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체류 2달여만…”준비없이 달리고 즉흥적으로 하다간 낭패” “중요한 대외정책 국내정치 제물로 만들지 말아야…당장은 통일 안돼”
야권의 유력 인사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22일 대북 정책과 관련해 “집권 세력 또는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분들이 준비가 갖춰져야 된다”고 말했다.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워싱턴에 머물고 있는 이 전 총리는 이날 오후 애틀랜타 더 1818클럽에서 애틀랜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초청으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관련국의 과제’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준비 없이 달리고 즉흥적으로 하다간 낭패를 본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 전 총리가 미국에서 공개 강연에 나선 것은 지난 6월 워싱턴DC에 도착한 이후 2달여만에 처음이다.
이 전 총리는 “특히 대북정책이 왔다 갔다 하면 ‘잘해준다고 믿지 말자’ 등 북한한테 학습효과를 줄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빌 클린턴 및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게 자신의 대북 정책을 설득했던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런 분(DJ)이 자주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그런 준비가 돼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한국에 대한 저의 바람이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의 언급은 최근 ‘담대한 구상’이라는 북한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한 윤 대통령의 대북 정책 추진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것으로 읽힌다.
그는 또 “(대북정책에 있어)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큰 골간을 한번 대합의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협상을 해도 일관성이 있을 것 아니냐”며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금 30대라 최소한 40년 집권을 할 생각을 갖고 계획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한국은 5년마다 (대통령이) 바뀌니 ‘누구를 상대로 해야 되는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대골간과 대전략, 특히 북한에 대한 기본적 정책은 좀 세워놓는 게 어떤가 싶다. 정권이 바뀌어 대북 정책이 너무 왔다갔다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일관된 대북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에 신뢰를 주기 위한 구상’을 묻는 질문에 “정책의 일관성이 기본”이라며 “(정책이) 왔다갔다 하면 그 누구도 못 믿는다. 독일은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당이 달랐던) 헬무트 콜도 그대로 견지하니 통일까지 됐다. 그렇게 당이 다르더라도 중요한 대외정책은 그대로 갖고 가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 전 총리는 이어 “기본적으로 북한의 문법이 우리와 다르다. 그래서 신뢰를 가지려면 결국 대화를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노딜 당시 사전에 ‘스몰딜’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참모에게 ‘스몰딜하고 나오는 것과 그냥 걸어나오는 것 중에 어느 게 뉴스가 더 크냐’고 물었다고 알려진 것을 거론, “중요한 대외정책을 국내 정치의 제물로 만든 것은 대단히 아쉽다. 우리도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 전 총리는 북한에 대해선 “핵을 가진 빈곤을 선택할 것인가, 핵을 멈추고 이제 개방과 발전으로 나갈 것인가 지금쯤은 선택해야 된다”면서 “꼬장 부리지 말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을 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핵실험 등 벼랑끝 전술로 대응하는 데 대해선 “대화를 해야 될 상대를 기분나쁘게 해놓고 관심을 끌어서 지렛대를 확보하면 뭐하느냐. 그 지렛대를 어디다 쓰겠느냐”며 “관심을 끈다고 신뢰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만 점점 더 호전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이 전 총리는 미국을 향해 “보고 싶은 대로 상대를 봐선 제대로 안 보인다”면서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고, ‘북한 붕괴론’, ‘경제 제재 만능론’과 같은 것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속적인 제재와 압박이 어떤 결과를 갖고 왔는지 냉정하게 봤으면 좋겠다. (북한을) 제재하고 압박하니 (북한이) 고립·폐쇄돼 점점 더 이상한 일을 하고 핵개발에 더 몰두하는 게 아니냐. 그리고 중국한테 더 의지한다”면서 “지금 핵 문제가 전부 교착상태인데, 그러면 방법을 바꿔서 다른 것을 못하게 고립을 풀어주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수교를 통한 북미관계의 정상화 등을 거론한 뒤 “가치 중심의 대외 정책을 실용주의적으로 바꿨으면 좋겠다. 미국은 (과거부터) 쭉 그렇게 해 왔고, 그때마다 성공했다”며 “한반도에도 실용주의 노선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 종전선언에 매달리다 성공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북미 간의 수교 초점을 맞췄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엔 “종전선언과 (북미) 수교가 양자택일의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전쟁 상태가 지속돼야 핵을 없애겠느냐, 아니면 전쟁 상태가 끝났다고 해야 핵을 없애겠느냐. 저는 후자가 맞다고 생각한다. 종전에 합의한다는 것은 정치적 합의니 그러면 수교도 훨씬 더 수월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 전 총리는 남북 통일과 관련해 통일에 부정적인 여론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소개한 뒤 “당장은 통일이 안 된다. 그리고 평화가 있어야 한다”며 “당장은 ‘통일, 통일’ 하는 것보단 평화에 중점을 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옳을 수 있겠다. 너무 통일을 앞세워 북한에게 ‘흡수통일 하려는 게 아니냐’는 피해의식을 자극하거나 그런 것보단 그렇게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원래 하나였던 것은 다시 하나가 돼야 한다”는 브란트 전 서독 총리의 발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워싱턴=뉴스1) 김현 특파원 gayunlove@news1.kr (기사제공 = 하이유에스코리아 제휴사,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