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의 대선이 끝난지 2주가 다 되간다. 누구나 하나 이상씩은 갖고 있을 법한 카톡 단톡방에서는 새 지도자와 조국에 대한 푸른 희망과 새 지도자와 함께 할 향후 5년에 대한 절망이 공존하기도 한다.
고국의 대선 결과로 동포들의 희비도 엇갈렸다. 대통령이 됐으니 그가 잘해주길 바라는 수 밖에.
사실 고국의 대통령 선거는 심정적으로 느끼는 만큼 우리 동포들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고 본다. 이곳 미 동부 최대의 한인 타운 팰리세이즈팍의 주차 문제나 타운 정부의 주민 세금 남용 문제를 문 대통령이 알겠는가 윤 당선인이 알겠는가.
이제 고국 대선 결과는 what’s done is done으로 하고 우리 생활과 직접 관련 된 현안들을 타운 정부에서 누구와 함께 논의하고 개선해 나아가야 할지 팰팍 주민들은 6월 예비선거에서 결정해야 한다.
한달 전 지역 언론에서 ‘팰팍시장 선거 3파전’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뜬 이 후 크리스 정 현 팰팍 시장과 민주당 소속 폴킴 팰팍 시의원, 그리고 공화당 소속 스테파니 장 시의원에게 타운의 이목이 집중 되고 있다. 기자도 귀를 세우고 있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 17일, 지역 언론에 동부 지역 최초의 한인 시장 크리스 정 시장이 타운정부의 혈세 오남용을 인정하고 쇄신에 나서겠다는 기사가 나왔다. 몹시 의아하게 생각되면서 정말인가 했던건 기자 뿐이었을까.
지난해 3월 주 감사원이 팰팍 타운정부의 고위 공무원에 대한 불법적 비용지급과 특혜 제공으로 수십만 달러의 세금이 오남용 됐다는 내용의 56쪽 분량의 감사 보고서를 발표해 지역사회의 공분이 일었을 때, 크리스 정 시장의 타운 정부는 주 감사원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아 주민들의 속을 터지게 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감사 결과를 인정하고 쇄신 작업을 하겠다는걸까. 1년만에 선거를 앞둔 시점에 말이다.
“문제가 확인된 만큼 개선 작업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일부 반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바로잡는것이 시장의 역할”이라는 부분을 신문에서 읽었을 때 정말 미안하지만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작년 11월 말 거주자 및 비거주자 주차 문제 관련 타운홀 미팅에서 한 주민이 타운에서 정한 주차비용 산정 근거를 묻자 몹시 당황스러워 하며 중언부언 하던 그가 “시장의 역할”을 언급한다는 것이 코메디가 아닐 수 없다.적어도 이 순간 기자에게는 그렇다.
1년 전엔 안들렸던 주민들의 원성이 정 시장의 귀에 이제는 들렸다는 말인가. 그래서 팰팍 민주당 위원회는 현직인 그 대신 폴킴 시의원을 시장 후보로 인도어스 한 모양이다.
평소에는 꼭꼭 닫고 지내다가 선거가 다가오면 귀가 열리는 정치인들이 고국 뿐 아니라 동포사회에도 있기는 하다.
열왕기 상권에는 꿈에 나타나 ‘무엇을 갖길 원하냐’고 물으시는 하느님에게 솔로몬 왕이 많은 백성을 잘 다스리고 재판할 수 있는 “듣는 마음”을 주셔서 “선악을 분별하게”해 달라고 청하는 부분이 나온다. 솔로몬이 갖길 원했던 듣는 마음은 ‘귀’를 통한 들음을 너머 ‘마음’으로 듣는 능력이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들의 말을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달라는 것이었다.
크리스 정 시장을 위시해 우리 한인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그간 ‘귀’로도 ‘마음’으로도 주민들의 말을 못(안)들은건 아닌지. 선거가 다가오니 귀가 선택적으로 열린건 아닌지.
신앙인의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고 했다. 정 시장 역시 가족 모두 이곳 팰팍 최대의 한인 장로 교회 열성 신자로 알려져 있다. 폴 킴 의원은 마이클 성당의 열렬한 봉사자 이고, 스테파니 장 의원은 목사님 사모님이다.
시장님의 ‘표’는 주민들의 말을 ‘들음’에서 온다. 시장 선거 출마를 염두하는 후보들 모두 이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솔로몬 왕 처럼 ‘듣는 마음’을 청하는 지도자가 누군지 유권자들은 알아본다는 것을.
이번 한 주는 나도 열왕기를 읽으며 ‘듣는 마음’을 돼새겨 봐야 겠다. 잘 듣다 보면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더욱 그러하다.
커피 를 뿜을 뻔 했던 내 모습도 한인 시장을 배출한 우리 정치 참여의 한 부분이 아닐까 싶으면서 이나마 동포 사회가 유지 되는 것이 앞장서 참여에 나서서 동포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고 윤여태 의원같은 프론티어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리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이곳 이민 사회에서 참여는 영원한 미덕이다.
오늘 팰팍 단톡방에는 무슨 얘기가 올라 오려나 기다려 진다. 떡이 나오는 것도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팰팍 타운의 문제를 놓고 하룻밤사이 어떤 때는 수백 개 댓글이 달려 설왕설래 흥분 작약하는 단톡방이야 말로 참여의 시작이다. 쓴 말이든 단 말이든 계속 경청하고 되새기다 보면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모두 변화하고 발전하기 마련이다. 이런 ‘잘 듣는’ 전통이 이어지면서 논란 속에서도 우리 동포사회는 거듭 발전해왔다.
어차피 동부 최대 한인타운 팰리세이즈팍의 다음 시장은 거듭 한인이 당선 될 공산이 매우 크단다.
뉴욕 안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