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3년차에 접어든다. 돌아보면 그 엄혹한 세월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나와 우리 모두가 대견하기만 하다. 서울은 전면 봉쇄까지 가진 않았지만 2년전 이 시기, 이곳은 거의 전면 봉쇄의 수준인 락다운이 실시 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직은 완전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이제 미국은 마스크도 벗고 일상으로 회복하는 중이다. 요즘 감염 숫자로만 보면 서울이 심각한 듯 한데 치명률은 낮은 수준이라 하니 다들 내려놓은 듯 싶다. 다음 글은 2년 전 바로 이 시기, 기자가 서울에 나가 있으면서 겪었던 서울의 코로나 19 상황에 관한 글이다. 책꽂이에 꽂혀있던 재외동포저널 2020년 봄호를 들춰 보다가 이 글이 눈에 띄었다. 모두가 함께 겪었던 코로나 시절을 되돌아 본다는 의미에서 하이유에스 코리아 독자들과 공유해본다.
‘코로나19’ 새 발견- 라디오, 클래식 그리고 고물상과 책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디오는 진리였다. 이 작은 손 라디오는 인터넷이 끊겼던 그 이틀을 두 시간처럼 느끼게 해주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짱짱한 꼬마는 모던재즈의 창시자 찰리 파커의 트럼펫을 유쾌히 연주하고 있다.
라디오를 듣다보니 사람들의 사연들도 소개된다. 예전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려면 엽서나 편지를 보내어 내 사연이 소개되나 안되나 몇날 며칠을 콩닥 거리면서 듣곤 했었는데….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진행자들과 실시간 문자 채팅이 가능해졌다. 낭만은 비록 없어졌어도 더 많은 사람들의 더 많은 일상들을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공감도 하고 아니올시다도 하며 코로나 19를 견디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된 것도 라디오 덕분이다.
클래식 음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아침에 눈을 뜰 땐 라디오로 제일 먼저 손이 간다. 주파수는 항상 클래식 FM에 맞춰져 있다. 배우 김미숙의 고급진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아침 클래식 음악 프로를 들으면서 커피를 끓이는 순간은 나의 자가격리 생활에 품격을 더해준다. 라디오의 세계에 다시 들어가면서 ‘어머 너 아직도 여기에 있었구나’ 하는 반가움 속에 만난 오래된 음악 프로들에 유난히 애정이 간다. 화초들도 클래식을 틀어주면 더 잘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요즘엔 죤 세바스티안 바흐에 꽂혔다. 괜히 클래식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게 아니었다. 간결 하면서도 웅장한 그의 사운드. 그리고 코로나 19의 시기, 바흐의 음악이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현존하는 그의 200개 칸타타(교성곡)의 내용에서 당시 창궐했던 질병에 대한 공포를 엿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1723년에 연주됐던 칸타타 BWV 25번, 테너의 레치타티보(운율 없이 내레이션의 형식) 내용 중에는 페스트균이 사지에 퍼지는 고통을 묘사하고 있다. 만약 바흐가 21세기 코로나 19의 현장을 목도했다면 어떤 칸타타를 만들어 냈을까 살짝 궁금해지기도 한다. 퉁퉁한 바흐의 체격만큼이나 저런 묵직한 음악도 의미있지만.
바흐의 세속 칸타타 중에서는 <커피 칸타타>와 <농민 칸타타>가 가장 유명하다. 커피 칸타타는 프리드리히 헨리가 쓴 극시(劇詩)에 의한 것으로서, 당시의 처녀들이 커피에 열중하는 것을 아버지가 한탄하면서, ‘너에게 좋은 신랑을 속히 중매해 줄 테니 커피를 너무 마시지 말라’고 말한다. 마지막에는 합창으로 커피의 예찬이 떠들썩하게 불려진다.
커피에 대해선 매우 고지식한 나는 진한 롱블랙이나 에스프레소를 즐긴다. 그리고 각종 원두를 블렌딩해서 마시는 것 또한 즐거움이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가 그냥 귀에 꽂힌게 아니었다. 왜 이제야 내게 찾아왔니 칸타타!
괴테는 아침의 커피를 ‘잔잔한 내 속에 쳐들어온 나폴레옹의 침략군’이라고 했던가. 음악과 커피가 있는 곳엔 그래도 ‘책’이 제일 어울릴 듯 하다. 이 기간 중 많은 사람들이 그간 책꽂이에 장식품처럼 꽂혀있던 책들을 꺼내어 읽어보는 모양이다. 코로나가 불러온 자가격리의 최대 순기능이다.
