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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국칼럼

강남중 기자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정치·행정 수도이다.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 또한 이런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정치와 민감하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방미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한미 간 풍습과 제도적 차이점을 매주 월,화 【리국 칼럼】으로 전해드린다. 필명인 리국 선생님은 재미 언론인으로 오랜기간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기자이다.



미 정계에서 신인 돌풍은 왜 어려운 걸까?

미 정계에서 신인 돌풍은 왜 어려운 걸까?


워싱턴 인근 페어팩스 카운티의 지역 정치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 흙수저 출신 여성의 도전

자이나브 모시니. 올해 30살의 이 여성의 ‘무모한’ 도전이 2020년 버지니아 지역 정가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2003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난민으로 미국에 건너온 이민자다. 미국에서 태어난 백인 아닌, 그야말로 소수계 인종인 셈이다.
미국에 올 때 그녀의 나이, 불과 14살이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그녀가 진학한 학교는 노던버지니아 커뮤니티칼리지(NOVA). 한국으로 치면 과거의 2년제 전문대학이다.
집안이 가난했기에 일을 하면서 공부하던 모시니는 버지니아텍에 편입해 학위를 받았다. 한때 한인 조승희 총격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버지니아의 한 주립대학이다. 그녀는 가족 중 유일한 대학학위 소지자가 됐다.
다른 졸업생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취업을 해서 학비도 갚고 생계도 꾸려나가야 했지만 난민출신 이민자가 겪는 어려움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미국의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그녀는 이민자 권익, 여성 인권, 성 평등 문제 등 다양한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하면서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 학생을 돕고 사회경제적 불평등 이슈에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또 진보 진영 후보의 선거 캠페인에 참여해 정책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변화가 절실하다’는 여론에 힘입어 연방 하원 선거에 도전장을 냈다.
페어팩스 카운티를 무대로 하는 버지니아 제11선거구의 민주당 경선에 나선 것이다. 버지니아 주의 경선은 미리 소속 정당을 등록할 필요 없이 투표소에서 원하는 정당 경선에 참여하면 된다.


2013년 가을에 열린 코러스 페스티벌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는 이태식 주미 한국대사와 제리 코널리 연방 하원의원(가운데).

# 가난, 차별과 싸운다는 목표

그녀의 상대는 7선에 도전하는 제리 코널리 하원의원(Gerry Connolly). 동네 사람들은 황당한 도전이라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S는 “저 친구, 뭐 하려고 나온 거야. 나이 먹은 코널리가 은퇴하면 그 자리를 미리 침 발라 놓으려고 그런 것 아니야.”며 비꼬았다. 그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아예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백인도 아니고, 미국 태생도 아니며, 번듯한 명문대 출신도 아니었다. 경력도 별 게 없었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게 없는 젊은 시민운동가가 하버드대 출신의 6선의 중진에 도전장을 내니 곱게 보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의 도전에 눈길이 간 것은 정치의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난이 무엇인지, 차별이 무엇인지,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때문에 난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싸워왔으며 이제 더 이상 부자와 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가 아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편에서 정치를 해나갈 것이다.”
물론 경선 결과 그녀는 중진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그리고 천재일우의 특별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그녀가 연방 하원의원이 되는 길은 시 의원이나 주 하원이나 상원의원 등을 거치며 정치 경험과 경력을 쌓아나가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연방 하원 선거에서 10명 중 9명은 현역이 당선돼왔다.



# 10명 중 9명이 현역 당선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든지, 아니면 단순한 야망을 품은 정치 신인들이 기성 정치인들의 벽을 격파해내기란 무모한 도전에 가깝다.
AP 통신이 2014년 흥미로운 기사를 내보냈다. 지난 50년 이상 현역 하원의원 10명 가운데 9명은 현역이었다. 단 1명, 그러니까 10%만 신인이 의회에 진출한 것이다. 상원의 경우에도 현역 의원의 80% 이상이 재선됐다.
그해 11월 상·하원 293석을 뽑는 중간선거가 있었다. 공화·민주 양당이 당내 예비선거(Primary)를 치렀는데 경선에서 현역 의원 291명이 재 지명됐다. 정치 신인이 지명된 것은 2명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지지 한인들이 한인마트 앞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 현역 프리미엄과 게임의 법칙

미국의 선거에서 ‘현역 프리미엄’이 작동하는 것은 한마디로 ‘게임의 법칙’이 신진에게 매우 불리하기 때문이다.
선거라는 시스템은 돈과 조직, 그리고 캠페인을 기본적으로 필요로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선거하면 우선 돈이다. 선거운동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보수는 물론 길거리에 꽂아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팻말 제작에 드는 비용만 해도 엄청나다.
신문이나 TV 광고는 물론 요즘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캠페인이 활성화 되면서 여기에도 막대한 돈이 든다.
2018년 11월 버지니아 주 의회 선거에서 경합 지역의 경우 평균 39만 달러의 선거비용이 지출됐다. 4억원 이상이 든 것이다. 심지어 민주당 크리스 허스트 의원과 공화당의 조셉 요스트 전 의원이 맞붙은 격전지에서는 양 후보 모두 120만 달러를 뿌렸다.
연방 의원 선거도 아니고 주 의원 선거에서 말이다. 한국으로 치면 지방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10억 원 이상을 뿌린 것이다. 선거자금은 온라인이나 소셜 미디어 등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나날이 늘어가는 추세다.


