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 2019 김재동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서양 속담에 “하늘[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Heaven[God]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는 자를 도와주신다는 뜻입니다. 동양에도 비슷한 내용의 속담이 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극정성을 다하면 하늘이 감복해서 도와주고 은혜를 베풀어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한자숙어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이와 꼭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격언이 서양에도 있습니다. “Do your best, and God will do the rest.” best와 rest가 각운(脚韻)을 이루는 멋진 격언인데, “너의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해주실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소년 시절 일찍이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장차 왕이 될 자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왕이 되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30세가 되었을 때 우선 유다 지파의 왕으로 옹립(擁立)됩니다. 성경에서 30세는 하나님의 공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나이였습니다. 레위인도 30세 되어야 성전 봉사를 시작할 수 있었고, 예수님도 3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공생애를 시작하셨으며, 공교롭게도 요셉은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도 30세에 유다 지파의 왕이 되어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그리고 후에 이스라엘 12지파 전체의 왕이 되어 33년, 도합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다윗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가 두루두루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신명기 17장에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격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는데, 다윗은 그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자였을 뿐만 아니라 군통수권자로서 탁월한 자격을 검증받은 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이 되기 전 그의 삶을 자세히 뜯어보면 정말 위기의 순간들이 수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세밀하신 간섭으로 그를 보호해주셨습니다. 사울의 시샘으로 도피행각을 벌였던 20년 동안 사회에서 환난 당한 자들, 빚진 자들,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다윗의 인격에 감화되어 하나둘씩 그에게로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어언 600명에 달하는 큰 무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이미 탁월한 리더십을 스스로 증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중이떠중이 같은 이 부랑자들이 후에 다윗 왕국의 초석을 다지는 공신들이 되었으며, 특히 충성스러운 군대장관들이 이 중에서 다수 발탁되었으니 정말 하나님의 은밀하고 오묘하신 섭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의 사위라고 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힘도 배경도 없는 다윗을 위해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그의 동지들을 규합해주신 것입니다.
비록 사울이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초대 왕이 되는 영광을 얻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겸손했으나 점차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하나님의 눈 밖에 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진정한 의미의 신정왕국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통해 실현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비록 하나님께서 일찍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그를 왕으로 기름부어 세우셨지만 그가 왕이 되기까지는 장장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을 뿐만 아니라 그 긴 세월이 정말 험난한 가시밭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그 고난의 세월을 통해 하나님의 택하신 나라 이스라엘을 믿음으로 다스릴 성군(聖君) 다윗을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연단시키셨습니다. 그는 골리앗과의 싸움을 통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다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눈엣가시처럼 성가신 존재였던 골리앗을 해치웠다는 낭보를 접한 사울 왕은 매우 흐뭇해하며 그를 군대장관으로 삼았습니다. 시쳇말로 다윗은 어린 나이에 벼락출세를 한 셈입니다. 그러나 기회는 위기라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는 군대장관으로 출정해서 블레셋을 섬멸하는 혁혁한 공을 세운 공로로 백성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사울 왕에게 시샘을 사게 되며 자신의 왕권을 노릴 자로 찍혀 소위 ‘most wanted’ 즉 전국 수배대상 제 1호가 되었으며, 그때부터 쫓기는 신세로 전전하게 됩니다. 사울 왕은 자신의 권좌를 지키기 위해 다윗의 목숨을 사냥하는 일에 혈안이 되었고, 심지어 국경을 넘어서까지 이 잡듯이 그를 수색하며 온갖 술수와 수단을 동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울 왕의 그토록 처절한 노력도 하나님의 계획을 무산시킬 수는 없었으며, 결국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생애를 통해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인간 편에서의 많은 노력이 요구되며, 또 경우에 따라서는 긴 세월의 기다림이 따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다 만들어진 완성품이나 기성품이 아닙니다. 즉 ‘Ready made 품목’이 아니라 ‘Do it yourself(DIY) 품목’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취되기는 하지만 그 성취를 위해 인간 편에서도 최선의 노력이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젠가 목회자 세미나에서 강사님이 하신 말씀이 늘 새록새록 기억이 나곤합니다.
“교회성장은 하나님의 은혜 100%와 인간의 노력 100%로 이루어진다.”
일견 모순되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이것이 사실(fact)임을 자주 경험하곤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신다고 해서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감나무 아래에 누워 감이 내 입 안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올바른 신앙 행태가 아닙니다.
창세기 32장에 보면, 야곱이 얍복강의 기도를 통해 가족의 안전을 지켜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형 에서와의 만남을 앞에 두고 잔머리(?)를 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잔꾀를 부리는 야곱을 믿음 없는 자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으나, 한편 달리 생각해보면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다 할지라도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야곱의 처신은 어떤 면에서는 칭찬받을 일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에스겔 3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켜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시면서,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 편에서는 그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있습니다.
(에스겔 36: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주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지를 다 알고 계시지만, 그래도 우리 편에서는 구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주기도를 가르쳐주셨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약속과 인간의 노력 사이의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늘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