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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화 뉴욕 한인회 수석 부회장 인터뷰 <1>

일곱 명 같은 한 사람 김경화 뉴욕 한인회 수석 부회장 

 뉴욕주가 오는 10월 9일 한글날을 공식 기념일로 제정했다. 이 뜻깊은 일에 큰 공훈자 중 한 사람인 뉴욕한인회 김경화 수석 부회장을 만났다. 전직 5선 교육위원으로서 특히 동포 자녀들의 한글 교육에 열과 성을 쏟아 왔던 그녀는 미주 한국어재단 한국어반 개설 위원장으로 미국 정규 학교에 한국어반이 만들어 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며 한국어 교사양성 사업에도 계속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고 ‘가나다라 수요한국학교’를 처음 개설하기도 했고 버겐카운티 연합한인학부모회장, 뉴욕한인회 교육부문 자문위원, 민주평통 뉴욕지회 교육분과위원장 등도 지낸 자타가 공인하는 뉴욕 뉴저지 교육계의 큰 얼굴이다. 

“많은 분들의 오랜 노력의 결실입니다. 세계의 수도라는 뉴욕시가 소속돼 뉴욕주에서 한글날을 공식 기념일로 제정 했다는 것은 세계가 우리 한글과 한국의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 이지요. 그럴수록 우리가 할 일도 많아졌다고 봅니다.”

 김 부회장과의 만남은 마침 뉴욕한인회 한인회차원에서 의욕적으로 한국어 강좌를 개설 했고  또 11월 2일 교육위원 선거를 앞두고 전직 교육 위원이 걸어 온 길을 되짚어 보는 것도 우리 독자들, 유권자들의 안목을 정비하는 좋은 계기기이기도 하다. 

존 리우 뉴욕주 상원의원이 10월 9일 한글날 기념 결의안을 찰스 윤 회장과 이선근 회장에 전달하고 참석자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왼쪽부터 미주한국어재단 김영덕 이사장, 이선근 회장, 존 리우 의원, 뉴욕한인회 찰스 윤 회장, 김영환 신임 이사장 내정자, 김경화 수석부회장.

 기자가 만난 김경화 수석 부회장은 일곱 명 같은 한 사람이었다. 전직 5선 교육위원, 한인회 수석 부회장, 미주 한국어재단 한국어반 개설위원장, 비영리 단체 대표(함께 하는 교육), 이름도 뜻깊은 세 자녀 민주, 평화, 통일의 엄마,  뉴욕 최고 활동가의 한사람으로 꼽히는  뉴욕 평통 기획 위원장, 재외편협 부회장 김형구의 아내, 그리고 기자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며느리로서의 페르소나 까지 더 한다면 말이다. 나의 경우, 누군가가 1인 다역 이라는 말을 들으면 놀라움과 동시에 숨가쁘기도 하다. 그러나 기자가 그녀와 마주하는 동안 그녀의 일당백 삶의 여정은 숨가쁨이 아닌 진한 삶의 향기로 은은히 다가왔다. 클래식 음악 라디오를 진행하는 배우 김미숙을 연상케하는, 그녀의 차분하지만 부드러운 힘이 느껴지는 음성으로 전해 듣는 1인 7역 그 이상의 스토리들은 요즘 회자되는 ‘소프트 파워’의 모범 답안이 되기에 충분했다. 내유외강도 외유내강도 아닌 ‘외유내유’ 가 바로 그녀를, 그녀가 걸어온 길, 그리고 그녀가 걸어갈 길을 정의하는 말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인 첫 여성 5선 교육 위원이 되다

2회 연속 대뉴욕 한인회 수석 부회장이라는 직책을 맏으며 ‘뉴욕의 어머니’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뉴욕 한인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버선발로 뛰어 다니는 그녀에겐 단순히 ‘한인’을 떠나 모든 어린이들, 학생들을 위해 버선발로 뛰어다녔던 교육위원으로서의 시절을 빼놓을 수 없다. 기자가 교육위원 시절의 그녀의 히스토리를 정리하다 보니 지난 날 그녀는 ‘놀우드의 어머니’라 불리워도 충분했다.

김부회장은 1998년 뉴저지 놀우드에서 교육위원 보궐 선거 당선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13년 동안 놀우드 학군 교육위원으로 5회 연속 당선돼 미국 사회에 한인들의 위상과 자긍심을 높였다. 그 공로로 그는 두차례나 한국 정부로 부터 국민훈장 포장을 받았다.  그간 교육위원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함께하는 교육’이라는 비영리 교육단체의 대표로 올바른 자녀교육을 위한 부모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는 김부회장은 자신에게 언제나 붙어 다니는 한인 최초 5선 교육위원이라는 타이틀에 대해 겸손했다. 자신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으며 그간 아이들을 위해 일 할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했다면서. 