그런데 독서만은 끈기를 발휘하지 못했기에 나 스스로도 못내 아쉬웠는데 그래서 이번 코로나19가 창궐하는 동안 사회적 거리는 두지만 책과의 거리는 좁혀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내 거처엔 미국에서 가져 온 성경 뿐이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할까 했지만 책값도 만만치 않았다. 어느 날 성당에 가다가 고물상을 발견했다. 옷이며 책이며 신발이며 가방이며 없는 게 없었다.
그간 그곳에서 데려 와 읽은 책들을 보니 좀 부끄럽기도 하다. 예전에 읽어 본 것 같긴 한데 기억이 스믈스믈 해져서 다시 읽어 본 것들이 대부분으로 특히 톨스토이와 이효석의 단편소설은 지금 읽어도 흥미롭고 뇌를 깨워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티푸스 메리’를 다시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장티푸스가 대유행이었을 당시 무증상 보균자가 ‘매리 맬런’이라는 아일랜드 이민자 출생 여성 요리사의 이야기다. 그녀가 일한 집 마다 가족들이 무려 24명이나 장티푸스에 감염되었고 그녀 자신은 그럴리 없다며 강하게 부인하는 가운데 보건당국과 경찰이 그녀를 체포해서 혈액 표본을 채취했고 그녀가 장티푸스 보균자임이 확인됐다.
장티푸스 무증상 감염자였다. 수퍼 전파자였던 셈이다. 그녀는 감금되었다가 3년 뒤에 ‘요리사를 그만두고, 매달 보건국에 보고’하기로 하는 조건으로 풀려난다. 그런데 5년 뒤, 한 병원에서 25명이 장티푸스에 걸리고 2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맬런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이름을 바꾸고 문제의 병원 주방에 요리사로 취직한 것이 드러나고 그는 또다시 병원에 수감된다. 그 뒤 69살에 뇌졸중으로 사망할 때까지 23년 동안 병원이 있는 섬을 나오지 못한다. 이 책은 무서운 질병을 옮길 수 있는 균을 보유하고 있다고 확인된 ‘건강한’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제기하는데, 현재 겪고 있는 코로나 19를 보면 강제로라도 입원시키고 치료를 해야 한다는 쪽에 손을 들어줄 거라 여겨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똑같이 장티푸스균을 가지고 있으면서 여러 사람에게 전파시킨 ‘남성’ 보균자의 경우 그처럼 오랫동안 격리되지 않았었고, 그녀처럼 ‘장티푸스 메리’와 같이 치욕스런 별명을 붙이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또 생각해 볼 문제이기도 하다.
외신들의 극찬은 이어지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방역체계와 진단 키트 등이 연일 외신에 모범으로 언급되면서 외신들의 극찬이 이어지고 있다. 기쁘고 자랑스럽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렇게 취해만 있을 때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스크도 슬며시 벗고 다니며 맛집 우르르 몰려다니고 여행 다니다가는 그간의 모든게 무너지는 새로운 사례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 외신들의 보도와는 상반되게 미디어를 통해 긴장 풀어진 사람들을 볼 때면 학교 다닐 때, 자기네 반이 전교 1등했다고 그 반 꼴찌들도 마치 자기들이 1등 인양 덩달아 우쭐대고 다니는 것 같은 모습이 오버랩 된다.
생활 방역 체제로의 전환 앞에서 우리가 더더욱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요즘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마스크 착용 여부를 둘러보게 된다. 꼭 있다 마스크 안한 사람… 그 또는 그녀 옆에는 앉거나 서기가 꺼려진다. 배려와 사려 모두 장착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인다. 마스크와 손 씻기는 나를 위한 것 일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내 루프 탑 하우스 옆의 개신교회도 지난 4월 26일부터 예배를 시작했다. 같은 주일, 서울대교구 및 국내 각 교구들의 미사도 재개됐다. 약 6주 만의 미사 참례였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신자들은 마스크를 착용했고 입구엔 열 감지 장비가 있어 봉사자들이 온도 체크를 하고 있었고 사제 또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미사 집전을 해야 했으며 성가대 없이 조용히 미사는 이루어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뉴저지 레오니아 우리 아파트 정원에 있는 작은 성모상이 눈에 선하다. 주님께서 또 코로나와 동거하라고 명령하신다면 할 수 없지만 이제는 끝내고 싶다.
“성모님 이제 우리는 조금씩 일상생활로 돌아가려 합니다. 우리가 그래도 될런지요?”
뉴욕 안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