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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교단상 컬럼 10회 [중국 기독교상황과 전망]

중국선교단상 컬럼 10회 (중국 기독교상황과 전망)

이민우 선교사

1940년대 전에는 중국 남부 지역인 홍콩(영국 100년 조차지) 마카오(포르투칼 조차지) 광주등과 중부지역의 독일 조차지였던 청도와 내륙 산동성 수도 제남( 济南)시 북부지역의 흑룡강성 , 재중교포가 많은 길림성 그중에서도 용정, 요녕성의 심양등. 특히 심양지역은 초기 한국인 보부상들의 활동무대였는데 그들의 도움을 받아 처음 한글 성경 번역본이 ( 신약 누가복음등 )시작된 지역이다.
조차지 (租借地)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에서 조차한 토지. 영토권은 잔존하지만 통치권은 조차국에 속함)
역시 그들을 통해 성경운반 보급이 이뤄졌고 성경운반책(권서인: 劝书人) 같은 업무를 병행했던 것이다.
그곳에서 신약 일부 한글 성경이 번역된 후 신의주 국경을 통해 무역상들을 활용해 조선에 반입이 되기 시작한것이다.
당시 금서였던 성경반입이 밀무역상을 통해 이루어졌고 때론 압수당해 강에 버려지거나 소각당하는 일이 적잖게 발생한 기록이 남아있다. 그래서 어떤 선교사나 운반책인 성도 보부상들이 강물에 버려진 강물이라도 마시면 복음이 마셔지는 것이라는 영적인 적극성과 열의로 임했던 것을 알수 있다. 요녕성 심양 (옛 봉천)그곳에서 한글성경이 번역되고 믿게 된 한국인 거주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인후 서상륜은 한국 으로 귀국해1884년 4월5일 부활절 주일에 초기교회로 황해도 소래 지역에 초기 교회가 세워진것은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내한하기 전이었다. 한국에서는 이 동북3성을 만주라고도 불러왔다. 그리고 서부 내륙인 운남성은 태국 라오스 베트남의 국경 접경지와 인도와 네팔의 접경지 근처에서 복음이 진입되기 시작했다.
중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가 30여개나 되어 많은 변경 수비경비가 필요한 나라이다.
자연스럽게 복음이 진입되던 루트인 것이다.
지식층이 많았고 기독교식 교육이념으로 시작된 구제병원과 대학등 고등교육기관이 제일 많았던 상해에는 젊은 기독교인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중국 전국 복음대회등이 상해에서 주로 개최되어 조선에서도 한국화교교회 지도자였던 차도심장로와 데밍 선교사가 함께 참석한 가록자료와 사진이 남아있다
그러다가 공산화 되면서 기독교는 자연스럽게 지하 가정교회로 변모되어 숨겨진 교회가 된 것이다.
그후 키신저가 핑퐁외교로 중미 국교가 재개되고 전시홍보용 교회가 대도시인 상해와 북경등에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학교육 기관이 너무 부족해 전반적으로 이단이 득실거려 JMS 같은 한국의 이단이 중국대학가에 잠입해 피해자가 속출하자 중국에서는 화륜공과 함께 단속구속의 대상이 되었다. 중국 자생 이단도 대표적인 동방산덴(东方闪电)이 5년전에 중국 맥도널드에서 불미한 어처구니없는 사건등이 발생했다.
운남성 고산지대 유럽서방선교사가 1920 ,30년대 건립한 산지 교회

가정교회의 공통적인 문제가 성경적 가치관의 가정사역이 부족하여 교회내에서도 불륜등 가정불화가 빈번하고 음악사역이 특히 부족한 상황이다.
가정교회에서 사용되는 필사본 찬양집은 5선지가 아닌 숫자표시(1 -5)로 되어있어 한국인들이나 외국인들에게는 좀 생소하여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중국의 도시중심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점차 농어촌과 산악지대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문화대혁명의 핍박을 거치고 등소평이 개방정책으로 풀리자 기독교도 급속하게 기복신앙의 병폐를 업고 성장해 나갔다.
적잖은 기독실업인들이 생겼고 중국이 선교대상국에서 성장해 점차 선교사를 전혀 서방교회 경제적 도움 없이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하였다. 2000년초 기독교가 부흥한 한국 신학교에 진학한 재중교포와 중국학생이 늘기 시작해 자체 수련회를 할 정도였다.
상술 재태크에 능한 절강성 온주(温州)는 중국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며 부흥하다가 시 习주석이 집권하면서 많은 교회가 대응을 제대로 못해 교회문을 닫고 집회가 중지된 상황이다
많은 지역교회가 폐쇄당했고 코비드로 패쇄이유를 넘기는 허위와 단속이 비일비재하다.
시진핑정권이 바뀌면 다시 북경의 봄이 오리라 전망되지만 단순한 낙관론도 어렵다.
경재개방과 성장 바람울 타고 양적으로 부흥한 기복신앙에서 탈피하지 않는 한 개독교의 전철을 밟을수도 있다.
체계적인 신학교육과 주일학교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기 전에 이단이 득실거리고 신규이단리 창궐하는 이유가 바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신학교( 36개 성중에 각 성에 오직 1곳의 신학교만 허용되어 있었음)로 인해 체계적인 신학 신앙교육이 갖춰져야하는 문제를 안고있다.

남경시 汉中堂教会 1936年建堂

가정교회지도자들의 성적인 타락과 도덕관이 혼란도 문제점 중의 하나이다.
때론 조선족 통역을 통한 단신 남성선교사와의 불륜으로 선교지를 이탈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그래서 선교지 주거환경이나 조건이 안 좋다고 남성 선교사 혼자 만 사역하는 데에 위험성이 내재한다.
다음 회에는 중국내 교포교회를 다룰 예정입니다.
기도해주시고 문의사항은 Morrisonlee@hotmail.com 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ric Liddell Scotland 출신 선교사 가정의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생을 마감한 단거리 경주선수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400미터 단거리 금상을 획득하고 세계신기록( 당시 47.6초)을 세운 후 천진 신학서원에서 자연과학과 종교.체육학등을 교수하다 일본 침략하에 중국에 남았다가 중국인들과 집체 수용소에서 고된 생활을 견디며 중국인들에게 강인한 인내력을 보이며 모범을 보이다가 내출혈로 수용소에서 43세에 사망. 몇개월후 일본 패망. 감동의 실화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