2020년 11월3일 실시되는 대선과 각종 선거를 앞두고 조기선거에 참여하려는 유권자들이 투표소 앞에서 긴 줄을 서 있다.

# 실탄 없어 홍보도 못해

그런데 신인은 실탄 확보에서부터 불공정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현역의 경우 보다 손쉽게 선거자금을 모금할 수 있지만 신인에게는 돈이 몰리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선거자금 모금액이 선거 승패를 좌우한다고 보면 된다.
선거자금이 부족하면 선거조직 구성과 운영에도 한계가 생긴다. 선거운동원들에게 지급할 돈이 부족하니 많은 인원을 쓸 수 없고 다양한 홍보 이벤트도 벌일 수가 없게 된다.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가 봉쇄되는 것이다.
또 지역구의 기업이나 단체들과 끈끈한 연계를 갖고 돕기도 하며 보좌관들을 통해 유권자들의 민원을 해결해 주기도 한다. 물론 가장 큰 핸디캡은 홍보성 광고와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는 네거티브 광고를 충분히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2020년 선거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투표소의 유권자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 누가 출마했는지도 몰라

일단 ‘쩐의 전쟁’에서 밀리는데다 얼굴 알리기에도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통상 현역 의원의 경우 유권자들의 인지도가 높은 편이지만 신인은 자신의 이름조차 알리기가 쉽지 않다.
유권자들에게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 방법은 행사 참여와 가가호호 방문, 그리고 길거리 팻말이 전부나 마찬가지다.
한국은 유권자들 대부분이 주요 출마자들의 이력을 꿰뚫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누가 출마했는지조차 잘 알지 못한다. 후진적 시스템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현역 의원은 임기 동안 각종 행사 등의 참여를 통해 영속적인 캠페인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유권자들의 머릿속에 이름과 얼굴이 입력된다. 그러나 신진은 자신이 현역 의원보다 나은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알릴 방법이 없다.


민주당 전국위 의장과 버지니아 주지사를 지낸 테리 맥컬리프가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 물갈이 힘들어 27선 의원도

현역 의원 물갈이가 힘든 구조이다 보니 27선 의원도 있었다. 2017년 정계에서 은퇴했다 사망한 민주당 존 코니어스 의원은 1965년 하원의원에 당선돼 무려 54년을 의정생활을 했다.
흑인인 그는 한국전 참전용사이기도 했는데 성 추문 의혹에 휩싸이며 정계에서 물러났다.
상원에는 그에 못지않은 로버트 버드 상원의원이 있었다. 웨스트버지니아 주 출신인 그는 1953년 1월 연방 하원의원으로 워싱턴 의사당에 입성해 6년 동안 일한 뒤 상원으로 옮겨 90세가 훨씬 넘어서도 의사당을 지켰다.
장장 60년 가까이 의정활동을 한 것이다.


선출직인 버지니아주 검찰총장 마크 헤링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미국 정가의 변화

그러나 미국 정치에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2018년 11월 치러진 선거에서 하원 전체 의석 435석 중에 88석이 정치 신인이 당선됐다. 20%가 물갈이 된 것이다.
그 중에는 한인 2세 앤디 김(36•민주•뉴저지) 하원의원도 포함돼있다. 김 의원은 한국계 최초로 하원의원을 지낸 김창준 전 의원 이후 20년 만에 연방 의회에 입성했다.
그리고 초선 중에 여성도 34명을 차지해 사상 가장 많은 여성 의원이 이듬해 1월 개원한 제116대 연방의회에 진출하는 기록을 남겼다. 여성 의원 수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해 총 127명(상원 25명, 하원 102명)으로 역대 가장 많다.

신예 돌풍을 몰고 온 이유는 정체된 워싱턴에 바라는 변화의 물결, 전통적인 선거운동 방식 대신에 소셜 미디어 등 새로운 선거 캠페인 방식의 확산 등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대표적인 예가 하원 역사상 최연소 의원이 된 민주당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 의원이다. 그녀는 민주당 뉴욕주 하원의원 경선에서 10선 의원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정치 경력이 전무한 28살 여성 사회운동가가 이변을 낳은 것이다. 그녀는 2020년 11월 선거에서도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CNN은 신진 정치인들이 특히 민주당에서 대거 등장하는 이 변화상에 대해 “민주당은 참신한 목소리와 새로운 에너지로 하원의 지배권을 장악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