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유에스코리아뉴스
북경신학원
Featured 교회소식

중국선교단상 칼럼 17회 [중국 신학교와 애국 삼자교회 역사]

중국선교단상 칼럼 17회 [중국 신학교와 애국 삼자교회 역사]

이민우 선교사

중국이 공산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한 1949년 10월 이후부터 공식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헌법 운운 하지만 무신론 유물론에 근거했던 공산주의 국가에서의 기독교와 기타 종교는 거의 다 허울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세한 중국 기독교 종교 국 조직인 애국삼자 협회의 역사 등은 www.chinatogod.com 이나 위키 피아에서 ” 애국 삼자 운동”로 검색하여 참고해 보시기 권합니다.
특히 삼자 애국 운동이 기독교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여 공산사회주의 중국의 초기 정착을 위한 정치 수단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도미 이전인 2005년도에 남산 타워호텔에서 진행되었던 한중 기독교 정기 교류회의(매년 교대로 양국에서 개최)에서 주빈 석 통역을 맡아 중국 종교 국 간부들, 신학교 원장 및 교수들, 사회과학원 연구원 들, 목회자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차기 한기총 회장으로 내정된 금호동 대형교회 성결교 목사님이 주빈석에 동석하였는데 엉뚱한 발언을 하여 통역하는데 애로가 있었다.

그때에는 중국이 지금처럼 경제부흥을 이루지 못한 터라 그 한국 한기총 차기회장 목사가 중국도 기독교를 믿고 한국같이 경제부흥을 이룰 수 있다고 발언하자
중국측 종교 국 간부가 ” 그럼 일본이 기독교를 믿어 그렇게 경제부흥을 이뤄냈냐는 질문에 대답이 궁색 해져 버렸다.
기복신앙 배경으로 급성장한 한국 기독교 역사의 한 부분을 잘 알고 있던 그가 정곡을 찔러버린 것이다.

중국을 흔히 선교대상국으로만 아는 선교에 대해 잘 모르는 한국 목회자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이다.
중국은 인구 16억을 바라보는 인구 대국이다.
어느 특정 지역에서 중국 선교 좀 했다고 거들먹거렸다 가는 큰 코 다칠 일만 남는다. 손바닥으로 해 가리는 식이다.

그냥 모르면 겸손하게 질문하면 될 것을 한 자리한다고 엉뚱한 발언을 하면 곤경에 빠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때 2005년때 받은 중국측 자료에서 몇 가지 내용을 요약해 보면 중국의 36개 성 행정구역 마다 겨우 1개소의 신학교가 있을 뿐이었고 그것도 종교국이 관리하에 두고 삼자애국 교회들도 이 조직 하에 관리를 한다.

거의 헌금 없이 교회 입구에 헌금통이 놓여 있을 뿐 헌금함을 예배 중에 돌리는 경우는 드물고 교회 봉사자 목회자 직원 등 모두 종교국에서 봉급을 받는다.
그리고 감리교 조직 같이 일정 년도가 지나면 거의가 사역지를 변경해 발령을 낸다.

어느 정도는 설교 내용 검열도 있고 관리 감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전도와 선교를 강조하는 복음적 설교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중국 동북 지역목회지도자 수련회

북경 상해 광주 홍콩 등 대도시의 지식층 기독교인들은 농촌과 산지 어촌 등에 전도를 나가 몇 년씩 보내는 젊은 기독교인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중국 기독교의 잠재력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해외 선교사들과 연계도 되어 있었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자립적인 경제력으로 유지해왔다.

빈약한 신학 교육체제로 가정교회들의 결혼 문제 상담 등에 취약하고 음악 사역 등 부족한 가운데서도 초등학교 학력의 여성 음악 헌신자의 찬양곡은 중국 전국에 애창되는 노래이다.

그 중에서 小敏(소민)의 작사 작곡한 찬양집은 전 세계 중국인들의 영혼을 감동시켜 왔고 한국에도 방한 한적이 있는 걸로 안다. YouTube에서 小敏迦南诗选(소민가남시선)을 검색하면 많이 나오며 중국 찬양을 들어 볼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신 영혼의 공통 언어인 찬양에는 각 나라마다의 깊은 문화 뿌리가 내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동북 지역목회지도자 수련회 사진과 최고의 신학교 남경 금릉 신학교 입구 사진 등을 첨부합니다.

다음 18호에는 중국가정교회 역할을 다룹니다.

기도해주시고 기대해 주세요

문의는 morrisonlee@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