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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교단상 컬럼14회 [한국 내 중국인 화교교회 역사]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하심은 정말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다.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清商民水陆贸易章程)을 맺은 후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에 입국 체류하기 시작한 화교들이 중국산동지역의 가뭄과 일본 침략과 국공합작(国共合作)등 내전으로 확산되자 산동성에서 배편으로 인천 등으로 밀입국하거나 상거래 목적으로 입국 후 눌러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점차 늘어나 그들 나름대로의 사회를 이루어 왔다.
산동성 뿐만이 아니라 멀리 닝보 상해 등지의 면직물 무역상들과 더 멀리는 광동성으로 부터 배편으로 한약재 등을 무역하는 상인들도 점차 늘어 났다.
산동성 출신 화교들은 본래 농업에 능해 한국에서 농사 배추 부추 배 사과 등 대양한 농산물을 재배해 초기 농산물 유통업까지 시작했다. 기후와 날씨가 산동성과 유사하기에 한국에서 농업에 안착하기에 적합했다.

그리고 벽돌공들과 석공들이 대형 종교 건물인 성당 교회 학교 등을 지은 기록 등이 많이 남아 있다.
일본 동경대학에서 건축학 박사과정에 있던 한국유학생 정(郑 **)박사 후보생이 한국 근대건축사를 연구하던 중 서울 화교 교회로 찾아와 필자와 면담 요청을 해온 이유는 2002년 8월에 발간한 화교교회 90년사 교회 역사 특간물을 보고 자세한 정보 요청 건 이었다.

당시 한국 대형 건물로 꼽히던 이화학당, 명동성당 등 전국의 건축 공사를 맡았던 건설회사 사장이 바로 서울 화교교회 집사 왕공온( 王 公 温)이였고 그의 업체 광고가 당시 기독 공보에 실려 있었고 그 사진을 필자가 90년사 특간호에 옮겨 게재한 것을 보고 그 출처를 찾아 온 것이다.

인천지역에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면서 서양식 양복점을 경영하는 화교점포들도 늘었고 그 중에 중국 중남방 에서 이주해 온 양복점 기술자 잉(应)은 KOREA MISSION FIELD 라는 외국 선교사들의 사역 보고 책자안에 언급이 된 인물로 인천 화교 교회에 출석하던 교인이고 그 딸이 서울화교교회에서 신앙의 전승을 받은 잉요려(应耀丽 )명동 화교 소학교 교사였다.

서울 화교 교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차도심(车道心)장로인데 고향에서 미 북장로교 선교사 Hunter Corbett)가 개척한 교회출신의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부친이 박해를 받자 모친이 외삼촌이 거주하는 한국으로 피신 시켜 한국으로 와서 동안당이라는 한약점을 운영하며 당시 한국 최초의 장로회 새문안 교회 에서 중국복장 기포(旗袍)를 입고 예배드리는 모습을 본 미국 선교사 Mrs Charles Deming 여사 눈에 띠여 교제를 가진 과정에서 당시 한국어에 서툰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중국인 교회 개척의 중요성에 마음의 일치를 가져 함께 기도하며 당시 YMCA 를 빌려 중국어 예배를 시작하고 점차 남편 Charles Deming 이 사역하던 최초의 정동제일 감리교회의 협력 하에 장소는 가까이 소재한 피어선 신학교등을 이용하다가 자체 건물을 구입해 건축을 시작 당시 화교들 밀집 거주지였던 서소문에 교회가 시작되었고 차도심 장로가 첫 설교를 감동과 기쁨 중에 드리게 된 기록 등이 나와 있다.

차도심 장로는 첫 순교자 영국선교사 토마스의 참변 과정을 조사하러 중국에서 입국한 선교사와 토마스 선교사를 참수한 박춘수 집행관이 후에 회개한 후 그 조사 일정에 동행하며 협력 할 때 중국어 통역을 맡기도 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차 장로는 데밍 선교사와 상해에서 개최되었던 중국 복음 대회에도 한국대표로 참가했던 사진이 남아 있다.

데밍 여사는 서울 연희동 외국인 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차 장로는 후에 고향으로 귀국하여 교회를 개척 재건하고 지금도 그 후손들이 교회를 지키며 섬기고 있다.

데밍 선교사는 이북 지역인 평양 원산 운산 등지에도 교회를 개척하였고 한국 화교 교회 설립의 어머니 역할을 하고 은퇴 후 미국으로 귀국, 소천 후 뉴욕 리버 사이드 교회에서 고별예배를 드리고 펜실바니아에 안장되어 있다. (2016년에 뉴저지 Drew 신학교 내 감리교 역사연구소에서 매장지를 확인함) 필자가 그 후손을 찾으려 노력해보았으나 아직도 연락이 안된 상태이다.

차 장로는 그 후 목사로 교회에서 섬기다가 한국에서 결혼한 한국인 부인과 합장된 묘지가 확인되었다. 그 후손들의 사진도 입수되었다.
그 작업과정에서 수고한 산동성에서 중국근로자로 왔다가 화교 교회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여 헌신하고 훈련을 받고 귀국하여 사역을 하고 있는 동가회(懂家会) 형제의 도움으로 귀한 자료를 입수하게 된 점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100주년 특별호에 게재가 될 줄 알았는데 누락이 된 점에 다소 실망스러웠다. 어렵게 발굴한 신앙선조의 자료를 다시 잘 보관 활용하는 것이 후손들의 임무요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천화교교회 헐 때 교회 초석밑에서 발견된 종이 복사본 당시 교회 지도자 명단

다음 15회 는 세계 중국인 복음대회cccowe.org 를 내용으로 하며 많은 관심과 기대와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의는 morrisonlee@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