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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국칼럼

강남중 기자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정치·행정 수도이다.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 또한 이런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정치와 민감하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방미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한미 간 풍습과 제도적 차이점을 매주 월,화 【리국 칼럼】으로 전해드린다. 필명인 리국 선생님은 재미 언론인으로 오랜기간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기자이다.



특권의식을 버려라!: 미국 고위층들의 권위주의

# 허름한 한식당에서 만난 전 해군장관

그를 만난 건 한인 타운의 한 허름한 한식당에서였다. 그는 점퍼 차림에 작업복 바지 같은 편한 옷차림으로 생선조림을 맛있게 들고 있었다.

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중노(中老)의 미국인을 알아보는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종업원들도 그저 한식을 좋아하는 미국인으로만 생각하는 듯했다.

나도 대수롭지 않게 식사를 하다 무심코 고개를 든 순간 그의 반듯한 얼굴을 자세히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연방 상원의원인 짐 웹인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 해사 출신으로 해병대 장교로 베트남 전에 참전했고 미 해군장관을 지낸 거물급 인사였다. 2006년 버지니아 주에서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한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도 거론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런 거물급 인사가 테이블이 10개도 채 안 되는 조그만 한식당에서 생선 조림을 먹고 있었으니 눈이 동그래진 것이다.
내가 아는 척을 하자 그도 반갑다며 손짓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그에게 “여긴 자주 오세요?”라고 물으니 “집이 이 근처라 가끔 한식 먹으러 옵니다.”라며 웃었다.
6년의 임기를 끝낸 그는 “정치로 여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기고 2014년 정계를 떠났다.


제리 코널리 연방 하원의원이 한인 취업박람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방 하원의원의 차리

워싱턴 근교에 살다보면 유명 정치인, 고위 관료, 고급 장성 등을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다.
내가 사는 지역구의 연방하원의원은 민주당의 제리 코널리(Gerald E. Connolly)다. 하버드대 출신의 그는 페어팩스 카운티의 군수 격인 수퍼바이저회 의장을 하다 하원의원이 됐다.

현재 하원내 지한파 그룹인 코리아 코커스의 공동의장이기도 한 6선의 중진이다.
그는 자신의 지역구에 한인 유권자들이 많이 살다 보니까 한인들이 여는 큰 행사에는 어김없이 참석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낡은 캠리 승용차를 직접 운전해서 다닌다.
그는 선거운동 내내 족히 10만 마일은 탔을 법한 캠리를 운전해 불이 나게 쫓아다니고 지역구를 누빈다. 물론 운전기사도 없이 낮이나 밤이나 직접 운전한다.
회기 중에 의회를 오갈 때도 그의 전용차는 캠리다. 그의 지역구인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의회까지는 3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이다.

그 지역의 주민들이나 미국인들도 국회의원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걸 이상하게 보지 낡은 차를 운전기사도 없이 직접 몰고 다니는 걸 당연하다는 듯 본다.
코널리뿐만 아니다. 미 의원들의 대다수가 평범한 차를 직접 몰고 다닌다.


제리 코널리 하원의원이 한인들이 미국사회 기여를 칭송하는 의회 기록물을 한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왼쪽은 마크 김 버지니아 주 하원의원.



# 육군 중장의 세탁소 나들이

워싱턴 DC에서 남쪽으로 30분 거리에 포트 벨보어라는 대규모 군 기지가 있다. 군 부대가 있다 보니 군인들을 주 고객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구두와 옷 수선, 세탁소를 겸해 하는 L씨도 그 중의 하나다. 그는 처음 업소를 열었을 때부터 받은 인상적인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주말이었을 겁니다. 트레이닝복 차림의 중년이 옷을 맡기러 왔어요. 그가 가고 난 후 맡기고 간 정복을 살펴보니 쓰리 스타 계급장이 있는 겁니다. 제 고객 중에는 장성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계급이 높아도 자신의 군복 등 세탁물을 맡길 때는 직접 옵니다. 부하를 시키는 법이 없어요.

그리고 손님들이 많아 줄을 서 있으면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줄을 서 있어요. 손님들이라 해봐야 전부 자신의 까마득한 부하인 데도요. 그리고 부하들도 얼굴을 빤히 알면서도 양보해주지 않습니다. 아 이게 미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특권의식을 버리고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미국 공직자들의 모습이다.


민주당 전국위원장과 버지니아 주지사를 지낸 테리 맥컬리프가 워싱턴 인근의 사찰 보림사를 찾아 합장한 후 경암 스님의 달마도를 선물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 전 주한미군 사령관의 한국행

아마 2014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한국을 가기 위해 덜레스 국제공항에 갔다. 대한항공 발권소에서 항공좌석을 배정받은 후 검색대로 옮겨 긴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ㄹ자로 굽어 있는 줄 옆에 아는 얼굴이 보였다. 바로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전 한미연합사령관이었다. 현재는 주한미군 전우회 회장이기도 하다. 그는 재킷에 편한 청바지를 입고 손에는 가방을 들고 혼자 서 있었다.


