리를 여러대 맞은 아이는 피를 흘렸을 거고 환각상태고 그냥 집단으로 달려들어서 아이들을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끝으로 “네이버 지도로 와룡산 근처 고등학교를 검색해보라. 유일하게 딱 하나의 고등학교만 버니어캘리퍼스를 들고 다닐 만한 학교가 있다. 심지어 해당 학교는 와룡산 바로 밑에 붙어있고 당시에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학교로 걸어갈 때 그 학교 학생들만 산속으로 들어간다는 유머까지 있었다”며 “당시 학적부를 뒤지든지 아니면 당시 아이들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을 만나서 당시 문제아 학생들이 누가 있었는지 파면 100%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당 게시글은 1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된 뒤 3일이 지난 4일 오후 4시 기준 약 120만회가 조회된 뒤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로 공유됐다.
해당 게시글을 접한 누리꾼들은 “처음에는 정신이상자가 쓴 글인 줄 알았는데 상당히 설득력 있다. 저게 망치가 아니란 건 확실히 알겠다”, “일리 있다. 나도 버니어캘리퍼스 취급하는 회사에 근무중인데 방송국에서 취재해주면 좋겠다”, “회사 출근해서 보자마자 버니어로 종이상자 찍어봤는데, 상당히 유사합니다”, “여태 본 주장 중 제일 신빙성 있고 그럴듯 함. 90년대 초로 타임머신 타고 다녀온 거 같은 기분, 사건현장 눈 앞에서 그려지는 느낌” 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일부 누리꾼들은 “나만 저 글쓴이 말하는 거 소름돋냐? 마치 본인이 그 자리에 있었던 거 마냥 다 아는 듯이 말하는 게 정말 기괴함”, “이건 둘 중 하나다. 유력한 사실인데 추리 잘하는 사람이거나 본인이거나”, “이렇게 너무 잘 아는 게 더 수상하다” 등의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