김경화 ‘함께하는 교육’대표에 대한 국민교육발전 유공 국민포장 전수식이 2018년 11월 29일 오후 뉴욕총영사관(총영사 박효성)에서 열렸다.

“Kay, 교육위원 출마해 보는게 어때?”

영어명 Kay Kim, 김경화 부회장이 5선 교육위원으로의 첫 발을 어떻게 내딛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우리 큰 아이가 7학년 때 였어요. 그때 저는 그 학교 한인 학부모회 회장을 맏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학교내 한인 남학생들과 이탈리안 남학생들이 모월 모시 모처에서 맞장을 뜬다는 정보가 학교 어른들에게 접수된거에요, 지금으로 말하면 학폭이죠. 90년대 후반 뉴욕 플러싱에서는 한인 남학생들과 차이니즈 남학생들 사이에 힘겨루기가 한창이었고 아이들은 어깨에 K.P. 즉 코리안파워 라는 타투까지 새겨가면서 일종의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학교 폭력이 발생하던 때였어요. 그 바람이 뉴저지 놀우드에 까지 불어온거죠. 당시 학교의 민첩한 대응으로 일은 방지할 수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게 과제로 남았어요. 그래서 이러한 일들에 대한 원인과 해결방안을 아이들의 생각나눔을 통해 스스로 찾아보게끔 하는 수업을 학교에 제안했고 대부분의 학부모와 교사들이 참관한 가운데 이루어졌어요.

그리고 아이들은 이 수업을 통해 ‘eraser’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학교 내에서의 모든 편견, 차별, 혐오를 지우자 라는 뜻에서 eraser라고 명명 했대요. 이후 아이들은 학교 내 각 ethnic사이에 스스로 교류 프로그램을 만들어 활발한 활동을 했어요. 아이들이 이렇게 모범을 보이는데 어른들이 그냥 있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엄마들 끼리도 미국 엄마들과 서로의 집을 오가며 한식 및 서양요리를 함께 만들고 배우는 등 일상 속에서 실천가능한 작은 문화교류를 제안했고 썩 잘 이루어졌죠. 그러면서 인종과 민족을 넘어 자녀양육에 대한 엄마들의 공통된 고충과 애환도 공감할 수 있었고요. 이때의 엄마들이 훗날 교육위원 재선의 든든한 지원군들이 되어주었어요.” 

마치 학교를 배경으로한 드라마의 해피엔딩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 날의 참관 수업에서는 더욱 극적인 일이 있었단다. 그간 학교는 한인 학부모회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았단다. 학교마다 PTA (Parents Teachers Association) 미팅이 있는데 왜 굳이 한인 학부모회가 따로 있어야 하냐는 것이었다. 언어장벽으로 고생하는 한인 학부모들과 학교와의 원할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김부회장을 중심으로 결성된 한국 학부모회에 대한 세력화를 학교는 염려했다는 것이다.

학교와 한인 학부모회 사이에 그런 오해를 풀어야 하는 것도 김 부회장의 몫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이 매듭이 풀려 모두가 인정하는 한인 학부모회-버겐카운티 연합 한인 학부모회-가 만들어지게 되었단다. 

 “이날 참관수업을 하는데 한 아이가 조심스럽게 손을 드는거에요. 보니 우리 큰 아이 친구였어요. 그 아이는 sk주재원 자녀였느데 평소엔 거의 말이 없는 조용한 아이였어요. 

“우리 엄마는 한국에서 E여대를 졸업했지만 영어를 말하는 것에는 능숙하지 않아요. 그런 우리 엄마와 비슷한 다른 엄마들을 위해 미세스 킴(김부회장)은 학교에서 나눠주는 리마인더를 한국말로 일일이 손글씨로 번역해서 엄마들에게 나눠줘요.

그 학생은 이처럼 김부회장을 직접 거명 했단다.  

 우리가 학교 준비물도 잘 챙기고 숙제도 잘 할 수 있는 것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아줌마가 없었다면 우린 지금처럼 학교를 다니지 못했을거에요 ’ 라는 아이의 말이 그날 좌중의 마음을 터치했던 것 같아요.”

 한인 학부모회를 만들어 부모들이 학교와 더욱 소통하고 참여하게 하려는 김부회장의 진심이 모두에게 닿은 순간이었다. 학교와 학부모 사이를 끊임 없이 오가며 서로에 대한 문화적 오해, 언어의 벽으로 빚어진 오해들을 풀고 개선방안을 제안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그녀의 열성을 당시 놀우드 교육감이었던 닥터 로즈가 처음부터 끝까지 눈여겨 보았고 이 일을 계기로 김부회장에게 마침내 1998년 교육위원 보궐선거 출마를 제안했다.       2편에 계속. (뉴욕 안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