평화봉사단원들을 위한 추석잔치에 참석한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 사령관 부부

“안녕하세요. 어디 가시는 길이신가요?” 그와는 몇 번 만나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복무했던 평화봉사단(Peace Corps) 단원들이 ‘한국의 친구들(Friends of Korea)’이란 단체를 만들어 모임을 정기적으로 가졌다.

특히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는 한인들이 이들을 집이나 식당으로 초청해 그들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하는 시간도 갖곤 했다.
샤프 전 사령관은 평화봉사단 출신은 아니었지만 명절 모임에 몇 번 초대돼 참석한 인연으로 안면을 익혔던 것이다.

“예, 한국에 세미나가 있어 가는 길입니다.”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내게 “한국에서 볼 일 잘 보고 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리곤 검색대 앞으로 걸어 나갔다.


평화봉사단원들의 모임에 참석해 한국 노래를 부르는 스티븐슨 전 주한 미 대사를 오른쪽에 앉아 있는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 사령관 등이 지켜보고 있다.

그는 얼마 전까지 미 육군 대장으로 2008년부터 2011년까지는 주한 유엔군 사령관을 지냈다.
60대의 그가 청바지 차림으로 비서도 없이 직접 가방을 들고 다른 승객들과 똑 같이 공항 검색대 앞에 줄을 서 있는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한인 간담회에 참석한 팀 케인 연방 상원의원(왼쪽 세번째)



# 연방 상원의원의 줄서기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군 장성 등 사회적 직위가 대단한 인물들도 사적인 영역에서는 권위주의적인 모습이나 특권의식 같은 걸 좀처럼 느낄 수 없다.
버지니아 주지사를 지낸 팀 케인 연방 상원의원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한반도 문제가 시끄러웠을 때 그는 이에 대해 설명하는 한인 행사를 식당에서 열었다.


팀 케인이 버지니아 주지사일 때 한인 추석잔치에 참석했다.

모임이 끝난 후 그는 간단한 뷔페가 차려진 진열대 앞에 직접 줄을 서서 음식을 받아갔다.
케인은 2017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출마한 거물 정치인이다. 보좌진이 옆에 있었지만 아무도 음식을 대신해서 가져다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미국인의 일상인지 모른다. 일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손님이 오면 여직원에게 커피나 차를 타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는 일은 없다. 손님도 대부분 스스로 차를 타서 마신다. 여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가는 성 차별로 고발당하기 십상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시상을 하며 웃고 있다.



# 대통령들의 소탈한 모습들

종종 백악관의 대통령들도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국인의 간식의 하나인 프레첼(pretzel)을 좋아했다.

어느 일요일, 부시가 백악관에서 미식축구 경기를 시청하면서 프레첼을 먹다 목이 막혀 잠시 의식을 잃는 사건이 일어났다. 소파의 부시는 바닥에 구르면서 턱뼈 부위와 입술 아래에 멍이 들었다.
누군가 왜 멍이 들었냐고 묻자 부시는 조크로 좌중을 웃겼다.

“어머니! 어머니 말씀을 들었어야 했어요. 프레첼을 먹을 때는 항상 꼭꼭 씹은 후 삼키라고 하셨던 말씀이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비가 내리면 백악관 직원들에게 우산을 씌어주기도 하고 소파를 같이 나르기도 하는 소탈한 모습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번은 오바마 부부가 비욘세의 콘서트 장에 가서 흥에 겨워 춤을 추는 장면이 공개돼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비가 간간이 내리는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한 나라를 책임진 대통령의 이 같은 탈권위주의적인 모습에 “처신이 가볍다”거나 “점잖지 못하다”며 흉을 보는 미국인은 없다. 만약 한국의 대통령이 그랬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 면책특권 반납한 상원의원

특권의식보다 법과 질서 의식이 몸에 배인 사람들이다. 오래 전의 이야기이지만 고 로버트 버드 상원의원의 일화는 미국인들의 법과 특권의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버드 의원이 교통사고를 낸 적이 있다. 티켓을 받았지만 나중에 경찰은 면책특권에 따라서 국회의원의 회기 중에는 교통위반 티켓을 발부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버드 의원은 얼마 뒤 열린 교통사고 법정에 자진 출석했다. 면책특권을 스스로 거부하고 법대로 처리해 달라며 출두한 것이다. 그에게는 벌금을 유예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2010년 타계하기 전까지 그는 상원의 임시의장을 지내는 등 미국에서 가장 오래 정치에 몸담은 의원으로 기록된다.

물론 예외는 세상 어디에든지 있다.
버드 상원의원처럼 특권을 버리는 이들도 있지만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려거나 남용하려는 권력자들도 존재한다.
“세상이란 원래 불공평한 법이고 평등은 허상일 뿐”이란 논리를 따르는 이들에게 특권의식은 당연할 것일 수 있다.


미 의회에서 열린 행사에서 이태식 주미 대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한미 의원들.