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베테랑스데이 주간, 각 타운의 대형 마트에서부터 인터넷 쇼핑몰에 이르기 까지 국경일 베테랑스데이를 기념하는 딜(deal), 세일이 넘쳐났다. 미국 새내기에 속하는 기자가 이곳 미국의 기념일들을 살펴 보게 된 동기는 좀 우습지만 온 오프라인의 쇼핑 전단을 접하면서였다.
카트 한가득 쇼핑이 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 사람들이라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들은 대체 뭔 세일을 이리도 자주 한단 말인가.
프레지던트 데이 세일, 노동절 세일, 독립기념일 세일, 메모리얼 데이 세일, 콜럼버스데이 세일, 베테랑스 데이 세일 등등…그외에도 작은 세일까지 합하면 일년에 절반이 세일인 이곳에서 샤핑 시즌 마트에 가서 하다못해 스테이크 한 장이라도 굳딜을 하지 않으면 뭔가 좀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은 나만의 것인가.
미친 세일의 주말이 지나고 나면 집 뒤 덤스터에 한가득 쌓여있는 재활용 박스와 플라스틱들이 ‘너만 그런거 아니니 걱정말려무나,’ 라고 내게 말해주는 듯 하다. 이곳에서 사는 동안 쇼핑 전단을 통해 해당 기념일들을 학습하는 동안 내게 가장 깊이 와닿는 기념일은 단연 베테랑스 데이였다. 군 출신인 나의 전직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재향군인의 날인 베테랑스 데이.
영어로 ‘veteran’ 하면 보통 어떤 분야의 아주 노련한 전문가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 분야에서 알아줄 만한 전문가라는 소린데 특히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한 사람들, 특히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베테랑(veteran)이라는 표현에서부터 참전용사에 대한 깊은 존경이 담긴 것 같다. 베테랑스 데이의 역사는 1차 세계대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에 참전했던 용사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이들을 환영하고 노고를 기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 기념일이 만들어진다. 1차 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 끝난 날이 11월 11일이라 처음에는 종전기념일(Armistice Day)로 불리기도 했다. 미국의 28대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듬해인 1919년 11월 11일에 이 날을 기념일로 선포했는데 오전 11시에 2분간, 하던 일을 모두 멈추는 것으로 시작해서 시가행진과 기념식을 갖는 것으로 첫해를 기렸단다.
당시만 해도 1차 세계대전은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이라 불리며 더 이상의 전쟁은 없을 것으로 모두 생각했지만 이후에도 2차대전, 한국 전쟁 등이 벌어져 처음의 종전기념일이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게 됐다.
결국, 한국 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에 미국의 34대 대통령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 날을 ‘Veterans Day’로 이름을 바꾸고, 기리는 대상도 참전용사 뿐 아니라 모든 재향 군인들로 확대하기에 이르게 된다. 연방 공휴일로 제정된 건 1938년.
미국은 재향군인들에 대한 예우나 존경심이 대단하다.
미국 사회 전반에 걸쳐 나라를 위해 싸운 군인들, 또 지금도 싸우고 있는 군인들을 예우하는 정서가 아주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비행기를 타거나 기차를 탈 때 노병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젊은 현역 군인들에게도 먼저 타라고 우선권을 주는 게 미국에서는 당연한 일.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노병들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모습도 종종 보게 된다.
관공서에 가도 업무 처리를 할 때 이들을 1순위로 우대하는 게 보통이고 어쩌다 실수로 교통 딱지를 맞아 코트에 서게 되었을 때, 정복을 차려 입고 휠체어를 타고 온 참전용사 할아버지에게 판사가 깍듯하게 예우하며 벌금을 면제해 준 것은 우리 동네 팰팍 법정에서 내가 직접 본 실례이기도 하다.
미국의 군 복무제는 의무제가 아니라 모병제, 그러니까 자원제이다보니 현역이든 퇴역 군인이든 군인들을 예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지 오래이다.
일상에서의 군인들에 대한 예우라면 놀이동산이나 영화관, 대중교통시설 등을 이용할 때 군인이나 재향군인들에 대한 할인은 기본. 맥도널드나 스타벅스에서 재향 군인증을 보여주면 할인해주는 곳도 많다.
심지어 옷을 살 때, 자동차 구입할 때에도 할인이 적용된다든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사회 곳곳에서 이들을 대우한다.
