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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전 대표는 9일 페이스북을 통해 “워싱턴DC 길찾기로 반나절을 보냈다. 계획도시여서 주소만 알면 길찾기는 쉽다”며 “제가 다닐 조지워싱턴 대학 엘리어트 국제관계 학교, 이 건물 안에 한국연구소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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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I’ll be back!”, 워싱토니안이 된 ‘이낙연’

6월7일 워싱턴에 도착하여 환영 꽃다발을 받고 있는 이낙연 전 대표. 이날 공항에는 10여 명의 지지자들이 나와 환영했다.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 7일, “I’ll be back!”이라는 터미네이터 2 명대사를 연상시키는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워싱턴에 왔다.

조지워싱턴대학(GW)의 한국학연구소에서 연구와 만학 생활을 하게 되어 이래저래 앞으로 1년간 워싱토니안으로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사실 미국의 수도에 사는 워싱턴 동포들에게 한국 거물급 정치인들과의 공동체 생활이 그리 낯설지는 않다.

대표적 정치인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 대통령은 1972년 박정희 정권이 유신 선포로 탄압을 가하자 워싱턴에서 둥지를 틀고 반정부 투쟁을 벌였고, 10년 후인 1982년 다시 망명길에 올라 근 3년 동안 위싱토니안이 됐었다. 그 당시 한국 식당에서 동포들과 자주 어울리는 김 대통령 부부의 모습을 워싱턴 동포들은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이렇듯 한국 정치인들이 정치적 고비 때마다 미국행을 택하며 ‘와신상담’ 재기를 모색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1999년에는 이른바 ‘워싱턴 낙동강 3인방’이라 불린 이명박 전 대통령과 홍준표 현 대구시장, 여기에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까지 이들은 1년간 워싱턴에서 동고동락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장로답게 동포들과 ‘조찬기도회’를 자주 열었고, 홍준표 시장은 미주체전에도 함께 하는 등 동포사회와 돈독한 관계를 가졌다. 이들 낙동강 3인방의 워싱턴 생활이 어떠한 정치적 촉매제 역할을 하여 재기에 성공했는 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최근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였던 김부겸 전 총리도 2013년 존스합킨스대 국제관계 대학원 유학 시절에 워싱턴 동포들과 왕성한 교제를 나누었다.

워싱턴에서 잠시 호흡을 고른 그는 2016년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도전한 수성구 갑에서 62.3% 득표율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대구에서 민주당계 후보가 당선된 것은 신도환 국회의원 이후 31년 만이다.

김 총리의 워싱턴 시절에 가진 인연으로 인해 국무총리 직 임기 이틀을 남겨놓고 단독 인터뷰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그것도 이사 준비에 바쁜 총리공관에서. <“퇴임 후, 고아원 복지 사회사업에 관심 갖겠다”… ‘총리 퇴임‘ 김부겸 정계도 은퇴 2022.5.07 기사참조>

워싱턴은 세계 정치 1번지답게 미국 주요 정치인들과 교류를 넓히고 남북관계나 국제정치에 대한 공부 하기에 안성마춤인 곳이다.

이낙연 전 총리의 유학 계획은 지난해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뒤부터 세워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분간 여의도를 떠나 정치 재기를 모색하기 위한 결정이란 것은 7일 인천공항 출국길에서 “강물이 직진하지 않지만 먼 방향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휘어지고 굽이쳐도 바다로 가는 길을 스스로 찾고 끝내 바다에 이른다”고 밝힌 말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런 그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밀물이 언제 될지 모르겠다. 1년 가지고 밀물이 올까 싶다”면서 “막상 물 들어올 때 배 저을 시기가 올지도 의문이다”는 부정적인 말도 나오고 있다.

대선과 지선에서 연달아 연패하면서 내홍에 휩싸인 당을 뒤로하고 미국에 온 이낙연 전 대표.

자신의 조기 등판론에 대해 “조기가 도마에 올라가는 일은 아마 없을 것 같다”고 짧게 일축한 그이기에 앞으로 1년간은 워싱토니안으로 함께 사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1년 후, 과연 힘차게 배 젓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될지, 앞으로 미주동포들과 어떤 교류를 나누면서 지낼지 궁금하다. 그리고 한동네 살면서 몸에서 시골 냄새가 물씬 나는 소탈한 그와 골프 한 라운딩 할 기회가 올지 기대되는 목요일 오전이다.

하이유에스코리아 강남중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