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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교단상 컬럼 15회] 세계 중국인 복음대회 cccowe.org

이민우 선교사

1974년 빌리 그래함의 주도하에 스위스 로잔 에서 열렸고 1988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던 현대 복음주의 운동의 산실로 오늘날 선교신학과 선교전략이 모두 배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로잔대회 이후 불과 2년 후 세계중국인 기독교들은 1976년 드디어 로잔대회에 즉각 반응하여 제1회 세계적인 중국인 복음대회를 홍콩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각가지 은사를 동원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전승한다는 사명아래 그리스도의 대사명의 부르심에 반응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같은 비젼과 대사명의 격려아래 세계 중국인 교회의 부흥의 불을 지피고 중국인 교회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대회가 시작된 것이다.

손을 맞잡고 미래를 향해 함께 걸어가며 주님의 은혜로 맡겨진 사명을 다하며 차세대와의 연계하며 엎드려 경배하고 잘 준비하여 쓰임 받도록 하자는 대회 선언이 있었다.「華福」在主的恩待與憐憫之中,在同一異象與大使命的激勵下,挑旺了華人教會的復興之火,豎立了華人教會史上一個嶄新的里程碑。攜手走前面未完的路,靠著主的恩典,完成主給我們的託付。華裔華人跨代結連,俯伏敬拜,整裝待發。

대회를 통해 세계에 퍼져 있는 중국인 기독교인들이 네트워크가 구성되어 각 나라 중국인 교회 주소록과 각 지역 사역 소식지가 계간으로 출간되다가 지금은 온라인으로도 검색이 가능하다.

필자는 1991년 7월 제4회 때부터 1996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1년전에 제5회 홍콩대회에 참가했다. 1회가 홍콩에서 개최되었는데 20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개최된 데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마닐라 대회 때는 마침 마닐라 북부지역 화산 폭발로 대회 개최가 불확실했었고 마닐라 지역 하늘이 화산재로 온통 회색 빛을 드리웠다.
대회기간 내내 대회진행이 화산폭발로 인해 방해 받지 않도록 전체 회중 기도가 몇 번 이고 있었다.

세계적인 복음대회 참가는 처음이었던 필자의 경험으로 표준중국어(만다린)과 영어가 공식 언어였고 영어를 상용화하는 나라에서 온 사역자 들의 동시통역은 정말 놀라웠다.
예를 들어 두 가지 언어가 능숙한 강사가 실수로 영어로 해야 할 순서에 중국어로 해도 즉시 그 중국어를 영어로 통역을 해내는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동시통역의 진수를 보는 듯 했다.


꽤 많은 한국인 선교사들이 참가해서 만났고 그 중 중국어문 선교회 창설 멤버였던 서울대중문과 출신 이요한 목사도 그때 만났고 마카오에서 성경학원을 운영하는 부부선교사도 만났고 필리핀에서 중국인 사역을 하는 청년 선교사도 만났다.

최연소 참가자가 된 필자의 딸이 만 7개월 때였고 직장 여름휴가를 내서 참가를 했던 것이 필자에게는 아주 큰 도전이 되었고 세계 중국인 기독교인들과의 첫 만남이 되었다. 딸이 영아용 침대제공이 안되어 한밤에 침대에서 자다가 굴러 떨어지는 사고와 호텔 방에 쥐가 출현해 법석을 떨었었다.

그때 한국지역 대표로 부산 인천 영등포 군산 대구에서 총 약 40명 정도가 참석했다.
50년대에 연세대학 의대를 졸업하고 강동 성모병원장을 역임했고 중국 사천성 성도에 병원건립 책임자로 대륙복지회에서 파송된 의료선교사 曲椒绪 선교사 3대 가족 딸과 역시 의사였던 사위와 외손자 손녀(당시 초등학교학생)까지 같이 참석을 했다. 필자의 딸을 돌보며 벗이 되어주어 반가웠다.

대회가 끝나고 마닐라 인근의 여러 중국인 교회로 나뉘어 주일 예배가 드려졌고 쓰레기 산 방문으로 비참한 아이들의 생활상을 보고 놀랐고 마주 보이는 곳에 중국인 묘지가 있는데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다는 고급묘지를 본 따서 조성한 묘지 공원이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정부패의 결과로 한국전쟁 때 파병으로 지원해주었던 필리핀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동하는 차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살아있는 극빈층 아이들에 대조적인 호화 묘지공원에는 묘지지기까지 두고 죽은 사람이 살아있을 때 누리던 생활 그대로 냉장고에 TV에 청소원이 매일 청소까지 해 준다니 기가 찼다. 쓰레기 속에서 먹을 것을 찾는 아이들과 넝마같이 생긴 옷들이 그들이 세탁해 걸어 말리고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아시아 부국이었던 필리핀이 믿어지지 않았고 호화묘지 공원에는 생전 그대로 생활을 유지하는 너무나 대조적인 환경을 보며 측은함과 이해할 수 없는 분노 감은 만감이 교차하는 데 충분했다.

근처에는 중국인들의 종합병원도 있었고 기독교인 의사들이 많아 도움을 받기에 좋았다.
필리핀은 화교인구가 겨우 8%내외로 통계에 나와있지만 경제권은 화교 특유의 조직력과 단결력으로 협동조합을 통해 쥐어 잡게 되어 웬만한 기업은 거의 화교재벌이고 점차 정치까지 세력을 넓혀 적잖은 정치가도 배출됐고 사실 마르코스 도 화교혈통을 지녔고 그로 인해 친 화교 정책으로 화교 커뮤니티가 성장하는데 도움이 많았다.

대회 공식 일정은 아니었지만 필리핀과 마닐라를 이해하는 관광코스 배정은 선택 옵션 사항으로 선교대상국으로서 한 나라를 이해하는데 좋은 기획 같았다.

내용 문의사항은 morrisonlee@hotmail.com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