즉 군인들에 대한 혜택이 제도적으로도 보장돼 있다는건데 이러한 기틀이 마련된 것은 1944년,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때 제정된 이른바 ‘G.I. 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에서 돌아 온 군인들에게 정부 차원에서 이들이 다시 일상의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으로 대학 학비 지원부터 시작해서 연금 제공, 세금 공제 혜택, 주택 융자 혜택, 창업 지원, 의료 혜택 등 아주 다양한 혜택을 포함하고 있다. 주 정부들도 G.I 법 관련 부서를 별도로 만들어놓고 운영하는 곳도 많단다. 게다가 재향군인들에 대한 혜택은 대부분 본인뿐만 아니라 배우자와 그 자녀들에게까지 해당된다.
그들이 받는 혜택들에 대해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이다.
역시 천조국 미국이라는 생각, 나라를 위해 희생 봉사한 그 노고를 국가가 경제적인 서포트로 치하해 준다는 것, 국민들 대부분이 현역과 베테랑들에 대한 그러한 예우를 당연히 여긴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혜택을 받는 베테랑들 또한 전역 이후에도 각계 각층으로 진출해 커뮤니티 안에서 끊임 없이 봉사하며 살아가고자 한다는 것 등등이 내 안의 부러움 세포를 자극한다.
나이만 허락한다면 천조국의 군인으로 재복무 하고픈 마음이 굴뚝 같다.
아… 조금만 더 일찍이 미국에 왔더라면!
내 주변 몇몇 지인들 중엔 미국에서 태어난 그들의 자녀들에게 미군 입대를 권유, 군복무를 훌륭하게 마쳤거나, 현재에도 장교로 복무중인 자녀를 거느린 집들이 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은 너무나 반듯하다.
그 부모들이 단지 미군이 주는 혜택만을 바라보고 자녀들을 입대시켰다 생각하지 않는다.
자녀들을 군입대 시켰을 땐 그들이 이 사회에서 이민 1세대로 자리 잡기 까지 받은 혜택들을 환원한다는 마음이었을 것이고, 자녀들을 좀 더 강하게 양육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그들 중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들들을 한명은 미군에, 다른 한명은 한국 군대에 입대 시킨 부모도 있다. 날이 갈수록 군복무 기간이 줄어들고 군기피 시도는 여전한 한국의 군대로 자녀를 입대시킨 이 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 군대 보내는 아들을 둔 어머니 나이의 한국 군 경험자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국의 현역 군인들과 베테랑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나라가 이들에게 무엇을 해주었을까.
특히 병사로 군복무를 마친 남성들과 군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언저리에는 나라와 상관들에 대한 피해의식 같은 것이 은연 중 느껴져 마음이 짠해지곤 한다.
미국이 그들의 현역과 베테랑들에게 해주는 것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반의 반의 반 만큼 이라도 내 조국 한국이 우리의 군인들에게 대우해 준다면 현역의 사기와 예비역들의 사기 모두 달라지지 않을까.
한국의 한 전직 장성이 미군 장성에게 “미군은 어떻게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됐느냐?”고 물었을 때, 미군 장성은 세가지를 답했다.
군이 미국의 독립에 기여했고, 군 장성 중 불미스런 일로 스캔들을 일으킨 이가 없고, 군이 미국을 보호한다는 생각이 일반인들 사이에 강하다는 것이다.
예전에 5사단 정보처 근무 당시 동두천 미 2사단 전차부대 훈련에 지원 나갔을 때 함께 하루 저녁을 밥먹으며 숙영했던 통역장교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한국군의 모든것이 미군을 따라가려면 100년은 족히 걸릴겁니다. ’ 이 말이 정답이어서 생각나는 건 아니지만 왜 이리 한 주 내내 머리를 맴도는지 모르겠다.
베테랑스 데이 세일이 끝나니 바로 땡스기빙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을 알리는 쇼핑 전단이 팝업창에 팡팡 뜬다.
기념일의 본질을 잊은 채 쇼핑에만 몰두하는 것 아닌가 염려하지만 난 달리 생각하고 싶다.
쇼핑을 하면서도 베테랑들에게 감사하자. 이렇게 쇼핑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그 저간에는 베테랑들의 피와 땀과 수고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뉴욕 안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