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바스 최남단 동남부 회랑 요충지…개전 이래 집중 공격 받다 5월 중순 함락
“2월 24일 이후 우리 강아지 2마리가 죽었다. 🙁 그리고 우리 할머니 갈랴도 🙁 그리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도시 마리우폴도.”
82일간의 항전 끝에 지난달 16일 러시아에 함락된 우크라이나 ‘최악의 전장’ 마리우폴판 ‘안네의 일기’가 공개돼 세계의 공분을 사고 있다.
8살 소년 예고르 크라우초우가 집과 지하 방공호 등에서 글과 그림으로 남몰래 써내려간 일기장에는 피비린내 나는 참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10일(현지시간) AFP 통신은 예고르 가족과의 인터뷰를 담아 ‘예고르의 일기’를 소개했다.
“4월 26일. 잘 자고 일어나 웃었다. 그리고 책을 25쪽이나 읽었다.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
“등을 다치고 살이 까졌다. 누나는 머리가 깨졌다. 엄마는 손 근육이 찢기고 다리에 구멍이 났다.”
예고르와 누나, 엄마가 심하게 다친 이날은 예고르의 집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집 천장이 무너져 내린 날이다.
무장한 사람들, 탱크, 헬리콥터, 폭발하는 건물들. 끔찍한 그 날 그림으로 담아낸 페이지에는 집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이 생생하다.
“너무 시끄러워서 깜짝 놀랐다.”
가족들이 서로 붕대를 감고 물을 찾으러가는 그림.
“너무 떠나고 싶다.”
예고르의 집은 마리우폴 최후의 항전지 아조우스탈 제철소 근처였다. 100km를 이동해 자포리자로 피신 오기까지 얼마나 지독한 공포에 떨었을지 짐작가는 대목이다.
싱글맘으로 홀로 예고르와 누나를 키운 엄마 올레나 크라우초아는 처음 일기를 발견했을 때 울음을 터뜨렸다고 AFP에 말했다.
가족들에게 일기를 보여주자, 모두가 울었다고 한다.
예고르는 어쩌다 일기를 쓰게 됐을까.
올레나는 “아마 감정들을 모두 마음 속에 담아둘 수 없어 스스로 표출해야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나 베로니카(15)는 아직도 머리에 입은 상처가 깊게 남아있다. 베로니카는 “이 일기장이 미래에 누군가에게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예고르의 일기는 사진작가인 삼촌 예브게니 소스노우스키가 사진으로 찍어 온라인상에 게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예고르의 가족은 자포리자 피란민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며칠 뒤 수도 키이우로 올라갈 계획이다.
어머니 올레나는 “예고르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기가 겪은 일을 말하길 꺼린다”고 설명했다.
예고르는 그저 ‘앞으로 계속 글을 쓰고 싶느냐’는 질문에 “아마도요”라고만 답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마리우폴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도네츠크주 최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돈바스 내전 지대와 2014년 러시아에 병합된 남부 크름반도를 잇는 요충지란 점에서 2월 24일 개전 초기부터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을 받아 도시가 초토화됐다.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목숨을 건 항전을 이어오던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민병대 아조우연대 전사들은 지난 5월 16일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의 철군 명령에 따라 항복했다.
그리고 마리우폴 함락 이후에도 우크라이나군은 이날(현지 10일) 기준 107일째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최서윤 기자 sabi@news1.kr (기사제공 = 하이유에스코리아 제휴사,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