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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여 간 이어진 일본 최초 한인교회 갈등 해결될 듯

동경고등법원도 동경지방법원과 같은 판결··· “김해규 목사 자격 없다”

2013년부터 이어진 동경교회의 분열과 갈등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본지가 2016년 2월5일자 기사로 보도한(http://www.worldkorean.net/news/articleView.html?idxno=20766) 재일대한기독교회 동경교회의 분란 사건에 대해 동경지방법원에 이어 고등법원에서도 목사의 지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최종 판결이 지난 2월20일 나왔다.

동경교회는 110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 최초의 한인 교회다.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을 외친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동경교회는 일본 전국에 100여개나 되는 한인교회를 개척해 일본에서 한국기독교회의 리더 역할을 해왔다.

동경교회는 1980년대 재일교포에 대한 지문날인제도의 인권탄압에 굴하지 않고 이에 맞서 투쟁해 지문날인 제도를 폐지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재일한국인들의 권익신장과 이익을 대변했다.

그러나 2010년에 김해규 담임목사가 취임하면서 여러 사건이 발생하게 됐다. 장로선거 부정개표사건이 발생하고 교인들 간에 갈등이 불거지면서 교단 전체가 혼란에 휩싸였다. 사건의 발단은 2010년 김해규 목사가 담임목사로 취임하면서다. 교단이 정해놓은 목사 취임식 일정을 두고 교회와 교단 간에 이견이 생겨 일정을 앞당기려는 김 목사 측과 정해진 일정을 준수하려는 교단 관계자들 간에 대립양상을 보이며 많은 사건이 발생했다.

동경교회를 운영하는 여러 과정에서 김해규 씨는 총회헌법과 규정 및 질서를 무시하고 당회, 제직회, 공동의회를 불법 운영해 문제의 해결은커녕 갈등을 심화시켰다. 이에 문제의 해결을 지방회와 총회(노회)에 위임했고 교단의 재판(치리)에서 결국 김해규씨는 면직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를 부당하게 여긴 김해규씨는 재판결과와 처분에 불복해 교단탈퇴를 시도하는 등 계속해서 불법적이고 독단적으로 교회를 운영했다. 이에 동경교회의 정상화를 꾀하는 교인들이 모여 김해규 씨가 목사 자격이 없다(지위 부존재 확인청구 소송)는 소송을 한 것이다. 다음은 시간대별로 이번 사건을 정리한 것이다.

△2013년 1월20일 김해규 면직목사의 최측근인 장로가 김해규씨의 지시로 부정개표를 했다고 고백

△ 2013년 1월30일 당회 캐비넷에 보관중인 투표용지가 아무도 모르게 담임목사실로 이동됐고 이를 재검표하는 과정에서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집계 결과가 확인됐으며 진상규명 과정에서 투표용지 불법 이동의 의혹은 무시된 채 김해규 면직목사의 일방적인 설명과 동조 교인들의 담합적인 처리로 교인들은 더욱 양분됐다

△ 2013년 4월7일 장로신임투표는 교단의 헌법에서 폐단이 많아 폐지된 조항임에도 이를 불법적으로 강행하여 2명의 장로가 불신임을 받았고 교단의 헌법위원회에서는 장로신임투표는 위헌이라는 유권해석 및 행정지도가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김해규 면직목사는 이를 적법 절차에 의한 것이라며 따르지 않았다.

△ 2014년 2월18일 김해규 면직 목사는 교단의 간섭을 받지 않는 단립교회가 되면 독단운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일부 교인을 선동 회유하여 교단탈퇴를 시도하며 교단과 정면대결로 맞섰다. 결국 2014년 2월18일 관동지방회는 김해규 씨에 대해 목사직 면직판결을 내렸다. 김해규씨는 교단총회에 상고했으나 2015년 7월2일 총회의 재판(치리)에서 최종 면직판결을 받았다.

△ 2018년 7월19일 김해규 면직목사의 불법적인 교회 점거와 운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교단의 분담금을 담보로 총회와 지방회에 압박을 가하고, 교단탈퇴를 시도하는 등 불법운영의 도가 지나치자 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어 동경교회의 정상화를 바라는 교인들이 중심으로 원고가 되어 동경지방재판소에 김해규 면직목사의 ‘지위 부존재 확인’ 소송을 했고 2018년 7월19일에 동경지방재판소는 김해규씨에게 목사직이 존재하지 않다는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 2019년 2월20일 김해규 면직목사는 동경지방법원의 1심 판결에 불복하여 고등법원에 항소했지만 이 또한 항소 기각판결로 목사가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출처 : 월드코리안뉴스(http://www.worldkorean.net)

도쿄 =이학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